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 우리는 일요일마다 그림을 그리는 것뿐인데
아방(신혜원) 지음 / 상상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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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서 그리는 게 좋아 시작한 드로잉 클래스 '아방이와 얼굴들' 11년 차 아티스트 '아방' 작가의 에세이 <꼭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가장 나다운 시간을 찾는 그림 수업을 진행하며 수많은 멤버들과 함께 한 에피소드는 비주얼 아티스트 아방의 그림에 대한 태도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보통 재밌는 인간이 아니네'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는 아방 작가. 수업 첫 시간부터 쇼킹합니다. 엉망으로 그릴 수 있는 판을 제대로 깔아줍니다. 마음대로 해보라는 소리를 인생 처음 들은 수강생들이 대부분입니다. 나이도, 직업도 다 다른 드로잉 클래스 멤버들. 그들이 사랑하는 취미인 드로잉을 함께 하며 맛보는 성취감은 그 어디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달콤한 보상이 된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림의 1도 모르는 초보여도 괜찮다는 '아방이와 얼굴들'. 아방 작가 역시 책에 적힌 문장 하나 때문에 생판 모르는 분야인데도 이끌리듯 찾아갔던 밴드 연습실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고 고백합니다. 취미로 밴드를 하면서 경험한 기쁨의 순간들은 그림 수업할 때 초심을 잃지 않는 바탕이 되어줍니다. 꼭 실력 향상을 위해서만 오는 건 아니라는걸, 드로잉 클래스에 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게 되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서의 시작을 어떻게 클래스를 홀로 운영하게 되었는지 그 여정이 그려져 있습니다. 천편일률적인 기술 교육 일색이던 학원 대신 눈치 보지 않고 본능에 맡기고, 자기가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시간이 되길 바란 아방 작가는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릴 수 있도록 연습하는 클래스'를 구상합니다.


듣보잡 강사의 첫 수업에 신청자는 단 한 명. 그렇게 클래스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첫 제자가 무척 특이합니다. 동그라미조차 아방 작가보다 더 완벽하게 그리는 패션디자인과 복학생이었던 겁니다. 왜 수업받냐고 물었더니 "좀 못 그리고 싶어요."라는 대답을 내놓습니다. 콤파스로 그은 것 같은 도식화가 싫어서 일부러 이 수업을 듣게 되었다는 제자의 말에 아방 작가는 오히려 신이 납니다. '잘 찾아왔네!'. 못생긴 그림을 본받고 싶어 하는 첫 제자를 실험 쥐 삼아 다양한 시도를 하며 첫 클래스를 이어갑니다.


초상화 아르바이트나 다양한 일들을 하며 사기당한 일, 저작권 문제, 출판사 단행본 표지 작업 등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펼쳐지기도 합니다.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그 경험들이 쓸만한 어른 기술들을 습득해나가는 과정이었음을 이제는 압니다. 배우고 싶은 게 워낙 많아 다양한 취미 외도를 하기도 하지만, 그림만큼은 돈을 받지 않고서도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계속할 수 있는 거라는 걸 깨닫습니다.


한 기수에 백여 명씩 오가는 수준으로 클래스가 번창하면서 수업 장소도 다양해졌습니다. 집에서도 하고 술집에서도 합니다. 오픈 전 단골 가게에서 하기도 하고, 멤버 찬스를 활용해 장소를 구하기도 합니다. 몸과 마음이 굳은 상태에선 창작이 제대로 될 리 없다는 신조를 가진 아방 작가는 취미 생활을 더 즐겁게 만들기 위해 장소마저도 신박한 선택을 하더라고요.


결석 안 하고 수업에 참여만 해도 컬러 감각이 좋아진다는 걸 알게 해준 멤버처럼 클래스를 운영하며 학생들로부터 배운 것들도 참 많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시너지를 주고받은 셈입니다. 클래스를 진행하며 티칭 스킬도 점점 업그레이드됩니다.


성취감 사는 데 노트와 펜만 있으면 되는 드로잉. 손이라도 반복적으로 움직여보면 결국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때 알게 모르게 변화하게 된다고 합니다. 정답 없는 그림을 지향하는 아방 작가는 가르칠 때도 즐기는 취미 생활 모토가 드러납니다. 색깔 선택을 어려워하는 초보들에게도 색을 골라주지 않습니다. 여러 옵션을 사례와 함께 던져준 다음, 본인 그림에 대입해 보게끔 합니다. 스케치가 조금 진하다고 해서 뭐라 하지도 않습니다. 본인이 느낀 결과물의 만족도에 따라 다음부터는 다르게 연습하면 된다는 걸 자각하면 되는 일이니까요.


'아방이와 얼굴들'은 플리 마켓에도 참가하고 펀딩도 해보면서 취미를 즐기는 방식이 무척 다양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깊은 철학이나 피나는 노력을 담은 그림은 아닐지언정 그저 좋아하는 행위로 채운 잔잔한 결과물에서 얻는 기쁨이면 만족합니다. 드로잉 하는 행위의 시작이 '자기표현 욕구'라는 걸 알려주고 싶고, 다른 이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 아방 작가. 회사를 그만둘 때도 어차피 골치 아픈 거면 하고 싶은 걸 하며 골치 아프겠다며 안전지대 밖으로 뛰쳐나올 만큼 가장 나다운 시간을 찾아가는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이런 마인드를 가진 선생님에게서 배우는데 수업이 어찌 즐겁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그림 취미는 나답게 당당한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과도 같다고 합니다. <꼭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에서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며 함께 나누는 그림 수업 이야기를 통해 내 마음대로 무언가를 그려본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될 겁니다.


"지우개를 갖고 있으면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지우개 따위 버리면 우리는 더 건방지게 살 수 있다." - 책 속에서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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