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면 - 프랑스식 육아의 선구자 돌토 박사의 라디오 상담
세베린 비달 지음, 알리시아 하라바 그림, 권지현 옮김, 카트린 돌토 해설 / 신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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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모두 행복한 프랑스식 육아의 바탕에는 프랑스 대표 아동정신분석가 돌토 박사가 있습니다. 지금은 오은영 박사, 서천석 박사처럼 방송을 통해 육아에 대한 조언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아동을 독립적인 인격을 지닌 주체로 대하지 않던 당시에는 돌토 박사의 라디오 상담 코너가 프랑스 사회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었을 정도입니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 프랑스 앵테르에서 매일 오후 10분 정도의 코너로 진행한 '아이가 태어나면' 라디오방송을 바탕으로 3권의 책이 출간되었고, 이제는 그래픽노블로 탄생했습니다. 돌토 박사의 딸 카트린 돌토의 해설과 세브린 비달의 글, 알리시아 하라바의 그림의 조합이 예술입니다.


오랜 세월 사랑받으며 프랑스식 육아가 전 세계 부모들에게 관심받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돌토 박사의 육아관은 구시대적 육아관이 아닌 지금 시대의 부모들에게도 공감받는 이야기들이라는 데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자 프랑수아즈 돌토는 어린 시절 가족 간 불통을 겪으며 스스로 '교육 의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내며 꿈을 꿉니다. 교육이 잘못되면 아이를 아프게 한다는 걸 연구하는 의사를 뜻하는 교육 의사라니. 아이들이 건강한 시민으로 자랄 수 있도록 문제를 겪는 아이와 부모를 도와주는 일을 평생 하셨으니 꿈을 현실로 펼친 멋진 분이셨더라고요.


부모의 사연을 읽어주면 답하고 의견을 내는 방식으로 진행한 돌토 박사의 라디오 상담. 편지만 받는 방식을 고집했다는데 그래야 부모가 글을 쓸 때 생각할 시간이 생긴다고 합니다. 라디오 상담이 만능 해결책이 된다는 환상을 가질 수 있다는 위험성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부모들에게 뭘 가르치려 하지 않고, 부모는 자녀와 자신을 가장 잘 아는 당사자라는 데 초점 맞춥니다. 부모가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쥐고 있을 때가 많지만, 그 사실을 몰라서 아이와 자유롭게 대화할 줄 모를 뿐이라는 것에 집중합니다.


그래픽노블 <아이가 태어나면>은 돌토 박사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일상의 모습과 함께 라디오 상담에서 소개한 사연을 주제별로 다룹니다. 사연은 푸른 색감으로 그려져 자연스럽게 일상과 대비되는 효과를 보여줍니다. 아이가 태어나고서부터 생기기 시작하는 형제자매 관계, 식습관, 수면, 성, 교육, 체벌, 욕구, 장애 등 다양한 문제들의 대표 사례는 대부분 다루고 있습니다. 유치원 연령대 전후를 대상으로 한 사연이 많은 편이지만, 돌토 박사의 육아관 덕분에 아이 연령대 상관없이 부모라면 가슴을 두드리는 조언을 건져올릴 겁니다. 예비 부모에게 책 선물하기에도 좋습니다.


동생이 생긴 아이들에 관한 사연이 인상 깊었는데요. 동생이 생기는 걸 싫어하는 아이도 있을 테고, 동생을 괴롭히거나 질투가 심한 아이도 있을 겁니다. 동생의 존재를 부모가 어떻게 정의 내리느냐에 따라 관계의 질은 달라집니다. 어린이의 무의식을 무시하지 말고 아이가 자기도 아기였던 걸 기억하고 있음을 부모가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동생이 생기는 게 싫다는 아이에게는 아기는 자기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고 해요. 안 그러면 같이 놀 친구가 생기는 줄 안다고 말이죠. 싫어하든 좋아하든 아기는 상관 안 한다고, 아기에게는 엄마 아빠가 있다는 걸 아이도 알아야 하는 거죠. 동생을 좋아하지 않아도 된다고 들은 아이가 오히려 동생을 가장 좋아한다고 합니다.


돌토 박사의 조언 바탕에는 아이의 성장을 돕는 방향이 언제나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기를 도와주지 못하고 계속 아기처럼 대하는 양육 방식의 문제점을 짚어주기도 합니다.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게 하면서, 아직 갓난아기인 동생과 온종일 함께 있지 않도록 아이가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가게 한다는 원칙을 지킨다면 어떤 문제가 닥쳐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겁니다.


'엄마 안전띠'라는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낯선 소리를 듣고 무서워하는 아이의 사연에서 등장한 용어인데요.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을 때 소리를 들려주라고 합니다. 아이의 삶에서 엄마와 연결된 건 뭐든지 안전하다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버튼을 눌러서 어떻게 기계가 작동하는지 보여주고, 말로 소리를 설명해서 안심시켜야 한다고 합니다.


편견의 시선을 몸소 느끼는 장애 아동에 대한 당시 교육 제도를 비판하기도 하고, 낙태죄 폐지에 앞장선 시몬 베유 보건부 장관과 면담을 하며 심신이 지친 부모들과 아이들을 위한 대화의 집 프로젝트를 구상하기도 하면서 사회에서 부모와 아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돌토 박사. 그의 유산이 현재 프랑스식 육아의 바탕이 되어오고 있습니다.


당시엔 옛날식 훈육이 흔하게 행해졌던 시대여서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데다가, 방송 시간에 맞춰 대부분의 부모들이 귀를 기울이고 청소년들이 직접 본인의 문제를 사연으로 보낼 정도로 프랑스 사회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만큼 돌토 박사에 대한 불만도 등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료들은 진료실에서 이뤄져야 할 정신분석학이 대중화된다고 비난하기도 했고, 솔직하고 직설적 화법을 사용하는 돌토 박사의 성격상 빨리 진행되는 라디오 상담에서는 미처 전달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고의적인 비방에 시달릴 정도로 영향력이 컸던 돌토 박사. 방송 때문에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지만, 아이를 주체로 대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생기는 다양한 문제는 부모와 아이 간의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는 육아관을 놓지 않았습니다.


같은 문제를 가졌어도 아이마다 저마다 다름을 강조합니다. 그렇기에 돌토 박사는 그의 조언을 그대로 하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원하는 걸 직접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조언한다는 원칙을 지켜나갑니다. 말의 중요성을 경험하고 효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되는 부모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아이들이 겪는 곤란한 문제는 대부분 부모와의 대화로 해결이 가능하지만, 그 문제로 인해 대인관계가 흔들릴 때는 심리치료가 필요하다는 신호임을 짚어줍니다.


라디오 방송의 사연 편지를 분류하고 정리한 딸 카트린 돌토는 영향력 있는 어린이 심리학자로 성장해 그래픽노블 <아이가 태어나면>에서 어린이의 권리 보호에 평생을 바친 어머니의 삶을 잘 정리했습니다. 2년간의 방송은 사실 갑작스레 프로그램이 폐지되면서 이상한 할머니지만 인자한 박사와 패기 넘치는 진행자의 찰떡 호흡을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됩니다. 청취자에게도 예고 없이 종방될 정도로 진행자들도 이해하지 못한 채 폐지되다 보니 사회적 파장도 컸다고 합니다.


발달 단계별로 사회에서 제대로 대우받는 아이의 존재를 강조하며 어린이를 바라보는 방식, 육아에 대한 부모의 인식을 바꾼 아동심리학자 프랑수아즈 돌토 박사. 라디오 상담을 통해 아동과 아동기에 관한 시각이 더 자유롭게 변화하는데 큰 역할을 한 그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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