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사랑은 블랙 -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꽃은 피어나고
이광희 지음 / 파람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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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1%가 찾는다는 우리나라 오트 쿠튀르를 대표하는 최정상 패션 디자이너 이광희. 늘 자선쇼로 컬렉션을 진행하며 아프리카 남수단 툴즈에 구호사업 NGO 희망의 망고나무를 설립하고 자선사업을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진정 원하는 일을 찾아 노블리제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이광희 저자에게는 인간애를 몸소 실천했던 어머니 김수덕 여사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사랑은 블랙>은 생전 어머니께서 하신 귀한 말씀을 기억해 내고 삶의 지침으로 삼고 말씀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이광희 저자의 진솔 담백한 속내를 엿볼 수 있는 에세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보이지 않는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걸 비로소 깨달은 저자는 어머니가 살아계셨더라면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편지 형식으로 쓰게 됩니다.


어머니로부터의 배움을 아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픈 엄마로서의 이광희의 모습도 만날 수 있습니다. 후회하는 아들에게 깨달음이란 항상 뒤늦게 오는 거라며 후회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살아보니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게 인생의 순서라는 거죠. 대신 되풀이만 안 하면 된다고 합니다. 깨달음 다음엔 절대 잊지 않는 게 더 중요하는 걸 알려줍니다. 소확행에 너무 현혹되지 말고 더 치열하게 살아보자고 합니다. 적당한 선에서 본인의 꿈을 현실과 타협하고 포기하면서 맛보는 얄팍한 행복으로서의 소확행이 되면 안 된다는 말이 와닿습니다.


에세이 표제작이 된 <아마도 사랑은 블랙> 글에서는 사랑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이 세상에 주어진 모든 의미가 합쳐진 게 사랑인 것 같다며, 그렇다면 각각의 사람이 겪은 인생의 색들이 모두 더해진 것이 사랑의 색일 테고 이 각기 다른 삶의 모든 색의 합해진 것이 진정 사랑의 색깔이 아닐까 하고 말이죠. 모든 색을 합하면 검정이 되니 그래서 사랑은 아마도 블랙이 아닐까라는 저자의 속삭임에 공감하시나요.


이광희 저자에게는 인생 키워드가 몇 가지 있지만 책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직업에 대한 책임감, 희망고 일에 대한 책임감 등 스스로 선택한 것들에 대한 책임 말입니다. 나를 완성해나가는 노력을 하게 만드는 책임. 그것이 나를 나답게 만들어가는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내 일에 대한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저 자기만족이 되지 않도록 경계합니다.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내는 마음이야말로 책임을 다하는 태도입니다. 주어진 일을 하면서 실력과 능력이 길러졌기 때문에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실패 없이 해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말에 대한 책임을 이야기하는 글도 인상 깊습니다. 말이 곧 행동이라고 믿기에 그래서 말하기가 오히려 참 힘들다고 고백합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의 묵묵한 실천을 떠올려봅니다. 행동하는 자의 아름다운 침묵에 대해 삶으로 보여주신 어머니의 내공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광희 저자 역시 은퇴할 나이에 이르를 때까지 여전히 원하는 삶이 뭔지 찾지 못했었다고 합니다. 에너지를 소진시키며 온 힘을 기울인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되돌아보며 숱한 고난을 이겨낸 스스로를 위로해 보기도 합니다. 결국 고통이 인생 이야기의 핵심이라는 걸 글쓰기를 하며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고통을 대하는 태도야말로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하고 말이죠. 우리에게 닥친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깊게 받아들일수록 생각이 깊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두려움의 늪에서 훨훨 날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내보이기도, 번잡한 마음을 내보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말씀이 응원이 되고 위로가 되어줍니다. 여전히 늪에 빠지곤 하지만, 서투른 날갯짓이라도 하게 됩니다. 용기가 있다는 건 자신이 선 자리에서 비겁하지 않은 거라고 한 어머니 말씀 때문입니다. 용감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비겁해지지는 말자는 다짐으로 살아온 원동력이 됩니다.


바쁘게 살아오면서도 허전한 마음으로 가득했던 시절에 김혜자 배우를 따라서 아프리카행을 했다가 그것이 희망의 망고나무(희망고)의 시작이 됩니다. 망고나무 한 그루가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 백 년은 아프리카 친구들이 일용할 양식이 된다고 합니다. 이후 희망고 빌리지를 세워 아이들과 여성들의 교육단지를 열었고, 한센인 마을을 지어가며 자선사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1호 간호사로 선교사업을 하신 아버지와 함께 평생을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돌본 어머니 김수덕 여사. "나도 꽃 한 송이 같은 꽃사람이 되고 싶다"는 어머니의 일기장 속 글귀처럼 기쁨과 평안을 주는 꽃이 되고 싶었던 어머니. 이제 어머니의 꿈이 자신의 꿈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생전엔 어머니의 생각과 꿈을 이해하려고 관심 두지 않았었지만, 매 순간의 선택에 대해 고민하셨던 어머니의 마음을 이제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소중한 가르침과 어록이 삶에 대한 통찰의 뿌리가 되었음을 <아마도 사랑은 블랙>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소박하지만 진솔한 이야기가 따스하게 내려앉는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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