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한 과부들을 위한 발칙한 야설 클럽
발리 카우르 자스월 지음, 작은미미 외 옮김 / 들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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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정숙한 과부들을 위한 발칙한 야설 클럽>. 인도계 영국인 과부들이 런던의 시크교 공동체 사우스홀에서 수상한 글쓰기 수업을 하며 생기는 일들을 다룬 소설입니다. 발리 카우르 자스월 작가도 인도계 싱가포르인인 만큼 인도 가족이 지향하는 전통적인 여성의 지위와 정체성 경계를 오가는 이민 교포로서의 삶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스물두 살 니키는 중매결혼을 하려고 하는 언니 민디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시크교 사원 사우스홀 게시판에 중매결혼용 프로필을 붙여달라는 언니의 부탁을 어쩔 수 없이 들어주기는 하지만, 요즘 세상에 중매결혼이라니 고리타분하게 느껴집니다. 부모의 기대를 어기고 대학을 자퇴한 후 제대로 된 직업 없이 무작정 독립해 임시로 펍에서 일하는 니키는 한 마디로 요즘 아이입니다. 그러다 사우스홀에 들른 날, 우연히 글쓰기 강사를 모집하는 걸 보고 냉큼 지원하는데...


순수하게 글쓰기에 대한 수업을 할 거라 생각했던 니키가 마주한 건 은행에서 일하느라 영어를 잘 하는 한 명 빼고는 알파벳도 모르고 자기 이름조차 어떻게 쓰는지 모르는 과부들입니다. 삼십 대에서 팔십 대까지 연령도 다양한 과부들. 니키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까요.


읽기, 쓰기는 못해도 우리는 모두 말할 줄 압니다.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거죠. 우리 여사님들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냅니다. 그런데... 첫 이야기가 야설이었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젊은 미혼 여성인 니키는 과부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니키의 수업은 오롯이 여사님들의 이야기가 주인공이었고,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거듭될수록 니키는 변화합니다. 책임감 없는 젊은 여자애라는 편견을 떨쳐내고 진정으로 여성들의 힘을 북돋아주고 싶은 공감의 힘을 얻게 됩니다.


성적 판타지를 마음껏 표출하는 과부들의 이야기. 애가 탈 무렵 절묘하게 끝내는 스킬을 발휘하거나 개연성 따위 없는 구멍 숭숭 뚫린 이야기도 나오지만 그 시간만큼은 모두가 즐겁습니다.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더 정교하게 만듭니다. 당연히 그들은 꿈과 현실의 갭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 속 여성은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알고 그걸 쟁취해낸다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의 판타지였습니다.


하지만 수상한 수업이 입소문 나면서 무시무시한 이들에게 알려지게 될 위기에 처합니다. 카우보이처럼 여자들을 단속하는 형제회에서 알게 되는 상상만 해도 목숨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큰 압박감을 받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여자를 감금하듯 단속하는 게 가능한 시대인가 싶겠지만 그게 여전히 작동하는 시대라는걸, 이들의 두려움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성이라고 해도 모두가 같은 생각은 아닙니다. 전통적인 세계관에서 사는 여성은 과부들이 쓴 이야기가 천박하기만 합니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며 결혼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여성 스스로의 선택권은 전혀 없었던 그들의 삶을 당연시 여기는 이가 많았습니다. 런던에서 공동체를 만들며 함께 하면서 여성의 죄악과 명예에 대한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고수하며 사는 게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끔찍한 결말을 맞이하는 사건도 생깁니다. 여성의 권리가 짓밟힌 사건을 마주해도 여성들이 스스로 나서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랬던 사고방식이 이제는 야설 클럽 때문에 조금씩 무너집니다. 여자다움의 이면에 대해, 여성의 권리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겁니다.


<정숙한 과부들을 위한 발칙한 야설 클럽>은 한 쪽 세계관을 일방적으로 지지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공동체에는 편협한 사고로 그들을 경멸하는 이들이 가득합니다. 그럼에도 그중 누군가는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짚어주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가치의 좋은 점마저도 무시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균형과 절제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여성 연대의 힘으로 보여줄 뿐입니다. 과부들의 성적 판타지라는 도발적인 이야기 속에 세대 갈등, 여성 권리, 이민 세대의 디아스포라 등 묵직한 주제를 풀어내는 구성이 정말 멋졌어요.


"이야기는 사람들을 타락시키지 않아요. 새로운 것을 경험할 기회를 줄 뿐이죠." - 책 속에서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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