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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걸 보면 네 생각이 나 - 먼 곳에서 선명해지는 시간의 흔적들
청민 지음, Peter 사진 / 상상출판 / 2022년 2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221/pimg_7960121633315497.jpg)
여행지에서 유독 생각나는 사람이 있나요. 좋은 걸 보고 맛난 걸 먹을 때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다는 마음만으로도 기분이 말랑말랑해집니다. 브런치 작가 청민의 여행 에세이 <좋은 걸 보면 네 생각이 나>는 유년 시절부터 이십 대까지 여행지에서 마주한 일상의 순간들을 담았습니다. 그저 여행지 풍경의 단상이 아니라 유년의 기억이 심어둔 것들이 툭툭 튀어나오며 뜻밖의 기억의 조각들을 재발견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교환학생 시절 영화관에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러시아어 더빙판을 보면서도 온전한 행복을 찾으며 하루하루 쌓였던 외로움을 떨칠 수 있었던 경험은 유년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연휴에 가족이 함께 조조 영화를 보기 위해 달렸던 가족과의 추억이 남긴 감정은 하나의 취향으로 확장됨과 동시에 마음의 위로가 되는 편안한 장소가 됩니다.
온전한 '나'가 될 수 있는 공간이 되자 마음이 복잡할 때면 영화관으로 향합니다. 영화관을 나설 땐 한결 달라진 마음으로 나오게 될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잠시 삶을 멈춰보는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가진다는 건 행운입니다.
"몸은 자라도 순수하게 좋아했던 마음은 그 시절의 나이로 남아 있는 법이니까." - 책 속에서
좋아하는 영화가 개봉하는 날 아침마다 영화관에 데리고 간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잔잔한 울림을 안겨줍니다. 영화 티켓은 엄마의 사랑이었음을 이제는 압니다. 꿈을 꿀 수 있는 내일을 선물받았다고 회상하는 청민 작가의 마음이 대견하게 느껴졌어요. "우리는 누군가로 인해 지켜진 사람들이라는 거, 우리를 사랑한 어른들이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서, 좋아하는 걸 계속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서 지켜준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아차립니다. 어린 시절에 품었던 기분 좋은 감정은 어른이 되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책과 영화로 동경했던 해리포터를 영국, 스코틀랜드 여행에서 마주하며 그 감정은 더욱 깊어집니다.
<좋은 걸 보면 네 생각이 나>에서는 가족과의 여행이 큰 축을 이룹니다. 가족 모두 함께 떠난 14일간의 유럽 캠핑 여행은 좌충우돌 사건도 많았지만 함께였기에 해낼 수 있었던 시간들입니다. 유독 일찍 눈을 뜬 날, 홀로 산책을 나섰다가 멋진 풍경을 보자 가족을 데리러 되돌아갔을 만큼 혼자 보기 너무 아쉬운 풍경 앞에선 가족이 생각납니다.
여행은 영화 <ONCE>와도 닮았다고 합니다. 삶의 변곡점을 발견하고도 현실로 돌아가는 사랑처럼 결국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여행. 있었던 자리로 돌아가 두고 왔던 삶을 이어갑니다. 그럼에도 여행의 기억은 오래 남습니다. 유독 기억 남는 그날의 순간, 감정들은 어딘가에 새겨져 그 기억으로 지금을 살아낼 수 있게 하기도 합니다.
"혼자로서 채워진 삶은 윤택하고 편안하지만, 개인의 세계를 한순간 크게 확장시키는 건 이렇게 만들어 낸 소소하지만 꽉 찬 '우리'의 경험이 아닐까." - 책 속에서
'여행을 하고 있는 지금'을 수집하기 위해 여행지에서 엽서를 보내기도 합니다. 여행을 마쳤을 미래의 나에게 엽서를 보내는 겁니다. 오래 비워뒀던 집에 도착했을 때 우편함에서 꺼내드는 엽서. 기분이 묘할 것 같아요. 우표에 찍힌 날인이 그곳에 정말로 있었다는 증명서 같아서 여행의 마침표는 좀 더 이어집니다.
이제는 1인 가구로 살면서 홀로 캠핑을 떠나며 가족 여행의 품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고, 직장 생활로 떠날 수 있을 때 떠날 수 있는 삶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걸 보면 네 생각이 나>에서 가족과의 흔적을 더듬어보는 시간이 더욱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기울어진 행복의 균형을 다시 맞출 수 있다고 합니다. 익숙한 대로만 하려는 나를 인식하게 되면, 세상의 새로움에 다시 호기심을 보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좋았던 기억의 조각이 훗날 살아가면서 뜻밖의 순간에 발견되기도 하는 여행의 기쁨을 보여주는 에세입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221/pimg_796012163331549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