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노래하듯이
오하나 지음 / 미디어창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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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귤나무를 키우며 음악 하는 남편과 강아지 보현과 함께 사는 오하나 작가의 제주살이 에세이 <계절은 노래하듯이>.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 같은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농부는 농부의 달력이 있다고 하죠. 24절기 계절의 흐름에 맞춰 함께 발맞춰 나아가는 농부의 삶이 <계절은 노래하듯이>에 담겨 있습니다. 제주 북서쪽 바다를 면하고 있는 20년 넘은 집은 싸늘한 공기를 품고 있지만, 계절과 시간대와 기분에 맞춰 음악을 선곡해 뜨거운 보이차 한 잔으로 새벽을 여는 하루는 상쾌하다 못해 청명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강원도 산간에 온 것처럼 눈이 쏟아진 소한. 올해는 무엇으로 빈 노트를 채울까 기분 좋은 설렘을 안고, 눈이 내리면 비로소 고요하게 드러나는 흔적들을 보면서 새하얀 제주를 산책합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지만 아직은 겨울방학입니다. 귤 수확을 마친 후 봄이 찾아오기 전까지 농부에게 주어지는 더없이 달콤한 시간입니다. 숙제 같은 집안일도 최대한 미루면서 내키는 대로 산책을 떠나고 운동도 하고 원 없이 음악도 듣고 부지런히 책도 읽습니다.


이 꿀같은 시간도 봄기운이 도는 우수를 지나고 나면 슬슬 끝이 납니다. 경칩이 되면 본격적인 농사 준비가 시작됩니다. 개학을 하는 날인 셈이죠. 남편과 보현과 농원으로 향합니다. 모진 날씨에 귤나무 한 그루가 죽었지만, 우리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앞을 보는 연습을 하게 해주니 자연이 가르쳐주는 것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자연의 리듬에 사는 농부의 삶은 자연에 맞춰서 살아가는 식물들로부터 수많은 지혜를 얻는 삶이기도 합니다. 죽을 것만 같았던 배나무가 생존해 있기도 하고, 잠시 내버려 둬도 알아서 몸을 챙기는 귤나무들로부터 독립심과 어른스러움을 배우기도 합니다.


여름이 시작되면 새벽부터 우는 수컷 재비의 노랫소리로 하루를 맞이하고, 농원의 귤나무에도 귤꽃이 피어 그윽한 향기로 가득해집니다. 낮이 점점 길어지는 하지가 되면 멧비둘기들이 찾아옵니다. 멧비둘기 가족을 시작으로 모진 태풍 속에서 형제를 잃고 간신히 살아남은 멧비둘기까지, 이곳은 어느새 멧비둘기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열대야로 밤잠을 뒤척이는 계절이 되면 쌍살벌에 쏘이는 액땜을 거하게 하기도 합니다. 귤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덩굴 안쪽에 집 짓는 걸 좋아하는 쌍살벌이어서 어쩔 수 없이 매년 고생입니다. 그렇다고 덩굴을 무작정 안 좋은 식물로 취급하기도 애매합니다. 오히려 방제할 필요 없이 깨끗한 나무가 많다는데, 쌍살벌이 해충을 잡아먹어서이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펼쳐봅니다.


가을장마에는 풋귤이 알차게 영글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되고, 가장 맛있는 귤만 골라 먹는 멧비둘기들이 얄밉기도 하지만, 귤을 거두는 작업을 클리어하면 한없이 밀려오는 안도감과 감사함에 폭 파묻히기도 합니다.


독자에게까지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게 힐링 마력을 가진 <계절은 노래하듯이>. 길고양이의 밥을 챙겨주다가 보은을 수없이 받기도 하고, 다친 야생동물을 구조하기도 하면서 자연과 함께 하루하루 어우러져 살아가는 오하나 작가의 슬로라이프. 귀농을 택한 용기와 도전,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차근차근 나아가는 그들의 삶을 따라가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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