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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묻고 화학이 답하다 - 시간과 경계를 넘나드는 종횡무진 화학 잡담 ㅣ 묻고 답하다 4
장홍제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2년 5월
평점 :

지혜와 교양 시리즈 「묻고 답하다」의 신간 <역사가 묻고 화학이 답하다>. 역사 속 숨어 있던 흥미진진한 화학 지식을 통해 역사만큼이나 화학이 재미있어지는 순간을 선사하는 책입니다. 2021 아태이론물리센터 선정 올해의 과학 도서 <화학 연대기> 등을 내놓으며 화학 대중화에 힘쓰는 장홍제 화학과 교수는 이번 신작에서 역사와 화학이 교차하는 순간에 대해 풀어내고 있습니다. 사극을 보다가 생각난 사약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모차르트와 베토벤 중독사의 비밀, 연금술에 담긴 비밀, 역사는 곧 전쟁사라고 부를 만큼 전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화약에 대한 이야기 등 예술부터 전쟁까지 시간과 경계를 넘나들며 화학을 인문학적으로 이해하는 관점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약처럼 생긴 사약은 정체가 도대체 뭘까요. 사약을 무엇으로 제조할 수 있는가에 대해 전해지는 기록이 전혀 없기에 추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술상 분명 자연에서 나는 천연물로 만들었을 텐데 말입니다. 사약 성분으로 추정하는 건 비상, 수은 등을 비롯해 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에서도 독극물로 등장한 투구꽃이 가장 유력한 재료라고 합니다. 독성 물질 아코니틴이 들어있는 투구꽃은 흔히 한약재 중 부자라고도 불리는 바로 그것입니다. 독성을 낮춰 약으로도 사용하는 겁니다. 부자 중독으로 사망한 인물로는 알렉산더 대왕, 아리스토텔레스도 있었습니다. 셰익스피어 작품에서도 단골 소재입니다. 동양에서 사용하던 독화살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사약으로 물꼬를 튼 <역사가 묻고 화학이 답하다>는 인류의 역사 속 흥미진진한 독성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화학적 이론과 분석 기술의 발달로 점차 과거의 비밀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당시 질병 치료제로 사용했던 안티모리 중독사로 의심되며, 베토벤은 납 중독임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극심한 불면증과 식욕부진을 겪은 뉴턴의 머리카락에서는 엄청난 수치의 수은이 검출되었다고 합니다.

금의 가치를 추구하는 학문인 연금술의 시대에는 화학을 금지하는 법도 있었습니다. 금이나 은을 만드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이었습니다. 당시엔 사기의 도구로 변질되어 금색 가루가 비처럼 내리게 하는 연출을 할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어떤 노력에도 진짜 금을 만들 수 없었기에 화학의 발전은 더뎌졌고, 연금술은 판타지 세계에나 등장할 법한 소재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미술, 과학, 신앙, 신비주의가 뒤섞인 연금술은 실험 장비, 기술, 물질에 대한 이해 등 화학의 형성과 핵심에 작용했다는 점을 간과할 순 없습니다. 그런데 이 연금술이 가능하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수은을 금으로 변환한 게 1924년에 이뤄졌다고 합니다. 1980년에는 노벨 화학상 수상자 글렌 시보그에 의해 비스무트 원자를 금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전쟁 무기로서의 화학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화학 무기 금지 조약이 있을 만큼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합니다. 이미 기사 계급의 몰락과 절대왕정의 지배체제로 이행된 유럽의 변화 중심에는 화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큰 전환점을 만들어 낸 것은 바로 화약입니다. 화약이 어떻게 세계의 패러다임을 전환했는지 콘스탄티노플 공성전부터 현대에 이르는 화학무기사를 살펴봅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독성과 환경, 보건, 사회 문제가 발생하는 화학물질. 신비로운 옥색 빛깔의 에메랄드 그린으로 불린 파리스 그린은 비소가 포함되어 있는 화학물이었던 만큼 사용이 금지되었고, 전염병의 근원인 모기 박멸과 해충 제거에 기여해 노벨 생리의학상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던 DDT 역시 인간에게 피해를 유발했습니다. 오늘날은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화학 용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시대입니다. 우리 삶에 양면적으로 작용하는 생활 속 화학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저자는 <역사가 묻고 화학이 답하다>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들을 화학 잡담이라고 표현할 만큼 청소년이 읽기에도 좋습니다. 교과 과목으로서의 어려운 화학이 아닌 지적 즐거움을 주는 화학을 보여줍니다. 물론 세상의 변화에서 발견하는 화학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화학분자구조라든지 화학식, 화학결합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깊이 있게 파고들다가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유머러스한 글을 선보이며 강약 조절을 잘 하고 있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