재밌어서 만들다 보니 - 좋아하는 것을 오래 하기 위한 방법
한주희 지음 / 미디어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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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던하게 정규 과정을 거치며 건축이 자신에게 딱 맞는 평생 직업이라 생각했던 파리에서의 생활. 파리에서 건축가로 일하며 경력을 쌓아간 한주희 저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정말 옳은 길을 가고 있을까?'라는 생각에 빠져듭니다. 그동안의 투자 시간을 고려하면 계속 건축 일을 하는 게 합리적으로 보였지만, 망설임의 고민은 깊어갑니다. 우연히 취미로 시작한 의상 제작과 자꾸 비교하게 됩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들고 떠났던 프랑스 유학길. 무일푼 유학생에서 건축가라는 화려한 명함을 얻었으니 성공한 자의 모습을 떠올릴 테지만 그 역시 불안과 도전 사이에서 고민이 많습니다. 프랑스어 실력도 답답한데 말하는 것에 별 흥미를 못 느끼다 보니 단조로운 일상, 한정된 관심사, 취향의 부재가 생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컸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계기로 변화가 일어납니다. 옷을 만들면서부터입니다. 


의상을 소재로 동료들과 말할 기회가 늘어난 겁니다. 좋아하는 것이 늘어날수록 대화의 주제가 다양해진 겁니다. 그제서야 언어는 단지 듣고 말하고 쓰는 도구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언어는 내가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하는지 알게 해준 매개체였다."라고 하듯 프랑스어로 편하게 대화를 진행할 수 있는 주제가 생기니 설명할 수 없던 '나'를 표현할 수 있게 된 겁니다. 


파리에서의 적응이 쉽지 않았던 이유도 비로소 알게 됩니다. 사고방식의 다름에서 오는 이질감은 문화 차이를 유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편협한 생각과 판단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건축가로서 직장생활을 하며 취미로 의상 제작과 디자인 연구를 했던 이중생활 동안 일과 삶의 균형이 깨져보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은 무척 많았습니다. 그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에서는 저마다 다른 가치관, 일하는 방식이 있음을 배워나가는 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인생을 해석하는 방식도 다양하다는 것을 터득하게 됩니다. 


정규 교육 과정을 착실히 밟으며 일로 시작한 건축과 달리 의상은 취미에 불과했지만, 의상 제작을 할 때면 즐거운 기억부터 떠올랐다고 고백합니다. 15년간의 직장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의상 사업에 도전하고, 결과는 실패로 끝났지만 파리 패션위크에도 참가해 보면서 건축과 의상을 대하는 자신의 진짜 마음을 알아나갑니다. 


모든 직장인이 하는 고민이겠지만 새로운 일을 위해 기존에 하던 일을 그만두기까지 한주희 저자 역시 고민은 컸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조금 더 숙고할 기회를 줬습니다. 마지막으로 건축계 거장의 회사에서 일해보고 만약 그곳에서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과감히 새로운 길을 걷겠다고 말이죠. 그리고 그때 깨달은 게 자신은 누군가 대신 결정 내리는 것을 참지 못하는 스타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실패를 해도 온전히 스스로가 감당하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닫습니다. 건축이냐 의상이냐의 문제라든지 일과 취미의 문제가 아니라 결정에 수동적으로 반응해야 했던 직장인의 삶이 맞지 않았던 겁니다. 





이처럼 자신을 이해하는 소중한 경험은 스스로 부딪히면서 찾아야만 가능했던 겁니다. 36세의 나이에 안정적이지만 정체된 건축가의 길을 정리하고 그렇게 새로운 성장을 위해 의상 디자이너로 변신했고, 한국으로 들어온 후에는 지갑을 만들기도 하고 요즘은 가구 디자인에도 열정을 발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과정 중에 어느 것 하나 수월하게 진행된 건 없고 새롭고 낯선 분야에 도전하는 건 힘들었지만 처음이 없다면 그다음은 없듯, 시작하는 용기를 낸 한주희 저자입니다. 


나답지 않게 사느라 힘들고 혼란스러워하는 대신 쉽지는 않아도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해 소소한 경험을 쌓아가는 그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재밌어서 만들다 보니>. 거창한 성공담은 없지만 정체된 삶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막연한 미래의 불안감에 행동하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한주희 저자의 성장기에서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여전히 앞날이 두려우면서 궁금하고, 순간적으로 무기력해질 때도 있다. 성공과 실패, 그 무엇도 짐작할 수 없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끝까지 가보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얻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p121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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