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다는 착각 - 우리는 왜 게으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가
데번 프라이스 지음, 이현 옮김 / 웨일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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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심리학자 데번 프라이스는 게으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게으름은 없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퍼뜩 이해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게을러서,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며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을 계획으로 채워 넣으려고 하는데 말입니다. <게으르다는 착각>에서 사회가 만든 신념 체계이자 허상인 게으름이라는 거짓을 마주해보세요.


거절도 잘 못하고 소진과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을 앓고, 만성수면 부족을 견디며 때로는 대여섯 시간 몰입해 미친듯이 달리다가 탈진에 이릅니다. 재충전이 끝나면 그 시간을 생산적으로 쓰지 못했다고 죄책감에 빠집니다. 빨리 이메일에 답장해야 하고, 두 시간 동안 많은 일을 해내면 뿌듯해합니다.


그들은 성실한 직원, 열정적인 활동가, 사려 깊은 친구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자신도 모르게 있습니다. 머리로는 무리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합니다. 이처럼 게으름이라는 거짓에 빠진 이들이 대부분이고, 자신의 가치를 생산성으로 얻는 이들이 많습니다.


저자도 그랬습니다. 결국 병으로 건강을 망치고 나서야 멈췄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몸을 망가뜨리지 않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삶을 사는 데 집중하게 된 겁니다. 저자의 말처럼 한다고 해서 구제 불능 게으름뱅이가 될 거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에너지나 동기가 없을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게으름이란 단어는 도덕적 비판, 비난이 담긴 어조로 사용됩니다. 실제로는 무척 힘들게 버티고 있지만 타인의 눈에는 무능해 보일 뿐입니다. 우리 사회는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의지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게으르다는 착각>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당연히 여겼던 게으름의 거짓 상식을 짚어줍니다. 내 가치를 생산성에서 찾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직업으로 정의 내립니다. 타인에게 제공하는 노동을 기준으로 분류하죠. 더불어 내 감정과 한계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나태하고 무능하다면서 더 몰아붙이는 걸로 극복해내려 합니다. 게다가 항상 더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믿습니다. 하루를 이상적으로 근면 성실하게 채우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게으른' 단어는 1540년경 영국에서 등장했고, 청교도인의 미국 이주로 게으름이라는 거짓은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계약 하인, 가난한 노동자, 원주민 등 소외된 이들에게까지 확산됩니다. 착취 당하는 집단은 불평 없이 일하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산업혁명 후 더 심화됩니다. 생산 공장의 근로자들이 계속 바쁘지 않으면 범죄나 알코올 문제가 생긴다는 주장으로 선동하면서 말이죠. 게으름은 공식적으로 개인의 실패이자 퇴치해야 할 사회악이 된 겁니다. 그리고 현대에까지 이 관점은 이어집니다.


게으름을 죄악과 동일시하는 세상에서는 무언가를 그만두는 걸 용납하지도 않습니다. 수많은 책임을 떠맡으면 슈퍼우먼, 슈퍼맨이라는 칭찬을 듣습니다. 혐오하고 두려워하게 된 '게으르다'는 느낌. 이것은 사실 피곤하고 소진되었다는 신호라고 합니다. 형편없이 무력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지쳤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우리가 느끼는 피로감과 게으름은 약간의 휴식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인 겁니다. 수년간 과로가 남긴 피해의 회복이 물론 쉽지는 않지만요.


흥미로운 점은 늑장 부리는 것도 게으름의 거짓에 포함된다는 거였습니다. 늑장을 부리는 것은 신경을 너무 많이 쓰고 잘하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거라고 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손발이 묶일 때 늑장을 부립니다. 완벽주의, 불안, 주의 분산, 실패의 주기에 갇히기 쉬운 사람들이 쉽게 걸려듭니다. 타인의 눈에는 타당한 이유 없이 늑장 부렸다고 생각되지만, 그들은 자신감과 명료함이 부족해 생산적인 방식으로 꾸준히 하기가 힘들 뿐이라는 걸 짚어줍니다.


게으름을 적으로 보는 것을 멈추면, 놓아버리는 행위를 편하게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자책 대신 실제 가치를 반영하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데 도움도 되기에 해야 할 일 목록에서 몇 개를 해치웠는지로 내 가치를 측정하는 것은 멈추자고 조언합니다.


"게으름을 받아들이는 것은 삶의 질에 혁명적인 영향을 준다." - 책 속에서 


인간은 하루에 8시간씩 일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디지털 업무 도구들 때문에 귀가 후에도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긱 경제 출현으로 부업 압박까지 받고 있습니다. 양질의 일을 하려면 휴식할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연구결과 주 40시간 이상 일하면 효율성과 정확성이 점점 떨어지고, 55시간을 넘어서면 차라리 일을 안 하는 게 나을 정도라고 합니다. 솔직히 업무를 하다 보면 하루 평균 3시간 정도만 생산적이라는 건 저도 공감합니다. 나머지 시간은 커피의 힘으로 버틸 뿐이죠.


게으르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다양한 방법 중 최근에 읽은 책들의 내용과 상통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더 나은 나를 위한 하루 감각 사용법>에서 등장한 음미하는 법의 중요성, <공감병>에서 언급한 정동적 공감의 부작용과도 연결되는 과한 책임감을 떨쳐내는 법, 한겨레21에 연재했던 김소민의 아무몸 시리즈의 주제인 살에 대한 혐오 역시 게으름이라는 거짓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게으름과 생산성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게으르다는 착각>. 게으름의 정체를 알고 나니 오랫동안 세뇌된 만큼 쉽게 벗어나진 못하더라도 스트레스 덜 받고 죄책감을 덜어내며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을 찾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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