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군단의 장비와 전술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오사다 류타 지음, 김진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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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 중에 돌바닥이 깔려 있다면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거라는 말이 있듯 유럽 문명, 이슬람 문명은 로마 제국의 기반 위에서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여정에는 수많은 전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고대 로마의 찬란한 제도와 체제는 모두 군사력 향상을 목적으로 구축되었고, 로마를 세계의 수도로 끌어올린 원동력이 된 것은 바로 군사입니다.


창작을 위한 아이디어 자료집으로 활용하기 좋은 AK 트리비아 스페셜, 고대 로마 육군의 조직과 장비를 총망라한 <고대 로마 군단의 장비와 전술>로 로마군의 조직, 전투, 장비, 정신을 살펴봅니다. BC753 전설상 로마가 건국되고 왕정, 공화정, 제국에 이르는 고대 로마. 로마와 관련한 영화가 많은 만큼 어렴풋이 로마군의 모습이 그려지지만, 이 책을 보는 순간 내가 알던 것은 그저 추상적인 이미지뿐이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시대별로 놀랍도록 상세한 설명에 압도 당했습니다. 300점 이상의 일러스트와 함께하니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아까울 정도입니다.


기록에 남아 있는 최초의 로마군 조직은 초대 왕 로물루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로마시를 세 부족으로 나누고, 각 부족당 10개의 쿠리아로 세분되어 쿠리아에서 각각 100명의 병사를 제공하니 군대는 총 3,000명으로 구성될 것으로 추정합니다. 명화로도 있는 '사비니족 여성 약탈' 신화는 로마가 부족 중의 하나인 사비니족을 동화·흡수하였음을 나타내는데, 사비니족은 로마에서 5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 전쟁은 근거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아직은 작은 세계관입니다. 로마 국가 체제의 기초를 다진 왕은 6대 로마왕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입니다. 그리스식 장비가 도입되었지만, 그리스식 전투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씨족 단위 사투가 주를 이룬 전쟁이었습니다.


국왕 추방 후 공화정 시대에 접어들면서 로마는 군사적, 정치적 권력이 국가 권력에 흡수되며 획일적인 부대가 출현하게 됩니다. 일정 금액 이상의 자산을 가진 로마 시민은 46세까지 기병 10년, 보명 16년의 군역을 져야 했습니다. <고대 로마 군단의 장비와 전술>은 로마군이 어떤 훈련을 했고, 얼마를 받았고, 전쟁 준비는 어떤 방식이 이뤄졌는지 낱낱이 소개합니다. 로마는 여러 전쟁의 신을 신앙했지만, 특히 마르스 신을 받들었다고 합니다. 선전포고를 하는 개전식에서는 사령관이 성스러운 창을 휘두르며 '마르스여, 눈을 떠라!' 외치는 의식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전쟁에 나서면 야영지 건설도 필요합니다. 야영지 내에서 병사들에게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게 시키기도 했다고 하는데, 어길 시 무서운 처벌이 기다리고 있으니 결코 웃을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공화정 말기에는 마리우스의 개혁으로 시민은 농업에 전념하고, 병사의 직업화가 이뤄집니다. 시민병이 아닌 지원병 군단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기원전 30년 악티움 해전 이후 로마는 공화정의 탈을 쓴 군주제가 되었습니다. 일인자가 될 힘을 가진 자라면 누구든지 황제 자리를 노릴 수 있게 된 겁니다. 제정 초기엔 황제 평균 통치 연수가 불과 2년밖에 안된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군사력보다 더 강력한 힘은 없게 됩니다. 로마군의 척추에 해당하는 백인대장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요. 백대장이라고도 부르는 이들은 백여 명의(실제로는 80여 명) 병사를 이끄는 지휘관입니다. 병사들에게 백인대장은 공포, 증오의 대상이자 동시에 동경과 존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324년 로마 단독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대규모 군 개혁에 착수합니다. 제국의 안전 보장 정책이 방어 중심으로 바뀝니다. 요새 구조도 변화합니다. 6세기에 들어서면서 전투 주력 병력은 기병이 됩니다. 유럽까지 아우르며 위세를 떨쳤던 훈족의 영향이 컸을 겁니다. 이 시대 최대 변혁은 순수한 직업 군인 사관이 생긴 데 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지원병 이전 시민병 시절에도 노예는 병사가 되지 못했습니다. 주인과 황제 두 사람에게 동시에 충성을 맹세할 수 없다는 이유로 말이죠. 지원병 대부분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빈민층 출신자였습니다. 어느 정도 교육받은 이는 군대가 수입, 출세할 기회로 삼았고요. 2세기 말 페르티낙스는 교직을 그만두고 군대에 입대해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를 정도였습니다. 그리스도교 병사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신과 황제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기는 것에 의문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콘스탄티누스가 종교 관용 정책을 펼치며 시대가 흐름에 따라 그리스도교도 병사로 받아들였지만요.


로마군의 기본적인 진형과 전술도 소개합니다. 실제 전투 때 사용한 진형을 모식화한 자료가 많습니다. 시대별로 전투 방법도 달랐습니다. 로마 초기 전투는 왕과 친위대가 선두에 서며 적군의 리더와 1 대 1 대결이 빈번했던 관습이 있었습니다. 집정관 브루투스 역시 1 대 1 대결을 했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고대 전투를 보면 무기가 무기인 만큼 피가 낭자한 장면이 많은데요. 오랜 세월 사용한 주력 무기 글라디우스는 검투사 장면에서 우리가 흔히 보던 바로 그 검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이 명칭은 온갖 종류의 검을 지칭하는 일반 명사라고 합니다. 글라디우스 안에 마인츠형, 폼페이형 등의 특정 타입의 검이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3세기에 들어서면 글라디우스는 자취를 감추고 전군이 스파타를 사용합니다. 기병용 검이었는데 글라디우스에 비해 가늘고 기다란 모양입니다. <고대 로마 군단의 장비와 전술>에서는 투구, 방패, 갑옷 등 각종 장비를 그림과 함께 소개합니다. 튜닉이라는 용어도 특별한 옷을 지칭하는가 싶었더니 기본적인 웃옷을 의미하는 단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남성스러움과 관련된 미덕을 뜻하는 비르투스는 로마군의 정신입니다. 반대되는 개념은 수치입니다. 로마 같은 명예 사회에서 수치를 당하는 것은 죽음과 다름없는 굴욕적인 일이었다고 합니다. 로마의 정치, 사회, 시민 의식의 바탕이 된 군사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고대 로마 군단의 장비와 전술>. 이제 고대 로마가 등장하는 콘텐츠를 볼 때면 조금 더 아는 척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비와 전술이 워낙 방대하게 소개되어 있어 백과사전 느낌으로 읽어봤습니다. 고대 로마사에 관심 많은 밀덕이라면 복잡한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이 책이 무척 반가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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