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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살아요
무레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더블북 / 2022년 4월
평점 :
카모메 식당 영화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무레 요코의 신작 <이걸로 살아요>. 요코 중독자들을 즐겁게 해줄 가볍게 읽기 좋은 취향 존중 에세이입니다. 미니멀리즘을 동경하면서도 무심코 사버리곤 반성하기 일쑤이지만, 오래된 물건의 설렘을 간직할 줄 알고 이것만큼은 취향을 내던질 수 없다는 확고함도 가진,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귀여운(?) 무레 요코의 물건에 담긴 소소한 행복을 엿볼 수 있어요.
<이걸로 살아요>에는 21가지의 취향이 등장합니다. 책 표지에도 무레 요코가 언급한 것들로 아기자기하게 채워져 있네요. 스타우브 냄비로 밥을 짓고, 삼베 시트와 지지미 파자마의 시원함을 좋아하고, 청소기보다 빗자루를 애용하고, 편지지와 우표를 모으는 걸 좋아하는 무레 요코. 노묘와 함께 살며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편지지를 애지중지하는 그의 소소하지만 확고한 취향들을 보면서 공감하게 되는 장면이 어찌나 많던지요.
원고지에 손으로 글을 쓰던 시절이 과거의 유물처럼 되었고, 쓰지 않으니 해가 갈수록 손글씨가 볼품 없어진다며 투덜거립니다. 그래도 만년필과 연필 등 필기구 사랑은 여전합니다. 그런데 문구류도 죄다 플라스틱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되도록이면 플라스틱 제품을 안 쓰려고 노력하는지라 일부러 고무지우개를 굳이 찾아 사용하기도 하면서 대체할 수 있는 노력을 쏟는 일 자체를 즐깁니다.
밥을 짓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걸리는 일들을 즐길 줄 아는 무레 요코입니다. 냄비나 뚝배기에 밥을 짓는 일을 20대 중반 첫 독립 때부터 줄곧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냉동밥도 쪄서 해동하는지라 전자레인지가 없는 집입니다. 밥 짓기 좋은 냄비를 갈아타온 역사를 듣는 일도 즐겁습니다. 요즘 쓰고 있는 건 가장 작은 사이즈인 2인용을 원했던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스타우브 브랜드라고 해요. 빨간 색깔과 앙증맞은 디자인을 보며 '역시 귀여워.'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으니 결국 충동구매하기에 이릅니다. 저는 전기압력밥솥도 쾌속취사를 할 정도로 빨리빨리를 추구하는데, 밥 짓기에 진심인 무레 요코를 보니 뭔가 숙연해지는 기분입니다.
뜬금없이 모기향도 취향이라고 나와있어 뭔 일인가 싶었어요. 줄무늬가 약간 있다 해도 전혀 귀엽지 않은 모기를 진심으로 싫어하는 무레 요코. 모기 퇴치, 박멸용 제품을 이것저것 다 사용해 봐도 역시 최고는 모기향이더라고 합니다.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하게 만든 지지미 파자마 이야기를 읽다가 저도 모르게 지지미 옷을 검색하고 있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지지미 재질은 습하고 더운 여름날에 입기 딱 좋은 재질이어서 저도 예전에 입었던 기억이 나는데 까무룩 하고 있었습니다.
뜨개질을 좋아해서 털실을 고르는 취향도 확고한 편입니다. 다양한 색깔 덕분에 반한 오팔 털실로는 후딱 완성되는 양말을 열심히 만들고, 가볍고 따뜻해 보여서 좋아한다는 로완 사의 털실로는 스웨터를 틈틈이 뜨기도 합니다. 평소 스카프나 숄처럼 몸에 두르는 소품류를 애정 하는 무레 요코이니 목도리도 뜹니다. 그리고... 욘사마 매듭으로 두른다고 합니다.
가지고 있는 물건을 줄이기 위해 여전히 처분 중이지만 특히 책장 앞에서는 머리를 감싸 쥐는 나날들의 연속이라고 고백합니다. 책을 찾을 때 고개를 세우기도 하고 눕히기도 해야 한다는 이야기에서 어찌나 공감되던지요. 저 역시 앞뒤 이중으로 꽂지 않고 고개를 요리조리하지 않게끔 책 분량을 간소화하고 싶습니다.
고양이 일러스트가 그려진 편지지를 보며 '후후후훗' 싱글거리는 게 바로 행복이지 않나며 확고한 취향을 즐길 줄 아는 무레 요코의 일상. <이걸로 살아요>를 읽는 내내 마음이 유쾌해지는 시간을 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