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인류의 공존 플랜 -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
미노슈 샤피크 지음, 이주만 옮김 / 까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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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불평등이 만연한 시대. 기후 위기,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이에 따른 불가피한 경제적 여파는 기존의 사회계약이 더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드러냈습니다.


국가정책 수립 현장에서 치열하게 경력을 쌓으며 세계은행, IMF 부총재를 역임한 정치경제학자 미노슈 샤피크는 <이기적 인류의 공존 플랜 (원제 What We Owe Each Other : A New Social Contract)>에서 정책 실무자로서 얻은 통찰이 담긴 21세기에 적합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기 위한 길을 제시합니다. 위기를 해결할 대안을 이해하고 규정하는 데에 유용한 구조물은 바로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좌우하는 정책과 규범인 사회계약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는 수많은 사회의 사람들이 사회계약이 제공하는 삶에 좌절하고 있다." - 책 속에서


취업, 세대 간 갈등, 교육, 보건의료 등 사회와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상호의무는 어떤 형태로 바뀌어야 할까요. 이 답변이 정치, 경제, 사회 분야 여러 난제들을 해결하는 열쇠가 될 거라고 합니다. 사회계약론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먼저 들려줍니다. 계몽시대에 이 개념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사회를 구성하지 않으면 얻지 못할 특정한 혜택을 얻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상호의존한다는 생각입니다. 토마스 홉스, 존 로크, 장 자크 루소에 의해 사회계약론 개념은 발전하는데 지배적인 체제 안에서만 논의되었고, 최소한의 권리와 의무만 규정했습니다. 이후 국가에 대한 시민의 의무가 무엇이고 또 상호의무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며 오늘날 기회균등 개념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핵심 가치가 생기게 됩니다.


실제 사회 구성원에게 제공되는 기회의 구조는 국가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를 띱니다. 덴마크에서는 저소득 계층이 중위소득 계층으로 이동하는 데 평균 2세대가 걸리고, 영국이나 한국은 5세대, 브라질 등 불평등이 심한 나라에서는 무려 9세대 이상이 지나야 합니다. 미노슈 샤피크 저자가 말하는 사회계약은 공공복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 개인, 기업, 시민 사회, 국가가 서로 약속하고 협력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여러 수단 중 하나인 복지국가라는 개념은 사회가 공동으로 위험을 분담하기 위해 자원 비축, 공공복지 재원 마련, 정치적 절차를 거쳐 정부가 사업을 시행하는 메커니즘을 말합니다. 국가마다 복지에 대한 접근법 역시 다양하게 나타나지요.


하지만 과거의 사회계약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여성의 절반이 노동 시장에 고용되어 있고, 이혼율이 증가하고,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저기술 노동자들의 실업률이 증가했습니다. 중산층의 붕괴, 고령화, 인공지능 등 기술 변화, 기후 위기까지... 부작용을 관리하는 데에 실패한 겁니다. 그렇다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적용된 21세기에 꼭 필요한 새로운 사회계약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이기적 인류의 공존 플랜>은 사회계약의 주요 요소인 아이들, 교육, 건강, 노동, 고령화, 세대 간 사회계약과 관련해 미래에 우리가 어떤 의무를 지는지에 관한 담론을 꺼내들었습니다. 모두에게 더 좋은 기회가 돌아가는 구조를 창출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좌절, 분노로 촉발되는 정치적 악순환을 끊을 수 있도록 말이지요.


나라마다 다른 가족에 대한 접근법은 보육 정책에도 차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 양육의 책임을 공공의 영역에 두기를 주저하고 육아를 무급 노동으로 취급하는 통념 하에서 여성의 육아와 직장생활 문제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여성의 경제적 역할과 아이들의 복지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보육 지원과 연관된 사회계약 개선의 필요성을 짚어줍니다. 기술 발달로 35억 명이 검색 엔진을 갖춘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시대에서 기존의 전통적인 교육은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족의 책임으로 지우는 유아기 교육과 더불어 100세 고령화 시대를 살아가려면 근로 수명이 길어진 만큼 필요한 기술 재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의료제도 부문에서도 사회계약이 봉착한 문제들이 많습니다. 건강 문제는 어디까지가 개인의 책임이고, 어디까지 사회의 책임일까를 생각해 보는 것에서부터 넛지 활용 정책의 효용에 대한 이야기까지 인구 고령화와 기술 발전으로 누구나 더 건강한 삶을 누릴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계약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현 노동시장과는 점점 부합하지 않는 노동 관련 규제나 사회보장 시스템도 바뀌어야 합니다. 노동자 보호 정책과 노동유연성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나가야 할지가 관건입니다. 노후를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채로 일찍 은퇴하는 현실에서 고용 형태 변화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연금제도의 문제점도 짚어줍니다.


<이기적 인류의 공존 플랜>에서는 효력이 다한 사회계약 사례가 수두룩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생활 수준과 기회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은 태어난 시대와 장소라고 합니다. 사회적 차원에서 세대 간의 사회계약은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미래 세대에 남기게 될 유산도 환경 문제를 포함해 광범위하고요. 현재 세대들 간에 벌어지고 있는 격차를 어떻게 메워야 할지, 파괴된 환경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에 대해 들려줍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은 기존의 사회계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안정된 삶과 다양한 기회를 보장하는 보다 나은 사회구조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상호의존성을 인정하고, 그 의존성을 상호이득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모두에게 최소한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시민 역량 가치에 투자하고, 효율적이고 공평하게 위험 분담하는 사회계약. 이 사회계약은 한 나라의 역사와 가치관, 여건이 반영된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사회계약이라 하면 전문가에게만 맡겨야 한다고 여겼지만, 개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에 궁극적으로 정치 체계의 책임성을 개선하는 일과도 같다고 합니다. 개혁은 사회가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해야 가능해집니다. 우리의 새로운 선택이 필요한 겁니다.


인생의 중대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나름의 견해를 형성하는 데 도움 되는 <이기적 인류의 공존 플랜>. 사회계약에 생긴 균열을 메꿔 누구나 기회를 제공받고 오래도록 사회에 일조하게끔 만드는 환경을 꿈꾸는 개개인이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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