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옛날엔 그랬어
비움 지음 / 인디언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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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나는 비우며 살기로 했다>의 비움 작가의 다재다능한 빛깔을 만날 수 있는 시화집 <나도 옛날엔 그랬어>. 미니멀리스트이면서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비움 작가만의 감성이 듬뿍 담긴 매력적인 시집입니다.


사랑, 이별, 가족 그리고 삶을 때로는 생생한 표현으로 때로는 보일 듯 말 듯 함축된 은유로 포장하며 이야기하는 <나도 옛날엔 그랬어>. '뭘 해도 좋았고 아무 것도 안 해도 좋았다'는 시절의 사랑을 그린 시는 순식간에 시간여행에 빠져들게 하는 설렘을 안겨줍니다.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로웠던 시절, 이유 없이 좋았던 사람이 있었던 시절의 몽글몽글한 감정을 건져올립니다. 하지만 이별의 진통을 겪는 애틋한 감정이 이내 이어집니다. 유독 이별 노래를 좋아해이렇게 된 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 날의 시에는 야속하고 서운한 마음이 슬며시 배어있습니다.


부산한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담담히 숨을 고르기도 합니다. 영혼을 다듬고 만지는 시간입니다. 그의 시에서는 미니멀리스트로서 비움에 대한 시작점도 마주하게 됩니다. '비우는 건 살점을 파내는 기분'이라지만 응어리를 추려 빼내는 것과도 같습니다. '욕정을 켜켜이 새겨 너의 안에 숨겨 두었다.'는 문장처럼 비움은 존재하는 사물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선명함과 개운함으로 이어지는데 필요한 여정입니다.


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남의 것은 다 좋아 보이고 남의 생각은 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정작 내 것은 마땅찮습니다. '나의 눈엔 쓰레기 남의 눈엔 그럴 듯'하다는 냉담한 반응을 내리기도 합니다. <나도 옛날엔 그랬어>에 수록된 시와 그림에는 야박한 평가를 내리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2019년 한국문학예술을 통해 등단해 꾸준히 시를 연재해온 비움 작가. 그저 좋은 문장, 예쁜 말로 다듬어 짧게 쓰면 시인 줄 알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시를 배우고 나니 시의 진짜 얼굴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파야, 슬퍼야, 눈을 가늘게 떠야, 혼자 있을 때 시가 오더라고 합니다. 시가 써지지 않을 때는 잠시 내버려 두기도 합니다. 억지로 잊어버린 연인처럼 말이죠. 오만을 버리고 나면 그제서야 슬쩍 돌아오더라고 고백합니다.


어머니와 반려묘 단무의 이야기처럼 가족을 그린 시는 사랑스럽고 뭉클합니다. 자식을 꽃으로 보살핀 어머니에게 한아름 눈물꽃으로만 남게 한 건 아닌지 먹먹한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작가는 물 흐르듯 쉽게 읽히는 시도 있고 난해한 시도 있다고 밝히는데,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시 중에서도 저는 설화 느낌이 물씬 나는 산문시 형태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비움 작가의 문체가 마음에 들어 소설로도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일러스트 27화가 곳곳에 자리 잡은 <나도 옛날엔 그랬어>.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비움 작가만의 하모니가 멋지고, 볼거리가 가득해 한 장 한 장 넘기는 재미가 있습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가벼운 판형에 표지까지 어여쁘니 휴대하기에도 좋고, 선물하기도 좋은 시집입니다. 학창 시절 학교 축제용으로 학생들이 참여한 시화전이 새록새록 기억납니다. 그땐 시를 쓰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숙제처럼 여겨져 힘겹게 해치우곤 했었는데 오랜만에 만나는 시화집이 그 시절의 고달픔도 그리움으로 바꿔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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