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단 한 번 - 때론 아프게, 때론 불꽃같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간 당시 '올해의 문장상'을 수상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가 이번에 리커버 에디션으로 다시 만나는 故 장영희 작가의 스테디셀러 <내 생애 단 한 번>. 한평생 목발과 보조기에 의지하며 수차례의 암 재발로 병마와 싸우면서도 긍정적인 삶의 에너지와 희망을 잃지 않았던 수필가의 메시지를 만나보세요. 


어둑어둑한 감성이 아닌, 맑고 경쾌한 문체가 돋보이는 <내 생애 단 한 번>. 생후 1년 만에 소아마비로 장애 1등급의 중증 장애를 안고 평생 목발을 짚은 장영희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집입니다.


"꿈속에서 나는 길바닥에 앉아 있고, 사람들은 길을 가다 말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 도망가고 싶지만, 목발과 보조기 없이는 꼼짝도 할 수 없다."처럼 어렸을 때는 이런 악몽을 꾸기도 합니다.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면서도 한심하고 슬픈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평소 부정적일 때 쓰던 '하필이면' 왜 자신일까 하는 생각을 좋은 상황에 갖다 붙였을 때 뜻밖의 깨달음을 안겨준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동안 스스로가 지고 있는 인생의 짐이 남의 짐보다 무겁다고 아우성쳤던 좁은 소견으로 살았다는 것을요. 억만분의 일의 확률로 태어난 생명인데 말입니다. "우리의 태어남은 생각하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의 약속"이라는 장영희 작가는 살아가는 일이 바로 이 약속을 지켜 가는 일이라는 걸 알려줍니다.


신체 장애는 가난, 고립, 정말, 무지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사회. 동생과 함께 간 명동 옷가게에서 동전 구걸하는 거지 취급을 받은 에피소드를 접했을 땐 읽는 저조차도 착잡하고 분노가 솟구치더라고요. 장애로 인한 편견과 차별은 삶의 여정 내내 숱하게 일어났습니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 입시 기회를 얻는 것도 그에게는 난관이었습니다. 대학원 진학 때는 면접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장영희 작가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옷을 선택할 땐 거지처럼 보이지 않는데 기준을 두고 골랐고, 장애가 문제되지 않는 해외에서 유학생활을 했습니다.


겉으로는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사람이면서도, 속으로는 여전히 방황하고 놀라고 외롭고 수줍은 사람임을 고백하는 장영희 작가. 시련을 이겨내는 여정은 힘들지만, 좌절하며 낙오자로 남지 않기 위해 달린 그의 여정은 우리에게 희망의 응원 메시지가 되어줍니다. 장애인으로서 겪은 남다른 체험, 영문학과 교수로서 학생들과 함께한 이야기, 부모님과의 에피소드들은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건져올린 소중한 가치들을 보여줍니다.


삶에 관한 한 어쩌면 우리 모두가 '둔치'인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말. "실수하고 후회하고, 남에게 상처 주고 상처 입고, 잘못 판단하여 너무 늦게 깨닫고, 넘어지고 좌절하고, 살아가면서 겨우겨우 조금씩 터득해 가는" 둔치들이라고 말입니다. 경험으로 제일 잘 터득하는 인간이기에 '어떻게 사는가'를 배우는 방법은 실제로 시행착오를 하면서 살아 봄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삶은 단 한 번뿐입니다. 인생의 깊은 맛을 알 즈음엔 이미 몸과 마음이 시들 대로 시든 상태입니다. 나이가 들면 꿈이 무엇이냐고도 더이상 묻지 않습니다. 다시 뛰어들 용기가 없는 데에 대한 슬픈 자기방어를 하며 치열한 삶의 무대에서 내려와 그저 삶을 관조하는 구경꾼으로 바뀌는 겁니다. 결국 방황하고 탐색하기에 아름다운 청춘 시절의 소중함을 이야기합니다. 스스로의 슬픔에 취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청춘들에게 들려주는 충만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습니다.


부모님의 믿음과 노력이 꿈을 펼칠 줄 아는 한 사람을 만들어냈습니다. 장애인을 두고 쑥덕거리는 시선에서 꿋꿋하게 대처한 어머니, 부녀지간이면서 스승과 제자, 동료, 공저자이자 공역자로서 든든함을 책임져준 아버지 고 장왕록 박사. 꿋꿋한 신뢰와 믿음이 빛을 발휘한 따뜻한 가정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 뭉클했습니다.


사회로부터 추방당하여 아무런 할 일 없이 남은 생을 보내야 하는 삶이 아닌, 편견과 차별을 딛고 장영희만의 아름다운 삶을 일궈나간 이야기 <내 생애 단 한 번>. 감정 폭탄이 없는 담백한 글인데도 목 메게 하기도, 맑고 사랑스러운 배려에 온기어린 웃음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때론 아프게, 때론 불꽃같이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