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
B. A. 패리스 지음, 김은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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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스릴러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비하인드 도어>의 작가 B. A. 패리스의 신작 <딜레마>. 데뷔작 이후의 작품들이 첫 책에서 받았던 전율만큼은 없어서 여전히 제게는 이 작가의 최고작은 <비하인드 도어>로 손꼽고 있습니다. 파국을 앞둔 한 가족의 딜레마를 다룬 가족 심리에 초점 맞춘 소설 <딜레마>. 이번 책은 데뷔작과는 스릴감의 결이 살짝 달라서 비교할 순 없겠더라고요. 대신 뜻밖의 감동을 받은 소설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때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 책 속에서


아내 리비아와 남편 애덤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진행됩니다. 애덤과 리비아는 학생 때 아이가 생겨 결혼을 일찍 서두른 부부입니다. 앞날을 대비하지 못한 채 일찍 부모가 된 그들의 신혼 생활은 고되었습니다. 아내는 친정으로부터 버림받아 공허감을 느꼈고, 남편은 한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성숙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부부의 사랑이 그 모든 것을 포용하며 결혼 생활을 이어왔습니다. 아들과 딸은 잘 성장해 이제 독립을 앞두고 있고, 곧 아내의 마흔 살 생일을 맞아 근사한 파티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불안한 긴장감을 유발합니다. 야심한 밤에 남편이 집을 나간 겁니다. 그 순간 아내는 남편에게 말하지 못했던 비밀을 알게 된 남편이 복수를 하러 나가는 게 아닌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한편 남편의 시점에서는 지난 열네 시간의 고통에 짓눌려 딸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부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엄마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지 못할 줄 알았던 홍콩에서 유학 중인 딸이 깜짝 선물처럼 집으로 오기로 했습니다. 아빠 애덤만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일 파티가 있는 날 오전에 끔찍한 뉴스를 접합니다. 딸이 타고 있을지도 모르는 비행기 추락 사고가 있었던 겁니다. 딸과 연락이 되질 않자 애덤은 불안에 사로잡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이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하게 치를 마흔 살 생일파티를 위해 아내 리비아는 평생을 기다려왔습니다. 오늘은 행복해야 할 날입니다. 신혼 초 아내에게 잘못해 준 것들에 대한 마음의 짐이 있는 애덤은 딸의 생사가 불확실한 현 상황을 아내에게 아직은 말할 수 없습니다.


"나의 세계는 6주하고도 3일 전에 무너졌다."- 책 속에서


생일 파티를 하는 내내 정신이 딴 곳에 가 있는 듯한 남편을 보며 아내 리비아도 불안감에 사로잡힙니다. 혹시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비밀을 남편이 알게 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죠. 임신 후 애덤과 결혼을 결정하고부터 부모님에게 거부당했다는 사실에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린 것처럼 공허한 리비아는 남편이 신혼 초 시절을 보상하기 위해 노력해온 걸 잘 알고 있기에 서로를 격려하고 지지하고 응원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비밀로 두게 되자 괴롭습니다. 사실 리비아는 이번 생일 파티를 위해 딸이 집에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큽니다. 딸이 못 오는 상황이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엄마와 딸 사이에는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요.


부부가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며 어림짐작하고, 비밀을 이어가는 여정은 서로를 너무나도 보호하고 싶어서, 지키고 싶어서입니다. 저마다 좌절감, 수치심, 분노,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범벅된 채 입을 다무는 상황. 이쯤 되면 독자의 마음은 답답해 미칠 지경에 이를 겁니다. 그런데 저는 공감과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습니다. 평범한 가족에게 비극이 닥쳤을 때 <딜레마>의 이야기는 어쩌면 누구나 할 법한 최선의 행동이라고 생각들 정도입니다.


정답이 있다면 좋겠지만, 선택해야 할 두 가지 중 어느 쪽을 선택해도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에 놓였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이미 했어야 할 말을 꺼낼 적당한 때를 놓친 부부. 진실이 밝혀질 즈음에 이 가족은 어떤 모습으로 서있게 될까요.


인생 곳곳에 지뢰처럼 놓인 딜레마를 저마다의 비밀을 가진 가족 이야기로 버무린 B. A. 패리스의 소설 <딜레마>. 기존 가족 심리 소설에 비해 자극적인 서스펜스는 뺐지만, 지금 내 가족 상황에 오히려 생생하게 대입할 수 있는 현실감 있는 소재여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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