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 스토리지
데이비드 켑 지음, 이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쥬라기 공원」, 「마션」, 「임파서블」, 「패닉 룸」, 「스파이더맨」, 「우주 전쟁」 등 블록버스터 영화의 각본가 데이비드 켑. 어마어마한 대작의 각본에 참여했던 그가 첫 소설을 출간했습니다. 특유의 스펙터클한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흥미진진하게 읽은 <콜드 스토리지 (Cold Storage)>. 파라마운트 픽처스에서 영화화 예정이라는데 볼만한 재난 영화의 탄생이 기대됩니다.


국방부 핵무기국 소속 트리니와 로베르트 그리고 미생물학자 히어로 박사가 함께 호주의 오지 마을로 떠납니다. 핵무기국 소속과 미생물학자의 조합이라니. 무슨 생화학전의 낌새가 있는 걸까요.


바야흐로 1979년, 유인 우주실험실이 떨어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서호주 오지 마을에 일부 잔해가 미발견된 채로 있다가 1987년에 마을 사람에 의해 발견됩니다. 그런데 유인 우주실험실에는 우주 환경에서 치명적인 균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알아보기 위해 보관되어 있었던 상태였고, 오지 마을에 떨어진 잔해 탱크 내부에 바로 그 균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우주에서 다시 되돌아오며 뭔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전자 구조가 바뀐 채 새로운 진균, 신종 코르디셉스가 되었습니다.


<콜드 스토리지>는 잣뽕나무버섯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먼저 보여줍니다. 천천히 움직이는 진균이지만 30~50년이 지나면 평균 크기 나무 한 그루를 죽일 수 있는 진균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진균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우주에서 되돌아온 진균 역시 속도가 경악스러울 정도입니다.


열네 채의 집이 있는 작은 오지 마을. 그곳은 이미 유령이 나올 것만 같은 스산한 분위기입니다. 주민은 보이지 않습니다. 마을 사람이 발견했다는 은빛 탱크 표면에는 이미 곰팡이 흔적이 발견됩니다. 문제는 포자낭이 부풀어 오르더니 탱크 표면에서 떨어져 공중으로 떠오르는 겁니다. 다이내믹한 공격력을 보이는 진균입니다.


거기에다가 빠른 돌연변이 과정을 보여줍니다. 방호복을 단단히 챙겨 입었는데 신발 고무 밑창까지도 파먹어 들어가는 능력을 보입니다. 환경에 맞춰 즉시 진화 과정을 거치는 겁니다. 곰팡이의 유일한 욕구는 더 많은 곰팡이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마을이 전멸된 상태인 만큼 이 진균은 접촉하면 사망으로 이어지는 무서운 균입니다.


좀비 개미와 좀비 매미를 아시나요. 기생 균류가 개미와 매미에 침투해 균을 품은 상태로 이동하게 만들어 포자를 널리 퍼트리는 겁니다. 영화 속 소재가 아니라 실제로 자연에서는 벌어지는 일입니다. 자연엔 이미 많은 좀비 곤충들이 있습니다. 연가시도 비슷합니다. 영화에서는 인간의 뇌를 조종해 물속에 뛰어들도록 유도하는 변종 연가시 이야기로 확장되었는데, <콜드 스토리지>도 그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방호복 안으로 균이 침입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샘플 시료 봉인 작업을 마친 히어로 박사. 다리에 난 아주 살짝 긁힌 상처는 균 입장에서는 활짝 열린 대문과도 같았습니다. 이제 곰팡이는 그녀의 혈류에 들어갑니다.


<콜드 스토리지>의 진균은 진화의 방향이 정말 놀랍습니다. 읽는 내내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거든요. 히어로 박사가 처음 발견한 상태는 포자가 부풀어 오르는 모양새였습니다. 잠깐 상상해 볼까요. 인간에게 들어온 포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해 부풀어 오르고 계속 계속 끝없이 부풀어 오르면. (으...... 아.......)


냉각 보관 용기를 뜻하는 소설 제목 '콜드 스토리지'처럼 전례 없는 치사율을 보여주는 이 균은 일정 온도가 유지되는 군 폐기물 시설에 봉인됩니다. 문제의 오지 마을도 불타 없어졌고, 진균 시료는 안전하게 보관되었으니 이제 이 일은 잊힙니다.


"그런데 지구의 온도가 높아졌다." - 책속에서


군 시설은 3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민간 기업에 넘어가고 그곳은 물품 보관소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경비로 근무하는 티케이크와 나오미가 어느 날부터 계속 울리는 경보음을 확인하기 위해 막혀있던 지하로 내려가게 되고, 그동안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진균과 맞닥뜨립니다.


30년 전 잠재워 둔 치명적인 곰팡이가 깨어난 상황. 물품 보관소 밖으로 퍼져 나오게 된다면 인류 멸망은 눈에 뻔히 보이는 수순입니다. 방호복도 소용없게 만드는 균이잖아요. 지금까지 본 바이러스 재난보다 훨씬 무섭네요. 고무를 만나면 그에 맞춰 화학반응을 일으켜 침투하고, 섬유를 만나면 그에 맞춰 반응하는 식이니 뚫리지 않는 게 없습니다. 거기다가 더 소름 끼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인간의 행동 습성에 맞춰 포자를 퍼트리는 쪽으로 진화하는 겁니다.


지각력도 없고 자의식도 없게 만들지만 확고한 목적이 있는 신종 진균. <콜드 스토리지>는 실제 존재하는 기생균류 오피오코디셉스를 바탕으로 인류에게 치명적인 재난으로 닥칠 변종을 선보입니다. 각본가답게 묘사가 예술입니다. 너무나도 눈에 선명히 그려져 공포감이 제대로예요. 얼마나 생생한 묘사가 많은지 '오 마이 갓!'이 자연스럽게 연발될 정도입니다. 그동안 재난 영화계를 주름 잡았던 바이러스 대신 이젠 화학 성분을 합성하는 미친 곰팡이를 만날 차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