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없는 원숭이 (50주년 기념판) - 동물학적 인간론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김석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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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출간 이후 자연과학 분야 최장기 베스트셀러 <털 없는 원숭이 : 동물학적 인간론 (The Naked Ape)>. 50주년 기념판의 한글 번역판에서는 우리나라의 대중 과학서 저술가인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최재천 교수님과 저자 데즈먼드 모리스와의 인터뷰 전문이 실려 있어 뜻깊습니다.


이 인터뷰에는 흥미진진하고 놀라운 이야기들이 쏟아집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초판 표지에 실린 그림이 바로 데즈먼드 모리스의 그림이라고 합니다. 둘은 선후배 관계로 '이기적'이란 단어로 고민하던 리처드 도킨스에게 조언도 해줍니다. 평생 초현실주의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저자의 그림을 그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이기적 유전자> 계약 시 받은 선인세를 몽땅 투자해 작품을 구입해서 표지로 사용했더라고 합니다.


반세기가 흘러도 구닥다리 지식이 아닌 명쾌한 인간 해석을 보여주는 <털 없는 원숭이>.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과학 교양서로 에드워드 윌슨, 리처드 도킨스, 스티브 핑거, 스티븐 제이 굴드 등 이후 대중 과학서 세계를 연 의미 있는 책입니다. 저자 특유의 위트 넘치는 문장이 압권이라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습니다. <이기적 유전자>, <사피엔스>를 읽은 독자라면 인간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날카롭게 관찰한 인간 종 보고서 격인 <털 없는 원숭이>를 꼭 읽어보길 바랍니다.


지금 시대에는 털 없는 원숭이라는 말에 공감하고 절묘한 비유여서 피식 웃게 하는 정도일 뿐이지만, 50년 전만 해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만한 제목이었습니다. '털 없는'이란 단어는 외설적으로 받아들였고, 인간을 동물로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인성 모독이었던 거죠. 종교인들의 공격은 기본이었습니다. 게다가 대중 과학서라는 목적으로 저자가 의도한 거였는데도 책에 참고문헌과 각주, 색인이 빠졌다고 지적하는 학자들로부터 공격받았습니다. 그리고 일개 동물학자가 인류학, 심리학, 사회학의 전문 분야를 침범했다며 공격받았습니다. 당시엔 유전자가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건 애초에 배제된 시대였고, 인간의 성생활이 사회에 영향 미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저자는 개정판을 낼 때마다 수정한 건 숫자 하나뿐이었다고 합니다. 세계 인구가 초판 당시 30억에서 개정판을 낼 때는 40억, 50억... 현재 80억에 이르는 그 숫자만 수정했습니다. 그러면서 긴 세월 동안 유전적 요인의 영향력을 과학계가 인정해가는 현실을 즐겼다니 정말 대단하신 분이네요.


<털 없는 원숭이>는 인간을 관찰한 사실만을 전하는 글입니다. 오랫동안 다른 동물의 행동양식을 연구해온 동물학자로서 특이한 영장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행동양식을 고찰한 책입니다. 목차를 보는 순간 외계인이 인간 종을 관찰한다면 딱 이런 구성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했는데 마침 저자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걸 보니 더 기대감을 안고 읽었습니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193종의 원숭이와 유인원이 살고 있다. 그 가운데 192종은 온몸이 털로 덮여 있고, 단 한 가지 별종이 있으니, 이른바 ‘호모 사피엔스’라고 자처하는 털 없는 원숭이가 그것이다." - 첫 문장 


<털 없는 원숭이>에서는 다른 동물들도 하고 있는 일들, 음식을 먹고 몸을 손질하고 잠자고 싸우고 짝짓고 새끼를 돌보는 활동에서 털 없는 원숭이는 어떤 점에서 독특하고, 그 독특함은 진화의 역사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들려줍니다.


