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의 수화 통역사 세트 - 전3권 - 데프 보이스 + 용의 귀를 너에게 +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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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만 우리 주변의 삶이기도 한, 농인문화를 접할 수 있는 법정의 수화 통역사 시리즈. 2017년 마루야마 마사키 작가의 데뷔작 <데프 보이스>를 읽으며 청각장애인의 세계를 새롭게 바라본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슴 따스한 스토리 속에 사회 고발 주제를 담아 전개하는 방식이 큰 울림을 줍니다. 


들리지 않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 코다(CODA). 주인공 아라이는 부모와 형이 모두 농인이지만, 아라이만 청인입니다. 어린 시절 그는 가족의 통역사 역할을 하며 자랐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자연스럽게 배운 수화를 사회생활에 사용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불편할까 싶어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속 사정을 알게 되면 이쪽도 저쪽도 아닌 코다의 체성에 방황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데프 보이스>는 가족 모두가 선천적 농인인 데프 패밀리를 비롯해 중도 실청자, 난청자 등 다양한 농인을 등장시켜 그들 앞에 놓인 편견을 속속들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을 농인이라는 테두리 안에 묶어두고 편견 또는 오해한 채 바라보던 것들을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용의 귀를 너에게>는 발달 장애 아동의 영역까지 들어가 소통으로서의 언어란 무엇인지 짚어줍니다. 이 소설을 통해서는 농인에게도 다양한 사고방식으로 다양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농인이라면 구화법을 배워 청인의 말을 잘 알아듣기를 바라는 다수자의 입장을 꼬집기도 합니다. 


신작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에서는 네 편의 주요 에피소드가 있지만 특히 주인공 아라이의 가족 성장 스토리가 인상 깊습니다. 전작에서 인연을 맺은 경찰관 미유키와 딸 미와와 새로운 가정을 이룬 아라이. 그 사이에 들리지 않는 아이 히토미의 탄생은 그들에게 또 다른 감정을 겪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첫째 딸 미와는 청각장애인 형제자매를 둔 사람을 일컫는 SODA로서 언니의 역할을 하게 되었고, CODA인 아라이 역시 농인의 부모로서 새로운 변화들을 경험합니다.


흥미롭게도 6년의 세월을 담아냈습니다. 긴 세월 동안 첫째 딸은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되었고, 둘째 딸 히토미도 성장해 수화로 재잘거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작에 비해 긴 시간 흐름은 아라이 가족을 위해 설정하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들리지 않는 아이가 잘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게 당연하니까요.


현실에선 코다의 위치가 농인 사회에서든 청인 사회에서든 경계에 걸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데프 보이스>에서 우리 편이냐 적이냐 묻던 소녀의 물음에 아라이는 이제 답을 할 수 있을까요.


농인 세계를 알리려는 목소리는 세 권의 소설로 이야기해도 여전히 할 말이 많아 보입니다. 첫 책 <데프 보이스>를 쓸 때는 단 한 명의 농인 지인 없이 탄생했던 작품이었다는데 (사실 다들 깜짝 놀라는 게 작가가 농인도 코다도 아닌 청인이라는 것이지요)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를 쓰면서는 수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작가. 농인이 아니면서도 농인문화를 알리는데 탁월한 감수성과 능력을 가진 멋진 작가입니다. 


배려심을 가진다는 것과는 달리 실제 농인들의 불편함을 인지하는 수준은 낮다는 걸 소설을 읽을 때마다 깨닫게 됩니다.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법정의 수화 통역사 시리즈가 앞으로도 나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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