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 속초 동아서점 김영건 에세이
김영건 지음 / 어크로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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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2시간, 주 6일 근무하는 서점 주인 김영건 저자의 독서 에세이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책의 파도라는 단어에서 거친 파도에 휩쓸려버리는 무기력함이 아닌, 그 파도를 자유롭게 타고 놀 때 채워지는 희열과 충만함을 느낍니다.


무려 관광지이자 독서인들의 성지인 속초 동아서점. 업력 60년이 넘는 서점에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15년부터 운영 중인 김영건 저자. 이미 서점 이야기와 속초에 대한 책을 낸 그가 이번에는 서점지기이자 장남으로서 일터에서의 고민과 삶에서 마주한 고충, 내면의 성장을 향한 집념 등이 어우러진 독서생활문을 내놓았습니다.


삶의 모든 부분에서 도움받기 위해 읽게 되는 책. 그렇기에 이 책은 책의 유용성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서점 주인은 어떤 책을 어떤 마음으로 읽었고 어떻게 삶에 적용했는지 엿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의 사유와 글쓰기는 밤의 서점 시간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밤의 서점에 홀로 남아 있으면, 오로지 살아남아야 했기에 심혈을 기울여 키우던 마크(소설 <마션>의 주인공)의 외로움이 공감된다고 합니다. 캄캄한 서점 속 카운터 안의 자리만 환히 밝힌 채 글을 쓰는 시간은 하루를 마감하며 일상의 소중함을 지켜나가는 그만의 루틴이 됩니다.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에는 그림책, 소설, 만화, 시, 인문 등 37권의 책이 등장합니다. 책을 읽으며 비로소 과거의 후회를 끌어와 성장의 기회로 삼기도 하고, 다양한 상황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예전에 읽었던 책이 지금의 상황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경험하기도 합니다.


서점 주인으로서 온갖 유형의 손님들과의 에피소드와 마주합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책 선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듬어보기도 합니다. 다 큰 직장인 아들이 읽고 싶다는 책을 사러 눈길을 헤치고 온 할머니, 교도소에 있는 아들에게 보낼 책을 사러 온 어머니, 손주의 책을 사러 온 할아버지...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서점에 왔는지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단골손님의 이름은 몰라도 손님을 보며 특정한 책을 떠올리는 능력을 가진 서점 주인으로서 한 사람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북에 대한 재미있는 생각도 해봅니다. 동네 카페 주인은 저를 보면 오픈 시간에 환한 창가 자리를 고집하고, 여름에도 뜨거운 음료만 찾는 단골로 기억하는데 아쉽게도 동네 서점이 없다 보니 시그니처 북을 생각해낼 서점 주인이 없군요. 나만의 시그니처 북은 뭘까 스스로 생각해 보며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지나고 보면 자책하고 수치심에 사로잡힐 정도로 그땐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은 역시 책입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정도의 마음이라면 이쯤에서 시간여행 SF 소설이 등장할법한데, 뜻밖의 책을 떠올립니다. 후회는 마음의 그림자이면서도, 그림자 속 심연을 마주할 기회를 준다며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에 나오는 선생님과 연결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인생의 첫 시기에 겪는 슬픔, 기쁨 그리고 깨달음과 화해를 음식으로 풀어낸 만화 <초년의 맛>을 통해 자기 인생의 설익은 시기를 수긍하는 과정을 겪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성장통은 그저 한철이 아니라 인생의 매 시기마다 찾아온다는 것도 이제는 이해하게 됩니다. 서점 일을 하다 보면 하루에도 여러 번 평정심을 잃는 날도 있다고 합니다. 지금 나이에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면서도 해결해야 하는 일련의 과업이라는 것을 <삶과 나이>를 읽으며 깨닫습니다.


좋아하는 책이 많아 인생 책을 대답하는 일에는 실패하고 말지만 대신 가장 좋아하는 작가만큼은 망설임 없이 독일 작가 유디트 헤르만이라고 말하는 김영건 작가. 아쉽지만 서점에서 아무리 추천해도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게 함정입니다. 저도 굳이 선택하진 않을 것 같지만, 그가 추천하는(역시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다는) 다른 책 <몸의 일기>는 궁금증이 샘솟아서 읽고 싶어지더라고요.


서점 주인이기에 책을 왜 읽어야 하냐는 질문보다는 좋은 책을 고르는 법에 대한 질문 앞에서 고민을 한 흔적이 보입니다. 이 책에 언급된 책만 해도 저는 대략 10%만 읽었더라고요. 제 눈에 벗어난 일명 '좋은 책'은 이처럼 수두룩합니다. 저자는 산책형 책 고르기를 추천하고 있습니다. 관심 없던 분야의 서가 앞에도 서보는 겁니다. 본능, 직관, 호기심, 유혹에 이끌려 골라보는 것도 좋습니다. 저는 너무 과해서 편독으로 가는 경향도 슬쩍 생기기 일쑤지만, 어때요. 편독이라도 하는 게 책을 안 읽는 것보다는 좋은 일이잖아요.


책을 많이 읽는 다독가가 편히 휴식하듯 읽을 수 있는 책은 무엇인지, 그림책 세계에 입문하게 해줄 관문이 될 멋진 그림책은 무엇인지, 슬기로운 부부생활에 도움 주는 책은 무엇인지... 김영건 작가의 성장에 기여한 책을 하나씩 만나는 시간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일상 에피소드에 책을 스리슬쩍 곁들인 만큼 거창한 서평이 아니라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책 이야기를 만끽할 수 있는 독서생활문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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