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양다솔 지음 / 놀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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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대도 다르고 살아온 이력도 나와는 공통점 하나 없는 사람이지만, 구구절절 마음에 와닿는 문장으로 책장을 쉬 넘기지 못하게 한 양다솔 작가의 에세이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2년간 절에 행자로 출가하고, 유럽으로 무전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비건으로 살고 있으며, 스탠드업 코미디 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 음식과 패션에 진심인 사람. 엉뚱한 조합의 이력에 눈길이 갔고 그의 진솔한 이야기에 푹 빠져들 수 있었던 시간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통 갈피를 못 잡는 사람. 마치 눈떠보니 11시인 기분이다. 뭘 하기엔 늦었고 안 하기에도 아쉽다."는 말로 시작하는 프로필부터 남다릅니다. 코로나 한복판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돈 되는 일은 안 하고 사는 백수로 지내면서도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직장이 없다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이 평안하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가난해질 수 없는 그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격일간 다솔' 연재 메일링 프로젝트를 하는 양다솔 작가. 글로 먹고 살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글을 연재하는 것이기에 하고 있지만, 글 한 편 한 편이 마음을 두드리기에 글쓰기 흥해서 계속 그의 이야기를 펼쳐 보이면 좋겠습니다. 이슬아 작가의 '일간 이슬아'의 팬이라면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절친 양다솔 작가를 자연스럽게 접했을 겁니다. 이 책에 서로 친해지는 에피소드가 등장해 재미를 더합니다.


"어떤 슬픔은 별의 속도와 비슷하기도 할까 생각한다. 우리가 보는 별은 사실 이미 소멸한 지 오래고,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사실 몇 십 년 전에 뿜어낸 빛인 것과 같이. 나는 내 삶에서 가장 웃긴 사람이 당신이었다는 것을 얼마 전에야 깨닫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꺽꺽 울고 말았다. 그 자리는 당신이 떠나고부터 쭉 공석이라는 것을. 그래서 더러 나에게 아주 웃긴 이야기가 생겨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책 속에서


곳곳에서 드러나는 가족 이야기는 많이 놀라기도 했는데요.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가졌더라고요. 노동운동가 출신의 든든한 엄마, 뭔가에 한번 꽂히면 끝을 보는 성격대로 결국 스님이 된다고 떠나버린 아빠. 왕따 2년을 겪으며 대안학교를 다닌 작가까지. 불행하고 어두운 가족사로 표현할 수 있었을 만한데도 양다솔 작가는 남다릅니다. 희화화하지 않은 채 웃음을 안겨줄 줄 알고, 질척이는 슬픔으로 변질되지 않은 채 담담히 분노 섞인 슬픔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평소 부잣집 여사님 패션의 소유자가 동사무소 갈 때만큼은 누더기 같은 동사무소용 패션이 따로 있다는 이모의 이야기에서도 깔깔거리며 웃었다가 그 속에 담긴 아픔을 알게 되니 마음이 먹먹해지더라고요. 그나저나 이모의 패션만큼이나 양다솔 작가의 패션 이야기도 빠질 수 없습니다. 친구가 없는 애들만 할 수 있는 패션을 선보이며 다녔다고 스스로 고백할 정도이니, 그의 옷장을 구경해 보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그런 그가 수수한 옷을 입어야 하는 직장을 다닐 때의 에피소드는 얼마나 배꼽 잡을 만큼 재밌을지 기대할만하지요.


보이차를 10년 이상 마시고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아침을 여는 건 언제나 물을 끓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다도 의식과 관련한 글이 영상처럼 스며들게 하는 매력을 선보이는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신선하고 차가운 공기의 새벽, 쨍한 햇살이 스며드는 따스한 오후의 풍경 속에서 호록호록 차를 마시는 모습이 절로 그려집니다.


먹는 데 좀 진심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평범한 우유 얼음이 아닌 두유를 꽝꽝 얼려뒀다가 만든 팥빙수, 편견 따위 날려버릴 휘황찬란한 맛을 뽐내는 비건을 위해 해외 직구로 온갖 식재료를 구입하고, 세계의 거의 모든 샐러드드레싱을 모방해 보기도 했습니다. 일하기 싫었던 직장에 나갈 때도 도시락만큼은 온 정성을 다해 싸간 사람입니다. 회사에선 영혼 없는 표정을 짓던 사람이 퇴근과 동시에 활력을 찾습니다. 하기 싫은 일이었기에 회사를 다니기 싫었음에도 꿋꿋이 2년을 다녔던 건 직장에 다닐 때만 받을 수 있는 대출을 받으려는 목적 그것 하나 때문이었고, 퇴사와 동시에 그 돈은 새로운 전셋집 보증금을 보태는데 들어갑니다.


직장에서의 모습만 생각하면 세상을 어찌 살아나갈지 쯧쯧거릴지는 몰라도 집에서만큼은 그의 삶은 완벽히 순환하고 있었습니다. 집안일도 철저했고 자신을 위한 투자도 확실했습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함을 보이는 그는 그저 진로, 직업이라는 문제 앞에서 할 말이 없어질 뿐입니다.


스탠드업 코미디 모임의 첫날, 다들 자기소개만 하고 끝나는 분위기에서 친목 모임은 싫다고 당당히 발언하며 첫 모임마저도 그들의 최초의 공연으로 탈바꿈 시킨 에피소드는 좋아하는 일만큼은 온 마음을 다할 줄 아는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에 대한 이야기가 더 궁금했는데 더 풀어놓진 않아 아쉬웠어요.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은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예술입니다. 챕터마다 처음과 마지막만 다시 한번씩 읽어봤을 정도였으니까요. 아트 영화에서나 마주할 법한 감성이 담긴 문체로 써 내려간 명언과도 같은 인상 깊은 한 줄. 간결하고 담백한 에쿠니 가오리 작가,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 작가의 감성을 엿볼 수 있으면서도 맛깔스럽게 잘 읽히는 문장을 선보여 애정 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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