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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과의 거리두기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수많은 선택이 계속되는 인생. 흘려보내는 인생이 아닌, 채워지는 인생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인생에 매몰되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조대현 여행작가는 여행을 통해 오히려 거리두기를 할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수많은 의문을 설득해야 하는 시간이 필수불가결한 여행. 한 발짝 거리를 두고 바라봤을 때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해가 지고 와인 한 잔과 함께 작은 마을의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습니다. 여행에서는 조용한 바람 소리 속 바닥에 앉아 있기만 해도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여행 중에는 뜻밖의 감정들을 오롯이 마주하는 시간입니다. 자유로움, 즐거움, 슬픔, 외로움 같은 일상의 감정이지만 잊고 있었던 그런 감정들. 일상의 하늘과 다를 바 없는 하늘인데도 내 눈 안에 담아내는 찰나의 시간을 선사하는 여행. 그 공간의 온도를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인생과의 거리두기>에서는 조대현 여행작가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선사하는 여행의 순간들을 들려주는 에세이입니다. 해시태그 여행가이드북 시리즈에서 만난 지역이 나올 때면 가이드북 정보 뒤에 가려졌던 여행작가의 감정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말로만 듣던 조지아 메스티아에 가서 느낀 경외감은 자연이 얼마나 거대하고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지 깨닫게 합니다. 산책하듯이 갈 수 있다는 문구에 속아 구두를 신고 갔다가 발목 돌아갈 뻔했다는 에피소드라든지, 여행자들 사이의 조지아 와인 논쟁에 얽힌 에피소드도 재미있습니다. 서민의 술인 와인의 원조가 서로 자기 나라라는 주장 사이에서 조지아 여행과 와인 이야기가 이토록 풍성해질 수 있다니. 그곳에 머물렀을 때만 알 수 있는 미묘한 정서도 있습니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위치한 조지아에서만 접할 수 있는 독특한 문화와 정서를 접하는 시간입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큰 고민거리들이 그냥 작은 조각으로 보이기 시작하더라는 말도 인상 깊습니다. 수많은 현지인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내 안의 어려움은 위로받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어차피 지나갈 한순간으로 여겨지며, 그렇다면 찌푸리나 걱정하나 웃으나 매한가지로 건너기만 하면 될 테니 여유롭게 웃으며 가볼까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겁니다.
조지아, 아이슬란드, 모로코 그리고 제주까지.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는 방법을 알아가는 의미로서의 여행의 가치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인생과의 거리두기>. 고작 여행 그 순간의 감정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점점 잊으며 일상의 삶을 살아가다가도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는 순간 다시 그때의 느낌이 살아나기도 합니다. 결국 일상을 살아낼 힘을 북돋울 많은 처방전을 남겨주는 여행이라는 말이 가슴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