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와이프
JP 덜레이니 지음, 강경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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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스릴러 <더 걸 비포>로 전 세계 41개 이상 나라에 번역 출간된 베스트셀러 작가 JP 덜레이니의 2019년 소설 <퍼펙트 와이프>. 영상화된다는 소식에 원작소설 마니아로서 꼭 읽어보고 싶었던 소설입니다. 달콤한 초콜릿의 맛 뒤에 남는 씁쓸한 맛이 꽤 진하게 남는 소설이랄까요. 무서운 공포 요소는 없는데도 오싹한 스릴감을 안겨주는 결말이 인상 깊습니다.


꿈을 꾸는 여자를 묘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인도 여행 중 청혼 받은 순간입니다. 가슴 벅찬 감정은 꿈에서 깨자마자 들이닥친 극심한 통증으로 정신이 혼미합니다.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있는 건가 싶었는데 남편 팀이 눈물을 글썽이며 이상한 말을 합니다.


"당신이 꾼 건 꿈이 아니야. 업로드였어." 여자의 정체는 애비 컬런의 코봇. 5년 전 사별한 아내 애비의 기억을 업로드한 인공지능 로봇인 겁니다. 코봇은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뒤 상실의 고통을 덜어주고, 위로와 정서적 지원을 제공하는 동반자 로봇을 말합니다. 코봇은 공감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소셜미디어 기록과 문자를 비롯한 자료를 통합해 그 사람의 특성과 개성을 반영한 신경파일이 창조된 코봇.


코봇 애비는 충격에 휩싸입니다. 남편 팀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면서 악몽에 갇힌 충격입니다. 모든 걸 기억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처리 용량 부족으로 업로드할 때 선택적으로 취합한 일부 자료만 업로드하기 때문입니다. 빈틈은 딥 머신러닝으로 메워집니다.


애비에 대한 팀의 절절한 사랑의 결과물인 코봇.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팀은 마이크와 함께 스콧 로보틱스 창업자입니다. 실리콘밸리의 누구누구를 떠올리게 하는 성격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대단한 카리스마 소유자로 선지자, 신동으로 불리는 팀이 애비를 만나 결혼에 이르러 아이 대니를 낳아 키우는 과정까지의 시간들을 순차적으로 보여줍니다. 회사에서는 거침없이 채찍질을 가하던 성격의 팀이 예술가 애비를 만나 애비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면서 푹 빠져드는 과정이 흥미진진합니다.


팀과 애비 사이에는 대니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후발성 자폐를 앓게 되면서 특수학교에 다니고, 입주 돌보미가 아이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코봇 애비는 대니를 보자마자 강렬한 모성애를 느낍니다. JP 덜레이니 작가 본인도 자폐증을 가진 아들의 부모이기에 그 경험이 고스란히 잘 담겼습니다.


스스로는 기괴하고 혐오스러운 플라스틱 덩어리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대니를 생각하면서 이 가족의 품에 스며드는 코봇 애비. 애비가 어떻게 사망했는지 검색해 보려 했지만 애비와 관련한 정보는 차단되는 상황에 오히려 불안함이 밀려듭니다. 애비의 물건에서 겉면을 가짜 책으로 씌워 감춘 아이패드도 발견합니다.


의식을 지닌 AI를 만들 만큼 애비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한 채 과거에 매달려온 팀. 디지털 흔적으로부터 구성된 기억만 업로드되었지만, 팀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비밀은 없었을까요. 그 와중에 친구라는 발신자로 수상한 문자가 도착합니다. 스냅챗처럼 읽으면 잠시 뒤 저절로 사라져 흔적이 남지 않습니다.


팀과 애비는 평범하고 건강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했던 걸까요. 게다가 애비는 사망 판정이 아닌 여전히 실종 상태라고 합니다. 애비가 사라진 시점에는 이미 관계가 깨지기 시작했던 걸까요. 애비가 사고를 당한 건지 아니면 스스로 떠났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대니를 두고 혼자 떠났을 거라 생각되진 않지만,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면서 정신이 무너졌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온갖 의심이 들지만 그럼에도 팀의 사랑을 믿는 코봇 애비 앞에 또 다른 현실이 닥칩니다. 아이패드에 담긴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고, 팀의 치명적인 악습관을 발견하게 됩니다. '피그말리온은 이 여자들의 행동을 보고 자연이 여성에 불어 넣은 많은 결함에 혐오를 느꼈고 잠자리를 함께할 아내 없이 오랫동안 독신으로 지냈다.'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등장하는 유명한 피그말리온 이야기로 팀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조각상을 사랑한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창조물과 사랑에 빠집니다. 머릿속의 이상을 조각상만 실현할 수 있었으니까요. 완벽한 결혼, 완벽한 자녀, 완벽한 아내라는 환상을 갈라테이아 증후군으로 설명합니다.


<퍼펙트 와이프>를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독자도 묘하게 기분이 나빠지면서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팀의 맨스플레인이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이 감정이 꽤 찝찝하게 남더라고요. 코봇이 어쩌면 진짜 애비보다 팀의 환상에 잘 들어맞는 짝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애비의 생각, 의식, 감정을 갖고 있는 코봇은 애비일까요, 아닐까요. 공감, 연민, 도덕을 기준으로 인간성을 판단한다면 자폐아 대니는 인간이 아닌걸까요.


숭배하는 성녀 이미지로서의 아내와 그렇지 않은 여성을 대하는 방식, 성차별과 여성 혐오가 점철된 직장의 현실 등 감성 지능을 가진 로봇이라는 SF적 요소를 통해 가족 심리 스릴러를 끌어가는 방식이 놀랍습니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구성은 짜릿할 정도의 오싹함에 몸서리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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