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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잔 할까요? - 노정욱 대본집
노정욱 지음 / 엘리 / 2022년 2월
평점 :
커피숍이라는 말보다 카페라는 단어가 익숙해지며 일상에 스며들던 시점에 눈에 띄던 만화가 있습니다. 바리스타에 대한 직업도 떠오르며 커피 교과서 역할을 하는 만화로 입소문 났던 허영만 화백의 <커피 한잔 할까요?>.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상물이 대세인 요즘, 보물 같은 만화가 이 흐름에 빠질 수 없겠죠.
노정욱 감독이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해 2021년 하반기 카카오TV에서 12부작으로 방영된 드라마 <커피 한잔할까요?>. 강렬하고 자극적인 소재를 벗어나 담담하게 일상 속 힐링을 건져올리는 귀한 시간을 누리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공시생 강고비는 우연히 들른 2대 커피 카페에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고 커피의 세계에 뛰어듭니다. 신입 바리스타가 된 강고비가 커피 명장 박석의 제자가 되어 커피와 사람에 대해 배워나가는 여정을 그린 <커피 한잔 할까요?>.
20대 강고비 캐릭터의 순수함과 당돌함이 섞인 묘한 조화를 옹성우 배우가 잘 연기했고, 박호산 배우는 속 깊고 단단한 50대 박석 역을 소탈하게 잘 해내 인상 깊었습니다.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코믹 연기를 너무 출중하게 해냈던 박호산 배우였기에 정작 다른 출연작에서는 슬감생 연기가 자꾸 떠올라 몰입이 잘 되지 못했었는데, 이번 드라마에서는 완전 찰떡궁합이었습니다. 툭툭 명대사를 던지는 박석 캐릭터에게 푹 빠지게 되더라고요. 드라마의 감동을 대본집으로 다시 만나봅니다.
<커피 한잔 할까요?> 대본집은 시각적으로 구현된 드라마 이전에 글로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재미를 안겨줍니다. 시각과 청각을 잠시 뒤로하고, 오롯이 자신만의 감정을 담아 대본을 읽을 때 또 다른 감동 포인트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나만의 명대사를 새롭게 발견하기도 합니다. 놀라운 건 이 대본이 배우들의 명연기로 재탄생되면서 완전히 감정이 달라질 때도 있다는 겁니다. 글로 읽을 땐 무덤덤하게 넘겼던 부분이 연기를 통해 업그레이드되면서 가슴이 두드리는 명장면으로 탄생되기도 합니다. 대본집의 문장과 배우들의 연기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대본집에서는 한 신scene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장면들이 들어가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1회차 분량을 뽑아내기까지 정말 어마어마한 과정이 필요하더라고요. 우리 아이도 촬영장에 종종 나가는지라 한 컷을 위해 몇 시간이 소요되는지 잘 알기에 대본집을 함께 보면서 서너 줄짜리 문장을 두고 이건 반나절 찍어야 하는 분량이다며 아는 척을 하곤 합니다. 드라마에서는 편집된 장면이나 짧게 스쳐 지나가는 장면도 대본집의 글로 읽으니 감정선이 확실히 더 깊어지네요.
홀로 딸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 웹툰 작가, 30대 직장인 여성, 베이킹을 배우는 고등학생 등 단골을 비롯해 주변 상가 사장, 노동자 등 각양각색 인물들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커피 한잔 할까요?>. 한적한 곳에 자리한 커피 자판기 앞에 모인 동네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에피소드 장면은 다시 봐도 뭉클합니다. "커피 한잔 할까요?"라는 말이 이 자판기와 얽혀있어그런지 감동적인 장면이었어요. 함께 하는 커피라는 인생의 화두를 자판기에서 맞닥뜨린 박석의 커피 인생이 탄생하는 자리였습니다. 대본집 <커피 한잔 할까요?>에는 드라마 스틸 컷이 99개가 실려있어 멋진 영상미를 되살려보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겐 취향이고, 누군가에겐 잠 깨려고 마시는 노동의 동반자인 커피. 프랜차이즈 카페가 동네에 자리 잡은 요즘, 그동안 이웃이 되어준 동네 카페는 하나 둘 사라지기 일쑤여서 아쉽습니다. <커피 한잔 할까요?>를 보면서 대체 만족을 하기도 했지만, 2대 커피 같은 곳이 우리 동네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부러움도 어쩔 수 없이 생기네요.
커피, 카페에 얽힌 나만의 경험을 떠올려보기도 합니다. 커피를 소재로 하지만 결국 사람과 인생 이야기입니다. 에피소드마다 자신의 경험이 대입되어 더욱 공감될 겁니다. 바리스타 고비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성장하는 여정 속에서 우리도 용기와 힐링을 받게 됩니다. 툭툭 건네는 뜻밖의 위로 덕분에 드라마를 보는 내내, 대본집을 읽는 내내 행복해졌습니다.
대본집에는 <커피 한잔 할까요?> 배우들의 메시지와 사인이 수록되었고, 초판에는 강고비 스틸 컷으로 만든 엽서가 포함되어 있어요. 시나리오, 각본을 쓰려는 예비 작가나 대본집으로 대사 공부를 하는 배우 지망생 그리고 커피에 진심인 독자들에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