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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열의 서방견문록 : 뉴욕 편 - 서양 문명의 종착지 뉴욕에서 여정을 시작하다
김재열 지음 / 트로이목마 / 2022년 3월
평점 :
인류문화의 초고밀도 축소판 뉴욕. 리틀이탈리아와 차이나타운이 마주하고 있고, 미식가들의 천국, 고풍스러운 건물과 현대적인 건축물이 공존하며, 초호화 콘도미니엄과 홈리스가 공존하는 곳, 최첨단 공연장과 길거리 연주가 공존하고 가장 비싼 미술작품과 그래피티가 그려진 거리가 공존하는 곳... 뉴욕을 정의 내리기란 참 복잡 미묘합니다. 고대 로마의 전성시대 이후 명실상부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초강대국이자 산업자본주의로 대변되는 번영의 나라 미국에서도 서양 문명의 종착점이라 일컫는 곳. 세계여행 스토리텔러 김재열의 서방견문록의 첫 여정으로 삼을만한 뉴욕입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 야심찬 신대륙 발견에 불을 붙였고, 향후 동서양 역사에 끼친 영향이 어마어마했듯 <김재열의 서방견문록>은 서양의 산물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중해에서 태동하여 북미까지 확장된 서양문명 탐구의 맛을 보여줍니다.
14시간 비행 후 JFK 공항에서 잡아탄 뉴욕의 옐로캡 택시를 타고 퀸즈보로 브리지를 지나며 뉴욕의 여정은 시작합니다.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의 지원을 받았고, 제8대 유엔사무총장으로 역임한 반기문 총장이 있듯 한국 현대사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친 국제기구 유엔의 세계본부가 바로 뉴욕에 있습니다. 이 건물 앞에는 비폭력의 상징물이 있습니다. 구소련이 냉전시대에 유엔에 기증한 <칼을 쳐서 보습으로>라는 조각 작품인데 우크라이나 조각가의 작품이라는 것이 요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생각해 보면 묘해집니다. 근처에는 권총의 총구를 엿가락처럼 꼬아버린 스웨덴 조각가의 <매듭지어진 총>이라는 작품도 있습니다. 광팬의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은 존 레넌을 추모하기 위해 놓인 작품입니다.
센트럴파크 끝자락에는 거대한 원형 광장 콜럼버스 서클이 있고, 교차로 정중앙에 콜럼버스 조각상이 있습니다. 매년 10월 두 번째 월요일을 콜럼버스 데이로 국경일로 기념하고 뉴욕에서 기념 퍼레이드가 열립니다. 컬럼비아산, 나사의 컬럼비아 우주왕복선, 컬럼비아 픽처스 영화사, 컬럼비아 대학교 등 그의 이름은 미국 곳곳에 살아 있습니다.
뉴욕은 인종의 용광로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음식의 용광로이기도 합니다. 미국에만 들어오면 블록버스터급으로 대중화가 됩니다. 피자, 베이글, 핫도그, 햄버거, 프렌치프라이, 브런치 등이 전 세계인에게 미친 영향력은 거대합니다. 그 어느 나라도 패스트푸드 쇄국대전에서 완패한다는 명쾌한 해설이 인상 깊습니다.
무엇보다 뉴욕은 랜드마크의 천국이기도 합니다. 인간 욕망의 블랙홀과도 같은 대도시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진 뉴욕. 록펠러와 카네기의 통 큰 기부 덕분에 발전을 했다고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 미국 재벌은 악덕 기업주이면서도 자선사업가였습니다. 값싸고 질 좋은 철강 덕분에 탄생한 숱한 마천루들 외에도 뉴욕을 뉴욕답게 만든 뮤지컬, 재즈, 클래식, 미술관, 박물관 등 문화 예술 분야의 발전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뉴욕이 미국의 첫 수도였던 만큼 미국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조지 워싱턴 동상이 왜 이곳에 있는지도 이해하게 되었어요. 엘리베이터와 110볼트 전기 공급이 뉴욕에서부터 처음 시작된 만큼 뉴욕의 발전 속도는 어마어마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서방 외교사절단이었던 보빙사도 뉴욕에서 만난 휘황찬란한 발전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이때 본 것들이 당시 일행이었던 유길준의 <서유견문>에 수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금싸라기 땅에 빼곡히 들어선 빌딩 숲 한가운데 자리한 뉴욕 공립 도서관의 품격도 멋집니다. 재난영화 투모로우에서 생존 도피처였던 바로 그곳이죠. 땔감으로 쓸 책을 두고 논쟁하던 이들의 모습에서 등장한 희귀본 <구텐베르크의 42행성서>와 관련해서는 그딴 거 다 필요 없고 진실은 말이야~ 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이 즈음에서 금속활자 인쇄술의 원천기술을 가진 우리나라 인쇄술 이야기가 빠지면 섭섭하죠. 그 어느 것보다도 최초였던 고려 인종 때 <상정예문>의 이야기를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실물이 소실되어 현존하지 않지만, 구체적 실재와 정확한 연대가 기록된 기록물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뉴욕의 역사를 다루는 데 일가견 있다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이야기, 스타급 건축물에 얽힌 비하인드스토리, 금용의 진앙지 월스트리트의 역사 등 뉴욕 곳곳을 거치며 문사철의 교양이 얽히고설켜 풍성한 스토리텔링을 펼쳐나가는 <김재열의 서방견문록>. 다양성이 혼재한 뉴욕의 진면목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인문여행만이 안기는 폭넓은 관점을 맛보는 재미가 쏠쏠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