잔털이나 머리카락이 있어도 인간의 털은 기능적으로 완전히 벌거숭이와 다름없습니다. 혈통은 영장류지만 육식동물의 생활방식을 채택한 인간. 우리는 다른 종인 것처럼 오만함에 빠져 있지만, 숲을 떠난 원숭이의 성공담이라는 시니컬하지만 명쾌한 비유가 인상 깊습니다. 연장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 만드는 동물로 진화하면서 사냥하는 원숭이로 텃세권을 가진 원숭이가 되었습니다.


열매 따먹는 영장류에서 사냥하는 육식동물로 바뀔 때, 성적 특성의 변화도 이루어졌습니다. 한 쌍의 암수 관계를 형성한 남녀 사이를 형성합니다. 인간은 모든 영장류 가운데 가장 성적인 동물이라고 합니다. 왜 새로운 형태의 암수 관계를 만들어냈는지, 우리의 성행위 방식이 우리의 생존에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에 주목하며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지금 읽어도 놀랄 만큼 노골적인 성에 대한 묘사는 그가 의도한 대로 세밀하게 묘사됩니다. 우리의 행동양식이 가진 생물학적 측면을 연구해야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인식을 얻을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는 <털 없는 원숭이>이니까요.


동성연애에 대한 당시 기준으로서는 쇼킹했을 법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번식이라는 주요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데도 생물학적으로 결코 이례적인 것이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번식이라는 의미에서는 동성연애자뿐만 아니라 수도승, 수녀, 노처녀와 노총각도 변종이지 않냐고 합니다. 수도승이 변종이 아니듯 동성연애자도 변종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폭넓게 오랫동안 부모의 부담을 짊어지는 동물은 인간뿐입니다. 아이의 발달 과정을 보면 모방 능력은 가히 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부모를 모방함으로써 배우는 겁니다. 게다가 인간은 가장 뛰어난 기회주의자이기도 합니다. 늘 탐험하며 환경에 재빨리 적응할 줄 압니다. 침팬지와 우리의 차이를 가장 뚜렷이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합니다. 어린이와 침팬지 세계는 놀랍도록 공통적인 놀이 탐험을 하지만 침팬지는 딱 그 수준에서 머무르지만, 인간은 어느 단계를 벗어나면 탐험 행위가 별개의 충동으로 발전합니다.


영장류의 기본적인 생활방식은 계급제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기를 사용할 줄 알고 고정된 기지를 갖고 서로 협력하는 사냥꾼이 되면서 새로 획득한 육식동물의 역할에 걸맞게 수정되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의 공격성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공격에는 어떤 행동양식이 뒤따르는지, 우리는 남을 어떻게 위협하는지를요. 공격자와 피공격자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경쟁자들은 패배하는 게 아니라 무차별 살해당하며 인류가 어떻게 스스로 파멸로 몰고 갔는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단 음식을 좋아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특징에 대해서도 재미있습니다. 원숭이와 유인원은 단맛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에는 무엇이든 강렬한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단것에 좀처럼 저항하지 못하는 인간의 본능을 이해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털손질 대신 몸손질을 하게 된 인간. 흥미로운 건 몸손질을 유도하는 질병의 유래였습니다. 성공을 누리고 있거나 사회적으로 잘 적응한 사람에 비해 위로받은 싶은 욕구가 격렬한 이들은 감기, 두통, 인후염 등 병의 증상이 심해진다니 놀랍습니다. 돌봄을 받고 싶은 욕구와도 연결되는 부분이 신기합니다. 다른 동물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공생 관계인 개를 비롯해 우리 인간의 특수한 자질을 강하게 연상시키는 자극을 발산하는 동물을 애정합니다.


우리의 동물적 본성을 통해 인간이라는 종을 폭로하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참하게 격하시키는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특별한 동물입니다. 인류가 이런 방식으로 진화해왔으며, 우리가 자연적으로 타고난 동물적 특성이라는 걸 하나하나 짚어주는 <털 없는 원숭이>. 모든 것들에 수많은 생물학적 기본 원칙이 적용하고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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