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누구니 - 젓가락의 문화유전자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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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지적 편력을 집대성한 최후의 저작 시리즈로 기획해 시리즈의 첫 번째 책 <너 어디에서 왔니>를 출간 후 방대한 원고를 유고로 남긴 이어령 저자. 거대한 문명의 파도를 넘나드는 이어령의 마지막 유작, 한국인 이야기(전 4권) 시리즈와 아직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전 6권) 시리즈를 우리는 앞으로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이 샘솟습니다.


해산 후 미역국을 먹는 유일한 출산 문화와 더불어 태아의 생명 기억으로부터 이어지는 한국인의 이력서를 담은 <너 어디에서 왔니>에 이어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두 번째 책은 젓가락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젓가락 문화를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살펴봅니다.


천년도 훨씬 넘은 백제 무령왕릉에서 금관 장식과 함께 발굴된 유물이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하루에 몇 번을 사용하는 물건입니다. 바로 젓가락입니다. 식사를 할 때도 전쟁하듯이 칼로 베고 창으로 찌르는 서양과 달리 우리는 매 끼니 수저를 사용합니다. 말을 배우는 시점에 자연스럽게 배우는 젓가락질. 일찍 젓가락질을 배울수록 좋다고 여기기도 하고, 교정용 젓가락도 있습니다.


한중일 3국 모두 사용하지만 그 재질이나 모양이 제각각입니다. 우리는 금속젓가락을 사용하고, 숟가락과 반드시 짝을 이뤄 쓰는 유일한 민족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젓가락. 이제 새롭게 바라볼 때입니다.


헬조선이라는 말과 함께 유행한 수저계급론. 금수저는 돈 많고 능력 있는 부모를 둔 사람이고, 흙수저는 돈도 배경도 변변찮아 기댈 데가 없는 사람입니다. 신분 계급을 왜 하필 수저에다 비겼을까요.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는 통치자는 황금, 보조자에겐 은, 농부와 노동자에겐 무쇠와 청동을 섞어 인간을 태어나게 했다고 말했고, 소설 <돈키호테>에서는 은스푼을 물고 태어난다는 문장이 등장합니다. 이미 외래문화의 산물이었던 겁니다.


부르는 명칭에 담긴 역사와 문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문헌상 '저'라는 말은 중국에서 먼저 나왔지만 지금 중국은 '쾌자'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일본은 '저'자를 쓰고는 '하시'라고 읽습니다. 한국은 한자 '저'뒤에 '가락'이라는 토착어를 붙여 손가락의 연장임을 나타냈습니다. 한국적인 리듬이 내재된 가락문화를 품고 있는 젓가락. 그래서 젓가락을 양손에 들고 밥상을 두드리는 게 아주 자연스러웠나 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나라만 쇠젓가락이기에 뭘 두드리든 소리가 날 수 있었다는 사실!


길이나 재질은 왜 다를까요? 음식문화가 달라서였습니다. 우리는 국물 문화로 뜨거운 국물을 먹으려면 숟가락이 금속이어야 하고 그 짝을 이루는 젓가락도 금속제여야 했던 겁니다. 여기서 한국 특유의 짝문화가 나옵니다. 오늘날은 짝문화가 점점 약해지고 있지만 너랑 나랑, 니캉 내캉 같은 정겨운 말이 익숙하지요. 반드시 두 개를 합쳐서 잡아야 하는 젓가락처럼 짝의 문화 역시 전승되는 문화유전자라고 합니다.


생물학적 유전자와 달리 문화적 관습이나 모방을 통해서, 거의 반은 무의식적으로 반은 의도적으로 배워서 몸에 익히는 것을 문화유전자라고 합니다. 문화적 밈인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냉면을 포크로 먹는 아이들이 늘 정도로 젓가락 위기론이 등장할 정도입니다. 문화유전자 밈의 단절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젓가락은 완전히 손가락 두 개를 연장한 형태입니다. 여기서 손가락의 협력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다른 손가락과 맞대는 엄지가 있기에 영장류와 인간은 달라졌습니다. 재미있는 건 젓가락은 다섯 손가락을 모두 정밀하게 써야 합니다. 두 손가락만으로 젓가락을 잡아 음식을 집으려고 하면 얼마나 힘든지 알 겁니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개별화되어 있으면서 전체로 작용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젓가락질로 우열을 논하면 안 됩니다. 전 세계 인구 3분의 1은 젓가락을 사용할 줄 압니다. 한국인이 한국어 능력 DNA를 타고나지는 않듯 타고난 유전자와는 상관없는 겁니다. 대신 사회에서 모방학습한 문화유전자인 젓가락질은 우리의 정체성이 되는 겁니다.


젓가락 원조 논쟁보다는 어느 나라가 젓가락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고, 젓가락 정신을 잘 이해하느냐가 관건이라는 이어령 저자의 말씀이 인상 깊습니다. 요즘은 연필을 칼로 깎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듯 젓가락질을 못하는 손은 손으로 하는 다른 작업들도 능숙하지 못하게 됩니다.


인간 삶의 기본이 되는 '식', 먹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젓가락. 이대로 흘러간다면 오랜 세월 이어진 우리의 정체성이 옅어질 겁니다. 젓가락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음식을 집는 도구가 아닌 건강을 지키는 도구로 발전시키면 어떨까요. 바이두에서는 불량식품 근절을 위해 스마트 젓가락을 내놓았고, 구글은 환자들을 위한 손떨림 방지 숟가락을 개발했는데 우리는 조용합니다. 금속젓가락을 사용하는 우리가 가장 유리한 입장인데도 말입니다. 1993년 중앙일보에 이미 젓가락 문화의 위기에 대한 글을 올린 바 있는 이어령 저자의 오래된 숙원이 <너 누구니>에 드러나 있습니다.


11월 11일은 빼빼로데이로만 알고 있지 말고, 2015년 청주에서 한중일 3국 공동으로 선포한 젓가락의 날이라는 것도 꼭 알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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