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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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와 2017년의 런던을 오가며 홀연히 사라진 어머니의 흔적을 뒤쫓는 이야기 <컨페션>. 제시 버튼 작가의 전작 《미니어처리스트》, 《뮤즈》의 표지도 황홀한데 이번 책도 표지가 예술입니다. 스토리와 연관된 표지의 초록 토끼와 아름다운 속표지까지 제시 버튼의 소설은 디자인만으로도 소장각이에요. <컨페션>은 여성들에게 바치는 러브레터라고 말할 만큼 여성 서사가 압도적인 소설입니다.


1980년 스무 살 엘리스는 웨이트리스, 극장 일, 모델 일을 하며 아직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발휘해야 할지 잘 모르는 풋풋한 사회 초년생입니다. 공원에서 마주친 코니를 만나면서 엘리스의 삶은 변합니다. 코니는 서른여섯 살 작가입니다. 우연히 마주친 엘리스에게 끌리며 자신의 삶에 엘리스의 자리를 내어줍니다.


엘리스와 코니의 관계를 다룬 1980년대 이야기는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을 만나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는 관계에 주목합니다. 코니는 어엿한 작가로 승승장구하지만 엘리스는 코니에게 거의 얹혀사는 입장입니다. 나이 차이도 꽤 나는 편이어서 엘리스의 행동은 아직 어려 보이기만 합니다. 엘리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무능하다는 것을요. 하지만 코니와 함께여서 행복합니다.


코니의 책이 미국에서 영화화되면서 함께 미국으로 가지만, 엘리스에게 그 일은 오히려 악영향만 끼칩니다. 엘리스는 그곳과 무관한 사람처럼 느끼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지만 제자리가 아닌 느낌을 받습니다. 특별한 재능이 없었던 엘리스는 코니에게 필요하고 특별한 사람이고 싶어 하지만 실상 그렇지 못해 착잡합니다.


한편 2017년 런던의 이야기에서는 어머니의 부재가 삶에 큰 영향을 끼친 로즈에 주목합니다. "어머니를 죽였을 때 나는 열네 살이었다."로 시작하는 로즈의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어머니에 대해 아는 것은 아버지에게 들은 게 전부이지만 그마저도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만 한 살이 되기 전에 떠나버린 엄마. 그 어디에도 어머니의 흔적은 없습니다. 사진 한 장조차 없습니다. 다정한 아빠에게서 잘 커왔고, 가진 적도 없었던 어머니를 지우고 싶어도 어머니에 대한 의문은 로즈의 삶을 지배합니다.


서른네 살의 로즈는 남자친구 조의 지지부진한 사업을 도와주며 동거 중입니다. 둘의 관계도 점점 지쳐가는 시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건넨 책 두 권이 로즈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소설 《밀랍 심장》과 《초록 토끼》, 에세이 <메뚜기 재앙>의 저자 코니가 엄마의 소식을 알 수도 있다고 말이죠.


코니의 책을 읽으며 어머니를 찾는 로즈. 특히 혼자가 되길 원하지 않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삶의 고독, 잘못된 사랑이 일으키는 파괴에 관한 《초록 토끼》는 의미심장합니다. 두 권의 소설로 성공의 정점에 섰던 코니가 절필하게 된 건 어머니와 관련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해봅니다.


결국 신분을 숨겨 코니의 집에서 일을 하게 되는 로즈. 마지막 소설을 쓰고 있는 코니의 작업을 도와주면서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 헤맵니다. 하지만 소설이 마무리될 때까지도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끝끝내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지금쯤은 짐작하신 대로 1980년대의 엘리스가 바로 로즈의 엄마입니다. 그 시절 어떤 일이 벌어졌길래 딸 로즈를 남겨두고 홀연히 떠난 걸까요. 살아있기는 한 걸까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엘리스와 로즈 모녀가 시간대를 달리하며 코니라는 인물과 얽히며 느끼고 깨닫는 감정은 닮은 듯 다릅니다.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펼치는 방식 또한 다르지만 그 근원에 자리 잡은 당당한 삶에 대한 욕망은 닮았습니다.


그저 누군가에 기대에 휘둘리는 삶이 아닌 스스로가 되고 싶은 여자가 된다는 것. 늘 기다리며 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존재 혹은 갈망하기만 했던 존재에서 벗어나 원하는 것을 실현하는 배짱을 보이기까지 무엇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보여주는 <컨페션>.


'나는 뭘 하고 있지?'라는 감정을 품고 사는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을 탐색하고 목소리를 찾도록 도와주는 소설입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이토록 슬프고 아름답게 펼쳐 보일 수 있다니. 작가가 말하는 여성에게 바치는 러브레터라는 말이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쯤엔 자연스럽게 이해되었습니다.


엘레나 페란테 작가의 나폴리 4부작에서 세심하게 그려낸 여성의 자존감이 떠오르게 하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마음속에서 낯익은 감정이 느껴졌다. 타인의 회복력을 보면 마음을 닫고 싶은 욕구."(p484)를 느낀 엘리스의 감정을 보며 나폴리 4부작의 주인공 릴라와 레누와의 관계가 떠오릅니다. 엘레나 페란테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제시 버튼 작가의 소설도 궁합이 잘 맞을 거예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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