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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쓰는 날들 - 어느 에세이스트의 기록: 애정, 글, 시간, 힘을 쓰다
유수진 지음 / 상상출판 / 2022년 4월
평점 :
마케터이자 에세이스트 유수진 작가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나답게 쓰는 날들>. 에세이스트로 살면서 비로소 내가 나를 인정하고 안아주는 마음이 있어야 당당하게 말하고 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는 그는 한 번 사는 인생, 쓸 만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나다워지는 삶의 의미를 이 책에서 들려줍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소하지만 내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이들과의 에피소드를 들려줍니다. 사랑하는 만큼 보이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6개월마다 퇴사를 반복하던 딸에게 "알아서 해."라는 말을 하는 엄마. 그 말은 덜 신경 써서, 귀찮아서 나오는 무책임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서운하게 들리지 않는 건 믿음이 깔려 있어서겠지요. 당장은 듣기 좋겠지만 버티라는 말 또는 시원하게 그만두라는 말이 오히려 더 무책임한 말일 수 있습니다. 버티는 것만이 해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엄마의 지혜로운 한 마디였고, 딸의 지혜로운 반응을 보며 애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경력 있는 신입을 원하는 사회에서 버티기 위해 아는 척하며 보낸 사회초년생 시절을 잊지 않는 작가의 태도도 인상 깊습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며 열 살 차이 나는 인턴 사원과 호흡을 맞춰나가려 노력하니, 이런 직장 선배가 있는 곳이면 다닐 만할 것 같아요.
"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이유가 단순히 어떤 모습 때문이었다면, 이제는 그 사람이 언제든 다른 모습도 보일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도 사랑해야 한다." - 책 속에서
"너답지 않게 왜 그래."라는 말보다는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그 역시 스스로에게 씌운 이미지가 굳어졌을 때 '원래 그런 사람'으로 입에 오르내리긴 싫었으니까요. <나답게 쓰는 날들>은 한 번의 경험이 안겨준 감정이 고정관념처럼 자리 잡았을 때 다른 경험을 하면서 시야를 확장하는 에피소드가 가득합니다. 선입견, 편견은 새로운 감정의 경험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인지하지 못하니까요. 그렇게 나라는 사람의 세계를 조금씩 넓혀가는 일상의 경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몸을 움직이는 활동의 경험이 다가 아닙니다. 글쓰기로도 사고의 확장은 가능합니다. 글을 쓰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들을 끊임없이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글을 쓰려면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재료로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글쓰기가 힘들어졌다면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살펴보라고 합니다. 수없이 자신을 파헤치게 만드는 일이 글쓰기인데 지금은 나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니까요. 결국 글을 쓰는 때에도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습니다.
미친 듯이 몰두하며 힘을 내다가도 갑자기 모든 일에 손을 놓고 싶은 날도 있습니다. 그럴 때 타인의 글에서 동굴로 들어가고 싶은 속내를 토로하는 글을 만나면 그 마음을 표현한 용기가 동기부여된다고 합니다. 지금 동굴에 있어요. 하지만 곧 나갈 거예요라는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과도 같아서 더 공감이 된다고 합니다.
시간을 무엇에 쓰는지도 되돌아보게 됩니다. 저마다 한동안이나마 몰두했던 취미가 있을 테고 여전히 꾸준히 하고 있는 취미도 있을 겁니다. 그 모든 것들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에게 꼭 맞는 무언가를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의지할 만한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최소한 세 가지 정도는 찾아두면 좋다고 합니다. 그는 글쓰기, 등산, 나의 사람들을 꼽습니다. 정신적으로 힘이 들 때 돌려쓸 수 있는 세 장의 카드가 생기는 거니까요.
살다 보면 소소하지만 분노하게 하는 일들도 참 많습니다. 기분이 상한다는 것은 내 에너지가 부정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의미이지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에너지는 나다움으로 전환하는 데 도움 되기도 합니다. 소소하게는 분식집 주인의 예의 없는 전화를 목격한 후 타인에 대한 예의를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하고, 글을 무단 도용당하는 심장 떨리는 일을 맞닥뜨렸을 땐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로 임하기도 하면서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나다워지는 성장 여정을 보여준 에세이 <나답게 쓰는 날들>.
달라지지 않을 것만 같은 삶 속에서 점점 나를 잃어가는 느낌이 든다면 읽어보세요. 거창하지 않아도 조금씩 단단한 나로 나아가기 위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살아가는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