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멈춰도 사랑은 남는다 - 삶은 결국 여행으로 향한다
채지형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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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넘게 다닌 여행. 오래도록 잊고 지냈지만 언제든지 소환하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그 순간의 감동을 모은 여행 에세이 <여행이 멈춰도 사랑은 남는다>. 힘들었던 순간도 지나고 보면 새로운 감정이 더해져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덧씌워지듯 이 책에는 따스한 온기만이 맴돌아 읽는 내내 기분좋음 상태를 안겨 주네요.


여행 유전자를 장착한 채 여행의 순간이 하나씩 모여 삶이 된 채지형 여행작가. 찰나의 순간을 글로 남겨온 작가는 이 책을 위해 여행의 흔적을 다시 더듬었습니다. 열어보지 못한 외장하드 속 사진을 꺼내고, 일기장에 붙여놓은 영수증도 훑어보며 새롭게 글을 쓰고, 신문과 잡지에 쓴 글도 모았습니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힌 후, 엎어진 김에 쉬어가는 셈으로 추억 소환했지만 생각보다 더 큰 울림이 있습니다. 지금의 나를 만든 순간순간들의 이야기임을 이제는 깨닫습니다.


수많은 여행지 중에서 여전히 기억이 생생한 곳들은 당시 느꼈던 감정이 깊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낯선 감정일수록, 평소 하지 못했던 생각을 안겨주거나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한 생경한 감정을 받았을 때 그날의 순간은 인생의 피와 살이 된 겁니다.


네팔, 핀란드, 미국, 인도, 스위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낯선 사람을 만났습니다. 눈보라 때문에 계획대로 등반을 하지 못한 히말라야에서는 목표는 방향을 위해 설정할 뿐 큰 의미는 두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노부부를 떠올립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곳에 갔을 때 목표 지점에 가지 못하면 아쉬움이라는 감정에 먹혀버려 그 순간을 망칠 수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스스로에게 맞는 속도를 더 중요시 여긴 그들의 이야기에서 삶의 태도를 배우게 됩니다.


여행길에 스쳐간 이들과의 짧은 관계맺음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으려면 배려와 포용이 있어야 가능하지요. 세상의 다양한 삶을 받아들이고 나누고 돌려주는 것, 여행자의 넉넉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곳에 있지 않으면 절대로 나누지 못했을 만남이 길 곳곳에 숨어 있다." - 책 속에서


여행이 일상이다 보니 공항 부근으로 이사할 정도인 채지형 여행작가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요. 마음이 울적해질 때,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만 할 때, 일단 떠나야 하는 스타일입니다. 여행은 '해결사'인 겁니다. 돌아오면 떠나기 전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모습이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생기발랄한 에너지를 받았고, 여행 그 자체로 충분히 재미있었으니까요.


'기가 막히다', '그림 같은', '숨 막힐 정도의' 수식어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이 아니고서야 형용사와 동사를 그토록 많이 경험해 볼 수는 없었을 거라고 말합니다.


여행작가가 손꼽은 인생 여행지는 어딘지도 궁금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전율을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했다는 나미비아의 이야기는 여행의 참맛을 느끼게 해줍니다. 책을 좋아하는 애서가들이 좋아할 만한, 코사무이의 이름마저 도서관인 라이브러리 호텔의 매력을 들려주기도 합니다.


현실과 사진의 간극을 적나라하게 깨닫기도 하면서 여행의 순간을 냄새로도 기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페인트칠을 해서 하얗게 유지하는 산토리니의 부지런함, 염색공장의 멋진 사진에 이끌려 갔지만 현실은 지독한 염료 냄새에 고통스러웠다는 모로코 페즈. 그런 것들도 모두 인상 깊은 추억이 됩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여행 고수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그 아빠에 그 딸임을 증명하는 추억 소환도 애틋합니다. 여행의 시작은 계획 스크랩으로, 여행의 완성은 컬렉션으로 마무리하는 부녀 이야기를 읽으며 여행이 삶의 중요한 순간을 담당했던 가족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미치게 그리워지는 현지 음식에 대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죠. 음식을 통해 문화를 경험하고 사람을 만납니다. 음식의 맛과 공간이 가진 분위기, 새로운 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평소 일상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여행을 떠나고서야 눈에 띕니다. 여행이 우리 삶에 안겨주는 선물이지요. 무엇이 다른지도 보이고, 우리가 가진 보물이 무엇인지도 깨닫게 된다는 여행 찬가 <여행이 멈춰도 사랑은 남는다>. 여행이 보이진 않아도 사라진 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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