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 - 당신을 심리적으로 지배하고 조종하는 사람에게서 벗어나는 방법
스테파니 몰턴 사키스 지음, 이진 옮김 / 수오서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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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심리를 지배하고 조종하며 괴롭히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 임상심리 전문가이자 플로리다 최고법원 가사 조정위원으로 활동하며 상담실과 법원에서 가스라이팅 가해자와 그 피해자들을 만나온 스테파니 몰턴 사키스 박사의 책으로 가스라이팅이 무엇인지 배워봅니다.


<사이콜로지 투데이>에 기고한 '가스라이팅의 열한 가지 위험 신호' 글이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지만, 가스라이팅 정보가 부족한 현실을 깨달으며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스라이팅 연구는 깊게 이뤄지지 않아 미국 정신의학회 DSM(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는 아직 가스라이팅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현실입니다.


<가스라이팅>은 다양한 유형의 가스라이팅에 대해 알아보면서 가스라이팅이 무엇인지, 어떻게 간파할 수 있고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시나리오별로 짚어주는 책입니다.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는 1938년 연극 <가스등(Gas Light)>, 1944년 영화 <가스등(Gaslight)>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상대로 미쳐가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설정이 등장하는데, 남편은 깜박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가스등이 아내에게는 깜박거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내를 교묘하게 심리적 지배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었습니다.


가스라이팅을 하는 가해자, 즉 가스라이터는 매혹적인 썸남 혹은 썸녀일수도 있고, 직장의 동료, 이웃, 친구, 가족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자초한 일이라며 당신을 괴롭히는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남녀관계에서 남성만 가스라이팅 가해자로 바라봤던 편견을 깨뜨리고 있습니다. 가스라이터는 성별에 관계없이 분포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설득과 다른 점은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조종의 기술을 사용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통제야말로 가스라이터들이 갈망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자긍심을 무너뜨리는 전략으로서의 통제. 그것이 가스라이터의 일상이자 삶의 방식입니다. 어떤 가스라이터들은 너무도 노련해서 전문가들도 놓치기 쉬울 정도라고 합니다.


가스라이팅 피해자들은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자신을 탓하며, 상대방에게 기회를 준다면서 관계를 끊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런데 정말 섬뜩한 진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스라이터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결국 가스라이터에게서 벗어나려면 관계를 끊는 게 최선이라는 걸 <가스라이팅>에서 강조합니다.


사랑받고 존중받는 사람이 아닌 물건 취급하는 가스라이터. 연락을 끊었다가 다시 나타나는 식으로 버림받을 것 같은 낌새를 느끼면 다시 흡입 착수하는 '후버링'을 자유자재로 하기도 합니다. "네가 그렇게 예민하다니 유감이야."라는 말을 하며 사과도 하지 않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이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가스라이터에게서 벗어나려고 할 때 가스라이터는 피해자의 죄책감을 자극해서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친구와 가족을 이용하는 전략을 펼치기도 합니다. 다시 잘 생각해 보라는 말을 하며 피해자를 구슬리는 사람을 '날아다니는 원숭이'로 일컫는데, 가스라이터 가해자 뿐만 아니라 이용되는 사람 역시 피해야 한다고 합니다. 가스라이터와는 품위 있게 헤어지겠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가스라이팅>에서는 가스라이터들이 어떻게 희생자를 선택하는지, 첫 만남에서 감지할 수 있는 적신호를 세세하게 짚어줍니다. 관계가 지속된 이후엔 벗어나는데 고통이 큰 만큼 초기에 잘 걸러내고 적신호를 감지하면 재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사실 연애 초반에는 콩깍지가 씌이는 시기인 만큼 꽤 힘들긴 할 테지요. 게다가 가스라이터는 너무도 평범하게 정상인 척 행동할 줄 압니다. 하지만 가스라이팅 피해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짚어주기에 가스라이팅 적신호들을 꼼꼼히 챙겨 읽게 되더라고요.


보호심리는 소유욕으로, 위로는 통제로, 자신감은 공격성으로, 열정은 폭력 성향으로, 솔직함은 무례함으로, 자신감은 경멸로 변질되는 가스라이터의 모습을 생각하면 오싹해집니다. 저자는 심취와 사랑의 차이에 유의하라고 조언합니다. 뇌의 속도를 조금 늦추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머리보다 가슴을 따르게 되는 실수를 하며 경고 신호를 무시하게 되니까요.


직장 내 괴롭힘의 상당수가 가스라이팅입니다. 동료를 희생시키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가스라이터. 괴롭힘을 증명하기엔 부족할 정도로만 딱 괴롭히는 데다가 보고를 올려도 여전히 그곳을 다닌다면 결국 피해자가 벗어날 수밖에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이 직장 내 가스라이팅입니다.


데이트폭력으로 목숨까지 잃는 사건이 뉴스에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요즘. 성적 괴롭힘, 데이트폭력, 가정폭력 같은 학대적인 관계도 가스라이팅입니다. 미투 운동으로 희생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가스라이팅은 사각지대입니다.


<가스라이팅>에서는 학대적인 관계를 정리하기까지의 단계를 짚어줍니다. 절대 다시 돌아가는 것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다음 학대의 강도를 높이는 꼴입니다. 가스라이터는 결코 진심 어린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둘이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꿈을 단호히 버려야 합니다.


가스라이팅의 범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정치, 사회, 소셜 미디어 가스라이팅도 있고, 과격 단체나 사이비 종교의 가스라이팅도 있습니다. 갈등으로 가득한 우정을 뜻하는 프레너미(frenemy)에서는 아무것도 얻는 게 없으며, 그런 친구는 감정 뱀파이어일 뿐이라고 알려줍니다. 가스라이터의 자기애적 욕구는 밑 빠진 독이라는 걸 일깨웁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가스라이터에 대한 이야기는 흠칫하게 만듭니다. 사실 읽으면서 어떤 행동은 나도 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우리 아이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가스라이팅에 가까운 언행을 하진 않았을까 두려웠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 가스라이터가 아닐까 고민한다면, 대체로 가스라이터가 아닐 거라고 안심시킵니다. 가스라이터들은 앞서 얘기했듯 결코 자기 탓을 하지 않으니까요.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고 극복하고 치유하는 여정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심리적 응급처치를 하며, 마음챙김 명상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일들을 차근차근 해내다 보면 결국 괜찮아지는 날이 올 거라고 저자는 응원합니다.


사키스 박사의 <가스라이팅>은 가스라이터를 알아챌 위험 신호, 상대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전략 등에서 가스라이터가 상황별 실제 사용하는 말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어 쏙쏙 이해되었습니다. 읽으면서 헉! 소리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어요.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가스라이팅인지도 모른 채 넘어갔을 만한 상황을 겪었을지도요. 가정, 직장 등 일상생활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는 가스라이터. 가스라이팅에 관한 것만큼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가라는 옛말을 잘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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