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원 (특별판)
존 마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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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로 완벽한 짝을 찾아주는 서비스가 있다면? 유전자 정보에 기반한 DNA 매치 시스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 <더 원>. 넷플릭스 오리지널 8부작 드라마로 제작 방영되어 저는 영상으로 먼저 접했는데 기대한 것보다는 좀 밋밋하더라고요. 드라마는 인물이나 사건이 변형되어 있는데, 제 취향은 원작 소설 쪽입니다. 소설은 스릴러 분위기 제대로 뿜뿜인데다가 다이내믹한 전개가 일품입니다.


영혼의 동반자를 갈구하는 이들에게 DNA 매치는 그야말로 과학의 선물입니다. 사랑의 성공률은 100퍼센트, 실패율은 제로. 서로에게 완벽한 존재를 찾게 되는 거니 필생의 인연을 찾기 위해 허비하지 않게 됩니다.


DNA 매치 시스템에 유전자 정보가 등록된 이들에 한해 이뤄지는 거라 모두가 매치되는 건 아니긴 하지만요. 그래서 DNA 매치의 부산물인 데이터 어플이 성행하기도 합니다. 아직 매치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같은 처지의 외로운 사람을 만나려 애씁니다.


매치가 이뤄지면 실연으로 고통받을 일도, 고독에 몸부림칠 일도 없이 행복한 여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DNA 매치는 정말 이로운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드는 의문. 저는 기혼이란 말이지요. 이런 시스템이 성행한다면 내 남편이, 내 아내가 영혼의 짝인지 궁금해질 것 같아요. 매치가 아니라면 진정한 영혼의 짝이 이 세상 어디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계속 신경 쓰일 것만 같습니다. 특히 삐거덕거릴 땐 더 그런 생각이 들 법 하고요.


소설 <더 원>은 누군가에겐 최고의 과학 기술이 누군가에겐 악몽이 될 수도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상상했던 부작용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어서 책장을 덮을 때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었어요.


어느 날 매치가 되었다는 소식을 받은 맨디. 남편이 DNA 매치를 찾아 떠난 바람에 결혼이 파탄 난, DNA 매치 시스템의 피해자이기도 했던 맨디에게 드디어 영혼의 짝이 생긴 겁니다. 매치의 SNS를 들여다보니 자신의 관심사와는 천지 차이여서 의심스럽지만, 여동생들은 모두 DNA 매치와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기에 기대를 해봅니다.


DNA 매치에서 짝지어준 남자가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어서 아직 만나지는 못했지만, 전화 통화만으로도 행복에 겨운 제이드도 있습니다. 생활고에 허덕이는 탓에 쉽게 떠날 생각을 못 하며 뭉그적댔지만, 결국 용기를 내어 그가 사는 곳으로 찾아갑니다.


약혼 상태인 닉과 샐리의 사연도 흥미진진합니다. 결혼식장에 들어가기 전에 운명의 상대를 찾았는지 궁금해하는 샐리 때문에 둘은 결국 DNA 매치 시스템에 등록하고 결과를 기다립니다.


DNA 매치의 유전자를 발견했던 과학자이자 이 시스템을 상용화한 회사의 대표인 엘리 역시 이번에 DNA 매치가 확인되었다는 메일을 받습니다. 10년 전에 자신의 유전자를 등록해뒀었는데 드디어 완벽한 파트너가 나타난 겁니다. 그동안 엘리의 영향력 때문에 꼬인 사람들이 많았기에 사랑에 넌더리난 상태인 엘리는 이참에 온전한 사랑의 감정을 만끽할 수 있을까요.


다들 이미 매치가 된 이상 호기심을 누그러뜨리긴 힘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쉽게 가지 않습니다. 맨디의 매치는 서로 만나기도 전에 사고를 당해 추도식이 진행된다는 소식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간 제이드의 매치는 시한부 인생입니다. 약혼 관계였던 닉과 샐리는 영혼의 동반자가 아님이 확인된 데다가 이성애자라고 생각했던 닉에게는 남자가 매치된 상황에 이릅니다.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이 이어집니다.


이런 와중에 영국 최악의 연쇄살인범 크리스토퍼의 에피소드는 그야말로 스릴러의 정점을 찍습니다. 그도 매치가 된 겁니다. 그런데 상대방의 직업이 경찰입니다. 서른 명의 여자를 살인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크리스토퍼는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이코패스이고, 스스로도 자신의 상태를 아주 잘 알고 있는 정말 냉혹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매치가 된 경찰 에이미와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낯선 부작용을 겪게 됩니다. 저는 크리스토퍼의 에피소드가 가장 흥미롭더라고요. 과연 어떻게 될지 결말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다섯 팀의 사연이 번갈아가며 진행되는 소설 <더 원>. 드라마의 다음 시간에 효과를 톡톡히 내는 끊어치기 신공이 대단한 진행 방식입니다. 서로가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커플이 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깨지게 되고, 가정이 파탄 나기도 하는 온갖 부작용이 있는 과학 기술 DNA 매치. 실제로 이런 기술이 생긴다면 유전자를 통해 운명의 상대를 만나고픈 욕구를 잠재울 수 있을까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인간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일까요. 사랑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 여정에서 사랑의 본질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완전한 행복을 위해서라지만 결국 이 일에도 선택과 책임이 동반됩니다. 소설 <더 원>의 다섯 에피소드의 결말 역시 그 책임의 결과물입니다. 놀라운 반전이 이어지는 다섯 에피소드 중에서 유독 끌리는 에피소드가 있을 거예요. 그 지점이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대변하는 느낌이라 나 자신에게 놀라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꿈꾸는 엔딩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를 소망하는 모든 이들이 흥미진진하게 읽을 만한 소설입니다. 제법 두툼한 분량인데도 순삭일 정도로 재미만큼은 정말 탁월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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