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오의 한국현재사 - 역사학자가 마주한 오늘이라는 순간
주진오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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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역사교과서 저지 운동의 선봉장 주진오 교수가 역사학자로서의 생각과 실천을 담아낸 대중교양서 <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역동적인 현대사의 순간순간마다 목소리를 냈던 저자가 언론에 기고했던 칼럼과 페이스북에 썼던 글을 수정 보완해 정리한 36편의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역사는 그저 과거의 기록으로만 바라봤는데 이 책을 읽으며 지금 이 순간의 살아 있는 생생한 역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생 아들이 요즘 기사를 읽고 생각을 정리해 의견을 내는 수업을 받고 있는데 이 책이 큰 도움이 되겠더라고요. 이슈의 배경을 알아내고 팩트체크하고 여러 시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기르는데 좋은 예시가 되는 글이 가득합니다.


역사학자는 오늘의 역사에 대해 발언하고 소통해야 할 의무를 가졌다고 합니다.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써 내려간 주진오 교수의 글을 읽다 보면 냉철한 날카로움과 뜨거운 열정의 목소리를 동시에 만끽하게 됩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알려진 역사적 인물들의 재평가와 함께 저평가된 인물도 되살리며 역사적 평가의 기준에 대한 이야기부터 들려줍니다. 독립운동가 이봉창이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폭탄을 들고 있는 사진은 합성한 거라는 사실이 충격적입니다. 일본인이 되고 싶어 애썼던 철없는 모던보이 청년이었던 이봉창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유치장에 갇힌 뒤 자의식에 극적 반전을 겪습니다. 


미국인이 된 서재필, 일본인이 된 윤치호의 경우 둘 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같은 입장에서 행동했지만 윤치호는 매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승만은 살아남고 박용만은 잊힌 것처럼 노선이 달라 잊혀버린 존재도 있습니다. 주진오 교수는 우리가 기대하는 영웅의 모습에 끼어 맞추며 지나치게 영웅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합니다. 업적과 관련한 역사 지식을 바로잡는 노력은 실제로 있었던 역사를 지우는 게 아니라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역사 왜곡이자 후대의 역사교육을 망치는 반성 없는 일방적 찬양도 반대합니다. 시대가 달라져도 바뀌지 않는 구태입니다. 저자는 박정희 기념관 문제, 전두환의 심판 문제, 박종철 진실 규명, 6·10 항쟁 이슈가 나올 때마다 목소리를 냈습니다.


한국 근현대사를 가로지는 중요한 역사논쟁들이 많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건국절 논란, 대한제국 논쟁 등에 대한 의미 있는 평가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짜뉴스가 횡행합니다. 신뢰하는 백과사전, 정부 기관에서도 오류가 많고, 다음 사람은 그 정보를 팩트체크하지 않은 채 사용하다 보니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내용도 많다고 합니다. 진실이 버젓이 있는데도 교과서에서조차 수정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미 다들 그렇게 알고 있다는 이유로 말이죠. 역사가 자장면과 짜장면 같은 수준이었던가요. 근현대사에서는 이념 문제가 주를 이루는데,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과 상식의 문제로 바라본다면 백색테러를 하거나 조장하는 모습이 결코 나올 수는 없었을 거라는 말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광복 이후 통일 정부 수립 과정에서 벌어진 제주 4·3 사건의 역사적 위상을 재설정하는데 애쓰기도 했고, 여성들의 이야기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남성 교수 중 유일하게 한국여성사 강의를 개설했다고 합니다. 인생의 승리자는 되지 못했어도 역사적 승리자가 된 나혜석처럼 억압과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 속 여성의 이야기에 주목합니다.


역사교과서를 쓴다는 것은 역사의 대중화를 위한 첫걸음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오랜 세월 역사교과서 대표 집필진으로 활동했기에 청소년들의 역사관에 큰 영향을 끼치는 역사교과서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습니다. 국정교과서 추진 사태는 큰 이슈였지요. 당시 대응을 남긴 생생한 기록이 이 책에 담겼습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교과서 폐지 지시로 일단은 한숨을 돌렸지만, 책으로 읽어도 프레임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느껴질 정도입니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바뀐 교육과정의 사정을 개탄하며, 해방 이후의 역사를 거의 배우지 않은 현 교육 실태를 걱정하는 저자의 마음이 잘 담겼습니다.


역사 콘텐츠로 역사의 대중화에 힘쓰는 주진오 교수가 들려주는 대중과 소통하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습니다. 역사는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현되는 이야기의 소재라고 합니다. 역사 왜곡 드라마 이슈도 끊이질 않지요. 그래도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알게 된 역사도 많을 텐데요. 영화 <암살>, <밀정>에서 부각된 인물을 중심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연구실에서만 머물지 않고 실천적 역사학을 내세우며 활동하는 주진오 교수의 '지금 이 순간'의 역사 에세이 <주진오의 한국현재사>. 근현대사 주요 논쟁을 다루며 편협된 사관에 대처하는 태도, 역사인식 문제에 대한 과제를 짚어주는 의미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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