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노 교코의 서양기담 - 무섭고도 매혹적인 21가지 기묘한 이야기
나카노 교코 지음, 황혜연 옮김 / 브레인스토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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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일들은 창작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음모론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여러 미스터리 중에서는 거짓이나 착각이라 일컬을 만한 일도 있고, 여전히 증명되지 않은 미스터리로 미종결된 사건도 있습니다. 


'무서운 그림 '시리즈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희대의 이야기꾼 나카노 교코가 각양각색의 기담을 선사하는 <나카노 교코의 서양기담>에서 무섭지만 매혹적인 21가지 기묘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괴수, 유령, 도플갱어, 골렘, 마녀, 뱀파이어 등 공포의 존재들은 물론이고 실존 인물들의 미스터리한 사건까지 등장합니다. 


익히 들어본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저자가 툭툭 던지는 한 마디가 정신을 환기시킵니다. 공포와 잔혹함을 무심하게 서술하면서도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나카노 교코의 관점은 인간 본성의 이면을 들추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가 등장했는지, 무서움 뒤에 자리 잡은 시대적 배경과 가치관을 짚어줍니다. 그저 공포물, 기묘한 이야기의 짜릿한 중독성에 홀리듯 끌린 이들에게 오히려 한 방 날리는 셈입니다.


독일의 작은 마을 하멜른을 배경으로 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는 동화로 어렸을 때부터 접했던 이야기인데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었어요. 그림 형제의 《독일 전설》에 수록된 이 이야기는 13세기 말 행방불명된 130명의 아이들에 관한 겁니다. 그저 창작 스토리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의 실종이 당대 공문서에 기록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군요. 


실제 사건이 이야기가 되려면 변형되기 마련입니다. 피리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떠돌이 악사 이미지가 덧붙여졌고, 흑사병과 연결해 쥐 떼가 등장합니다. 나카노 교코는 "동화의 껍질을 벗겨내면 지극히 단순하지만 충격적인 진실의 나열만이 남는다."고 합니다. 많은 연구자들이 수많은 가설을 발표했음에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은 이 사건을 나카노 교코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피리 소리에 이끌려 몽유병자처럼 걷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낯선 땅을 서성이고 있다면 얼마나 공포스러울지 말입니다. 어떻게 아이들이 사라졌는지에만 집중했던 시선을 단번에 전환하는 나카노 교코의 한 마디입니다.


원리를 알아도 직접 경험한다면 정말 초자연 현상으로 여기며 기이한 체험을 했다고 말할 것 같은 브로켄 현상.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어도 여전히 놀랍습니다. 과학 용어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브로켄의 요괴라고 불린 이것은 발푸르기스의 밤 전설과 결부됩니다. 바로 마녀 집회입니다. 히브리어로 안식일을 일컫는 사바트가 중세엔 마녀 집회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마녀 사냥과 관련해서는 참 복잡한 시대적 상황과 종교적 암투가 얽혀있지요. 북유럽 신화권의 유럽에서 열린 악령을 쫓는 봄의 제전인 오월제가 기독교 입장에선 이단 축제가 되어버린 겁니다. 나카노 교코는 광신적인 집단 히스테리가 어떻게 오랜 세월 마녀사냥을 유지하게 했는지 핵심을 짚어줍니다.


엑소시스트에 관해서는 영화로도 많이 접하는 소재인데요, <나카노 교코의 서양기담>에서는 17세기 프랑스에서 실제로 일어난 '루덩의 악마' 사건을 소개합니다. 십여 명의 수녀가 일제히 몸을 뒤틀면서 울부짖는 일이 발생하며 수도원이 난리가 난 겁니다. 공개 구마를 통해 문란한 주임신부 그랑디에의 실체가 폭로되었고, 루덩의 카사노바가 화형에 처해진 이 사건은 정말 보여진 것 그대로였을까요.


귀종유리담이란 고귀한 혈통으로 태어난 자가 모국에서 멀리 떠나 정처 없이 떠돌며 무수한 시련을 통과하여 신이나 고귀한 존재로 거듭나는 설화의 한 유형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상의 인물은 영화 <아이언 마스크>로 재탄생한 철가면을 쓴 프랑스 루이 14세의 쌍둥이 동생 이야기입니다. 친아버지라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루이 14세와 관련이 있다는 것, 누구나 아는 얼굴이라는 점 때문에 음모론이 풍성한 이야기입니다. 그 외 17세기에 일어난 러시아 류리크 왕조의 가짜 드미트리 사건, 19세기 뉘른베르크에 홀연히 나타난 '유럽의 고아' 카스파 하우저도 있습니다.


1959년 냉전기 소련에서 일어난 미제사건인 디아틀로프 사건도 미스터리투성이입니다. 우랄과학기술학교 엘리트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탐사대가 우랄산맥을 스키로 등반하다 연락이 끊겼고, 전원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됩니다. 텐트는 안쪽에서부터 찢긴 상태였고, 겨울 산을 견딜 수 없는 차림으로 격투의 흔적 또는 차에 치인 듯한 상처를 입은 채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러시아 정부는 수많은 연구자가 부정해온 산사태로 결론 내렸지만, 여전히 20세기 최대의 미스터리로 불릴만한 기담입니다.


골렘 설화의 근원을 살펴보면서는 미래의 골렘인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어둠의 슈퍼스타 드라큘라의 이야기가 전승되며 덧붙여진 삶과 죽음의 의미 등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의 매력을 전달하는 <나카노 교코의 서양기담>. 명확한 결론이 없는 이야기이기에 매료되는 기담이지만, 그 이면에 담긴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에 단순한 오락적 공포를 넘어서는 기담의 세계를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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