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는 24시
김초엽 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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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을 향한 엔씨소프트의 새로운 실험, 단편 소설 프로젝트 NC FICTION PLAY. 즐거움과 창작에 대한 게임회사 엔씨소프트의 캠페인 덕분에 국내 최고의 작가진 일곱 명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김초엽, 배명훈, 편혜영, 장강명, 김금희, 박상영, 김중혁 작가까지 평소 눈여겨보던 작가가 한 명쯤은 포함되어 있을 거예요! 저마다의 감성이 드러나는듯한 사인에서부터 함께 놀아보자는 기운이 팍팍!


SF 요소가 들어간 이야기를 좋아하는 저는 김초엽 작가의 <글로버리의 봄>이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평화로운 시골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 대저택. 그런데 경찰이 수사하는 게 아니라 왠 여행자들이 나타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파헤칩니다. 이곳은 여행자를 위한 놀이 공간입니다. 즐거움의 도시 글로버리에는 이처럼 여행자들을 위해 설계한 공간이 즐비합니다. 단순한 감각 자극에 중독된 미래의 사람들. 글로버리에서는 궁극의 즐거움을 실현할 수 있어 인기 있는 곳입니다. 


게임 속 NPC 같은 인물의 역할을 하는 '블록'. 인간이 아니지만 너무나도 인간 같은 행동을 하며 연극의 부품으로 등장합니다. 수많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는 글로버리에서 설계자들은 경쟁적으로 자극 수준을 높여갑니다. 살인 사건의 피해자로 죽고 재조합되어 살아나기를 반복하는 블록. 설정된 감정에 휘둘리는 블록이 생기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깁니다.


공간 설계자로 활동하는 주인공이 블록을 통해 글로버리의 실체를 깨달아가는 여정을 보여준 <글로버리의 봄>. 즐거움의 증폭을 위한 인간의 노력은 그야말로 끝이 없음을 넌지시 드러내며 자극적인 즐거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장편으로도 영화로도 확장되면 좋겠다 싶은 소재입니다.


배명훈 작가의 <수요 곡선의 수호자>는 엉뚱한 이론인듯하면서도 그럴법하다는 느낌을 안겨주는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주인공이 우연히 발견한 버려진 로봇. 그 로봇은 소비를 해야만 하는 로봇입니다. 퍼뜩 이해가 안 되지요? 일반적으로 로봇은 공급만 합니다. 로봇이 생산을 담당하다 보니 과잉 생산이 되었고, 정작 인간은 풍족해진 생활에 적극적인 소비를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소비 로봇을 개발한 겁니다. 재밌는 건 여기서부터입니다. 즐거움을 주는 곳에 돈을 써야 했습니다. 로봇이 인간처럼 진짜 소비를 하려면 인간의 감정을 알아야 했습니다. 기억도 인간적이라 까먹는 것도 있고, '감'으로 판단할 줄도 아는 로봇이 탄생한 겁니다. 그런데 왜 로봇 혼자 버려져 있게 된 건지 그 비밀을 파헤치는 이야기입니다.


편혜영 작가의 <우리가 가는 곳>은 잔잔한 스토리입니다. 실종되고 싶은 사람들을 사라지게 도와주는 실종대행업을 하는 주인공. 폐업하기 직전에 찾아온 의뢰인을 도와주느라 함께 떠나게 됩니다. 어쩌다 보니 시골까지 들어가게 되는데. 새로운 선택의 여정 속에 감춰져 있는 즐거움을 발견하는 과정이 울림을 줍니다.


장강명 작가의 <일은 놀이처럼, 놀이는……>은 작가의 이름이 그대로 등장해 논픽션인가 싶을 정도로 헷갈리더라고요.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긴 했지만, 픽션 맞다고 합니다. 무기력을 없앨 수 있는 행동 자극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박사에게서 받은 헤어밴드. 착용 첫날부터 중독됩니다. 우울증 때문에 그동안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글도 못 썼는데 이제는 깊은 몰입으로 의식의 흐름 기법대로 줄줄 써 내려가게 되니 중독 안될 수가 없겠죠. 창작에 대한 고통과 기술 진보가 만나 새로운 방식을 선사할 때, 그 이면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악영향도 있을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스토리입니다. 헤어밴드는 수동적인 즐거움의 비유이자, 단순한 쾌감 상태를 의미하는 물건입니다. 즐거움의 진정한 면모를 생각해 보게 하는 글입니다.


김금희 작가의 <첫눈으로>도 짠한 청춘의 고뇌가 담긴 글이라 인상 깊었습니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예능국에서 일하는 주인공은 시청자의 즐거움과 윤리 문제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시청자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직장인으로서 결국 회사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모습이 남일 같지 않을 겁니다.


박상영 작가의 <바비의 집>은 단번에 이해하긴 힘들었지만 트라우마와 관련한 내면아이에 대한 이야기여서 심리적 접근이 인상 깊었던 스토리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즐거움과 달리 그 속에는 균열이 생겨있다면? 즐거움이란 그저 즐거운 일을 한다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김중혁 작가의 <춤추는 건 잊지 마>는 보더라인 경계원으로 일하며 난민과 대치해야 하는 괴로운 상황에 놓인 주인공. 해고당하지 않으려면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 때문에 위험에 빠진 난민을 도와줄 수도 없습니다. 이런 갈등 상황을 던져놓고 과연 즐거움이란 주제를 어떻게 풀어낼지 엄청 궁금해지더라고요.


2021년 나이키는 PLAY NEW 캠페인으로 스포츠의 진정한 가치를 즐거움에서 찾았습니다. 스포츠 그 자체의 즐거움을 누리자는 거죠. PLAY라는 단어가 가진 본질을 게임회사 엔씨소프트에서도 이처럼 찾아내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중요한 건 피상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는 즐거움을 찾는다는 데 있습니다.


<놀이터는 24시>에서는 그동안 별것 아니게 생각했던 즐거움이라는 키워드를 새롭게 바라보게 합니다. 7명의 작가들이 독특한 화법과 스토리로 즐거움을 고민하는 다양한 시선이 남다른 단편소설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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