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만, 살아야겠어
윤명주 지음 / 풍백미디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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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암 투병 환자,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와 그들을 돌보던 이들과 유가족을 취재해온 윤명주 기자가 암 진단을 받고 스스로 환자가 된 몸과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에세이 <아프지만, 살아야겠어>.


유방암 0기로 초기에 발견한 상황이라 전절제 수술을 하고, 1년 후 재건 수술을 마친 상태에 이릅니다. 항암치료를 안 받은 사람은 암 환자로 안 친다는 말도 하긴 하지만, 항암치료를 안 할 수 있다는 부분 때문에 전절제 수술을 선택했던 만큼 항암치료의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은 아무래도 암 환자에게는 크게 작용하는 부분입니다.


누구나 인생의 어느 한 지점에서는 환자가 된다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암은 그의 일상을 시시때때로 흔들어놓습니다. 오랜 기간 환자의 입장을 대변해온 기사를 써오며 취재로 남들보다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놓고 생각할 기회가 많았기에 질병과 죽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일이, 관심을 받는 일은 쉽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위로와 격려의 말을 꾸역꾸역 받아삼켰다는 표현이 애잔하게 다가옵니다. 힘내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가족들의 말문을 닫게 했고, 그 안간힘이 오롯이 느껴졌다고 합니다. 나를 배려하는 마음에 마음껏 슬퍼하지도 못하는 것이 미안해지더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이 지나치게 슬퍼하지 않도록 최대한 괜찮은 척하게 됩니다. 이게 환자가 보여야 할 마땅한 태도인가 싶을 정도로 아이러니한 상황이죠. 그래도 모범 답안처럼 지인들을 대합니다. 긍정의 말 폭탄을 남기는 지인을 대할 때면 품이 좀 더 들지만요. 그런 일을 반복하다 보면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내 병을 돌보기에 앞서 지금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돌보는 노동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죠. 환자다움을 내면화한 환자들, 동정을 표하는 주변인들 모두 사실 그 상황은 처음일 겁니다. 암 환자가 거쳐야 할 한 가지 단계를 그렇게 넘깁니다.


암 진단을 받고 가장 크게 변한 마인드는 내 몸의 목소리를 듣는 일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데 있습니다. 몸이 지르는 비명을 듣고 있으면서도 외면해온 결과라는 것에 그제서야 몸의 소중함을 인지합니다.





의외의 부분에서 감정이 북받쳐 오르기도 합니다. 슬픔을 느끼는 지점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암 진단을 받고서도 슬퍼하진 않았던 윤명주 저자는 정작 일상에서 제약을 느낄 때 감정이 터지더라고 합니다. 수영과 요가를 할 수 없는 것처럼 일상의 대표적인 루틴을 따르지 못할 때 슬픔이 터집니다.


무너지는 멘탈을 붙잡아야 할 정도로 가라앉는 날이 많아도 그래도 한편으론 이만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도 듭니다. 그럼에도 사는 게 쉽지는 않다고 고백합니다. 맑은 날이 있듯 흐린 날도 있습니다. 긍정의 힘은 약발이 떨어지기 마련이고, 수술 후 후유증으로 찾아온 몸의 고통 속에서 이만하길 다행이라는 약발도 떨어지는듯합니다. 고통이 인간을 어떻게 만드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던 취재 경험이 아무리 많다 한들 고통은 절대 익숙해질 수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유방암 환자들이 겪는 불가피한 주제 중 하나는 여성성의 상실에 대한 이야기일 겁니다. 저자는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평생 작은 가슴으로 살아왔다며 빈약한 여성성에 대한 안타까움을 보여주진 않습니다.


오히려 여성성보다는 탈의실이나 수영장에서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게 하는 너와 나를 구분 짓는 불완전함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고백합니다. 타인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흉터를 당당히 드러내지 못하고 콤플렉스로 여기는 겁니다. 이제 그가 감당해야 할 몫은 새로 생긴 콤플렉스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가는 일일 겁니다. 다행히 공감과 연대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가 이어집니다. 좋은 징조입니다.


암 환자로서의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서 버킷 리스트에 가로줄을 그어야 하는 슬픔을 겪지 않으려면 건강할 때 버킷 리스트를 쓰라는 조언이 그 어느 때보다 와닿습니다. 암 진단 전후로 드라마틱 하게 사람이 변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조금은 인생에 대한 마음가짐과 태도가 달라졌음을 느낀다고 합니다. 암 진단과 수술, 재건 과정을 겪으며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는 나날을 때로는 시니컬하게 때로는 담담하게 그려낸 <아프지만, 살아야겠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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