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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운하시곡
하지은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3월
평점 :

역사, 무협, SF, 호러를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뷔페 같은 책 소개합니다. 제목에서부터 동양풍 뿜뿜인 단편소설집 <야운하시곡>은 옛날 옛적에~ 하며 시작해도 전혀 어색함 없는 옛이야기를 재해석한 작품 7편이 모였습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작 <얼음나무 숲>으로 2세대 판타지 문학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한 하지은 작가의 단편도 실렸습니다. 표제작이기도 한 <야운하시곡>은 피도 눈물도 없이 강호를 주름잡았던 인물이 아버지가 되면서 부정(父情)을 느끼며 생기는 심리적 변화를 그려냅니다.
처음엔 그릇된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꿈에 부풀었지만 점차 악인이 되어간 사혈공. 그런 악인에게도 지켜야 할 아이가 생깁니다. 악한일지라도 생명의 무게를 비로소 깨닫는데. 폼 잡는 무협 특유의 배짱이 어김없이 등장하면서 무림 고수들의 은원에 대한 마음가짐은 역시나 상상 초월이라는 걸 다시 한번 만끽한 시간이었어요. 강호의 세계는 언제 봐도 얄짤없군요.
호인 작가의 <호식총>은 그 옛날 이불 뒤집어쓰고 봤던 '전설의 고향' 분위기 저리 가라입니다. 제목부터 낯선데 호식총이란 호랑이에게 잡혀먹은 이들의 무덤을 뜻한다고 합니다. 산을 호령하던 호랑이와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귀신인 창귀의 조합이 자아내는 살벌한 오싹함을 느낄 수 있는 단편소설입니다.
조선 시대에 SF 소설이 있었다면? 이재민 작가의 <로부전>은 제목에서부터 딱 느낌이 옵니다. 집현전 말단 학사로 일하는 이약현의 해괴한 잡문을 읽은 임금. 반역으로 몰릴 위기에 처하지만, 그 이야기가 임금님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괘씸하다가도 뒷이야기가 궁금해 죽을 지경인 임금님의 결단이 재밌습니다. 역시나 잘 먹히는 to be continue.
김이삭 작가의 <다시 쓰는 장한가>는 중국 당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백거이의 『장한가』를 재해석한 대체역사물입니다. 요부로 지칭하던 양귀비의 이미지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당나라 현종 전후 때의 역사는 흥미진진함이 끝이 없네요. 현종이 애정 했다는 사자개가 이 작품에서는 놀라운 캐릭터로 등장해 실화인가 싶을 정도입니다.
한켠 작가의 <서왕>은 사형장 근처에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의 성장 이야기입니다. 사형수의 시체 덕분에 굶지 않고 살아가는 동네입니다. 쥐가 들끓는 집도 지긋지긋하고, 죽은 사람 덕에 사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아이에게 왕이라는 드라마틱 한 인생이 펼쳐집니다. 흔히 짐작하는 정치권력의 비정함이 고스란히 담긴 건 물론입니다. 그 과정에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마음속 번뇌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묵직하게 이어집니다. 전작에서 젊은 층의 공감대를 끌어낸 <탐정 전일도 사건집>과는 또다른 색채를 보여줍니다.
제목부터 낭만스러운 서번연 작가의 <찔레와 장미가 헤어지는 계절에>는 옛이야기 단골 소재인 호랑이와 여우 간의 애잔한 사연이 담겼습니다. 하늘의 약초를 훔친 대가로 죽을 날을 받은 지아비를 한 번이라도 만나기 위해 구중의 곤륜을 지키는 문지기 호랑이 앞에 줄기차게 나타나는 천 년 먹은 여우.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는 여우를 두고 호랑이가 쩔쩔매는 모습이 재미있다가도 아련아련한 스토리에 먹먹해집니다.
지언 작가의 <은혜>는 어린 시절 그림책 표지만으로도 오싹하게 만든 '여우누이'를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여우누이 스토리 전 무척 좋아하는데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사실 썩 맘에 들진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은혜>에서는 그 여백을 잘 채워준 느낌입니다.
7인의 젊은 작가들 중 기존에 다른 작품으로 먼저 만났던 작가의 동양풍 소설은 어떤 맛일지 기대하며 읽었어요. 새롭게 알게 된 작가들은 다음 작품들도 기대되고요. 역시 언제나 다채로움을 발산하는 작가들입니다. 뷔페 맛집 브릿G의 우수한 단편소설 컨택은 언제나 성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