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달콤한 인생입니다 - 아픈 나와 마주보며 왼손으로 쓴 일기
고영주 지음 / 보다북스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결국 오른손 엄지손가락은 안쪽으로 살짝 굽은 채 굳어 버렸다." 20년 동안 오른손을 험하게 다뤘더니 결국 탈이 났습니다. 오른손 엄지손가락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걸 아프고 나서야, 움직일 수 없게 되어서야 후회합니다. 필요적으로 섬세하게 손을 써야 하는 기술자였기에 그 고통은 컸습니다. 균형이 깨진 손을 마주하며 이제 균형을 맞춰보려고 합니다. 고생했던 오른손은 좀 쉬게 놔두고 왼손을 서툴게 사용해 봅니다.


아프고, 슬프고, 절망스러웠지만 왼손에 펜을 들고 왼손으로 쓰고, 왼손으로 일하고, 왼손으로 생각하며 살아온 1년의 기록 <이만하면 달콤한 인생입니다>. 불안한 마음과 육체를 보듬어가며 다시 몸과 마음에 근육이 생기는 여정을 그린 1세대 쇼콜라티에 카카오봄 대표 고영주 저자의 에세이입니다.


저도 엄지손가락과 손목까지 고루 아파본 경험이 있는데 머리 묶는 것부터 옷 입기, 설거지 등 일상의 모든 동작에서 엄지손가락이 얼마나 지대한 작용을 하는지 비로소 깨달았던 경험을 톡톡히 했었습니다. 그런데 초콜릿을 만드는 쇼콜라티에가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쓰지 못하게 되었으니 직업 위기에 처할 수밖에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씹는다고 하던가요. 본격적으로 왼손을 훈련시키기로 결심합니다. 몰스킨 그림일기로 유명한 밥장님의 줌 수업까지 들어가며 그림을 그려나갑니다. 당연히 처음엔 생각처럼 안 그려지고 글도 삐뚤빼뚤합니다. 그런데 고영주 저자는 섬세한 손을 가져서인지 제 눈에는 첫 왼손 일기도 무척 훌륭해 보였어요. 저도 이 책을 읽으며 왼손으로 써봤는데, 자세도 안 나오고 획 하나 긋는 것도 힘없이 비실거리더라고요.


사실 예쁘게 쓰는 것보다 더 힘든 건 따로 있었습니다. 머릿속의 생각과 쓰기가 비슷하게 진행되어야 하는데 왼손으로 쓰다 보니 생각과 쓰기의 속도가 일치하지 않아 조금만 지나도 뭘 쓰려고 했었는지 생각이 뚝뚝 끊기길래 정말 힘들었답니다.


그동안 아픈 날에만 쉬었다는 걸 깨달은 그는 이제라도 자신에게 선물을 주기로 합니다. 제주 올레 트레킹을 하러 한 달의 휴식 시간을 가진 겁니다. 20년간 일하느라 삐걱대는 몸이다 보니 놀멍쉴멍 올레길을 걸어도 중간중간 쑥뜸을 뜨러 병원을 다녀와야 할 지경입니다. 결국 발목까지 접질려 완주는 하지 못했지만, 제주 올레 트레킹을 하며 얻은 즐거움은 컸습니다.


그 길을 걸으며 자신과 화해하며 스스로를 보살피는 방법을 배웁니다. 그저 현실 도피하듯 떠난 여행이 아니라 더 즐거운 현실로의 여행이 된 시간이었습니다. 멀리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지 못하더라도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마음의 근육을 튼튼히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만하면 달콤한 인생입니다>를 읽다가 글씨가 갑자기 예뻐지고 그림도 그 어느 때보다 신경 쓴 티가 팍팍 나는 페이지는 어김없이 초콜릿 이야기가 나오는 장면이었습니다. 초콜릿 전문책을 세 권이나 낸 1세대 쇼콜라티에인 만큼 직업으로서의 쇼콜라티에 스토리를 들려줄 때는 고영주 저자의 애정이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것 같아요.


만드는데 5분밖에 안 걸리는 초간단 초콜릿 잼 레시피도 알려주고, 초코티라미수 레시피도 등장합니다. 수제 초콜릿과 젤라또를 만드는 기술자로서 각 재료의 역할을 이해해야만 구현해낼 수 있는 레시피에 대한 이야기 속에는 그만의 진솔한 철학이 깃들어 있습니다.


장사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어야 하는 일이라며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업력은 쌓이는데 기술적인 문제 외의 고민들이 끊이질 않는 자영업자이니까요. 그럼에도 생각하는 손을 가진 기술자로서 그가 원하는 일과 삶의 방향을 놓치지 않고 변함없이 한 길을 걷고 있으니 정말 대단합니다.


쉼 없이 달려온 그를 위해 엄지손가락이 이제 조금은 쉬어야 한다고 탈이 났었나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뒷방으로 물러나진 않았습니다. 자책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왼손을 사용하며 좋아하는 일을 지켜가는 하루하루가 소중하니까요. 물론 이제는 몸과 마음을 돌보면서 말이죠. 초콜릿 만드는 흰머리 할머니가 되는 그날까지 쇼콜라티에의 길을 걷는 고영주 저자의 앞길을 응원하게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