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 대하여
한정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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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단어만큼 복잡미묘한 감정을 낳는 단어가 또 있을까요. 엄마와의 관계에서 풀어나가는 소설 <엄마에 대하여>. 한정현, 조우리, 김이설, 최정나, 한유주, 차현지 소설가가 모여 완성한 테마소설로 여성 소설가 6인의 에세이인가 싶을 정도로 현실의 엄마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70~80년대 대중가요에서 모티브 삼은 스토리는 엄마 세대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효과를 톡톡히 보여줍니다.


어느 날 아주 어릴 때 떠난 생물학적 어머니로부터 이메일을 받은 나나. 귀하라는 호칭으로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이메일은 나나가 그동안 고민해왔지만 스스로의 마음조차 확신할 수 없어 결론 내지 못했던 결혼관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는 계기가 됩니다. 이성애와 특정 나이대를 대상으로 한 결혼제도. 정상 가족에서 벗어나면 사회에서 배제됩니다. 결혼을 하면 여성은 돌봄과 희생을 당연시 요구당합니다. 엄마가 되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걸어왔던 길을 엄마가 됨으로써 놓아버리게 됩니다.


한정현 작가의 <결혼식 멤버>는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선 나나의 생물학적 어머니가 내디딘 인생을 보여줌으로써 사회가 인정하는 정상 가족이 아니더라도 여성 서사를 써 내려갈 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모성애보다는 주체적 삶을 선택한 엄마와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관계를 이토록 멋지게 뽑아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여성 서사 소설이기에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닐까요.


조우리 작가의 <그때도 지금도 우리는>은 엄마의 젊은 시절을 상상해보게 합니다. 여행 가느라 출국하는 날, 엄마가 맹장수술을 하는 바람에 친구 상미를 대신 보호자로 보내고 여행길에 오르는 '나'. 상미가 기타를 치는 엄마의 공연 영상을 보내주면서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됩니다. 엄마가 노래 부르는 걸 즐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통기타를 치다니. 게다가 공연까지 하다니.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며 엄마가 나에게 말해주지 않은 이야기들이 궁금해지게 됩니다. 엄마를 내가 태어나고서부터 이 세상에 존재한 사람처럼 생각해오진 않았는지, 사회가 만들어낸 전형적인 엄마상에 가둬놓고 바라본 게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김이설 작가의 <긴 하루>는 젊은 작가의 소설로만 생각하고 읽어내려가다가 이런 깊은 맛을 낼 줄 아는 작가라니! 하며 다시 한번 이력을 살펴봤습니다. 70년 대생 작가여서 제가 공명한 포인트를 작가가 잘 끌어낸 거로구나 이해되더라고요. 노모를 모시고 사는 유순은 취업 못한 채 서른을 앞둔 딸이 집을 나가버린 일 때문에 가슴이 답답합니다. 사귀는 사람한테로 간 듯하지만 번듯한 직장을 가지지 못한 남자와의 결혼을 반대해왔기에 마음이 복잡합니다. 유순 그 자신도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강행했다가 결국 홀로 아이를 키워온 탓에 자식만큼은 자신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길 바랍니다. 오랜만에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지만 "반갑고 두려운 마음에 선뜻 전화를 받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이 애달프게 다가옵니다.


"인생이란 시련의 파도를 넘어가는 과정이었지만 누군가는 그 파도에 물거품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 긴 하루 中


최정나 작가의 <놓친 여자>는 헬리콥터맘의 전형을 보는 기분이었어요. 아들의 첫 데이트 장소에 데려다주고 몰래 둘의 만남을 지켜보기도 하고, 식사 자리에 깜짝 선물까지 보내는 부부. 자식을 위한다는 생각에 하는 습관적인 행동일 수 있지만,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니 도를 넘어선다는 게 보입니다. 나 역시 아이를 위하는 일이라며 하는 행동이 그렇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한유주 작가의 <우리 만남은>은 뉴욕에서 딸을 만나기로 한 석희의 여정을 통해 수없이 엇갈리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뉴욕행 비행기 자리가 나지 않아 간신히 단체여행 코스를 따라 움직이며 뉴욕으로 가게 된 석희. 그 과정에서 단체관광객들에게 은근한 따돌림을 받는데. '내가 뭘 잘못했지.' 하며 생각해 봐도 자신은 누구 엄마라고 소개하는 대신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했고, 직업과 여행의 목적을 밝힌 것뿐입니다. 단체 관광객들 틈에서 혼자 독방을 써가며 힘겹게 여행했다는 엄마의 추억이 모티브가 된 <우리 만남은>. 평소 엄마와의 모습과는 다른, 낯선 곳에 있는 엄마를 상상해보는 시간이 됩니다.


차현지 작가의 <핑거 세이프티>는 겉으로는 무심한 듯 보이지만 모녀 갈등이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열두 살 때 부모로부터 큰 상처를 받은 이후 언제나 그녀의 탓으로 돌리는 나. 이 소설에선 엄마라는 단어를 그녀로 대체합니다. 딱 그만큼의 관계라는 걸 보여주지만,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며 죽음까지도 생각한 그들은 다른 듯 닮았습니다. 그녀를 용서하지 못할 만큼의 증오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함께 산다는 것, 그 복잡하면서도 지독한 갈등의 이면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엄마와 딸의 관계는 언제나 감정적으로 와닿습니다. 엄마의 불행, 나의 불행에 서로의 책임이 없음에도 함께 엮이기 일쑤이고 대물림되곤 합니다. <엄마에 대하여>는 그런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을 비춥니다. 물론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한 채 엄마라는 정체성만 남긴 여성이라고 해서 불행으로 끝나진 않습니다. 소설 속 엄마들의 모습은 엄마에 대해 가졌던 단편적인 (어쩌면 딸이 바라는) 엄마상이 아닌, 엄마에게도 수많은 서사가 있음을 이해하는 시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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