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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고향옥 옮김 / 온다 / 2020년 12월
평점 :
우리 아이 초등학생 때 만났던 그림책 <이게 정말 사과일까?>는 흔하디흔한 일상의 사물을 놓고 폭발적인 상상력을 펼쳐 보여 충격적일 정도로 인상 깊었던 책입니다. <벗지 말걸 그랬어>로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하며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림책 작가로 명실공히 이름을 날리고 있는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 그의 생각노트를 엿볼 수 있는 책 <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에서 놀라운 상상력의 원천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냥, 무심코 떠오른 생각들이랍니다."
평소 늘 스케줄 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수시로 떠오른 생각'을 내키는 대로 그린다는 요시타케 신스케. 메모만 따로 보관해뒀다가 나중에 살펴보다 보면 그게 그림책의 아이디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은 시시콜콜한 궁금증으로 가득합니다. 읽는 저는 하나도 안 궁금했던 게 태반입니다. 간단한 일러스트와 짤막한 해설을 보면 자연스럽게 이 작가 참 남다르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만큼 일상의 잡념을 흘려보내지 않았다는 의미겠지요.
기름종이처럼 걱정을 흡수하는 종이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재미있습니다. 목욕하면 몸이 개운해지듯 불쾌함 같은 건 외부에 달라붙는 성질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겁니다. 걱정거리, 불만도 몸 외피에 달라붙을 것 같단 생각을 한 거죠.
작가가 요즘 마음에 쏙 드는 말은 저도 마음에 쏙 듭니다. "내일 할 거야, 왕창 할 거야." 하지만 오늘은 그만 잘 거라며 스스로에게 응석 부릴 때 참 편리한 말입니다. '내일 할 거야'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왕창 할 거야'가 포인트입니다. 나를 좀 더 편안하게 해주는 키워드이거든요.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103/pimg_7960121632787558.jpg)
엉뚱하게 재미있다고 생각드는 일러스트가 많습니다. "일곱 시는 양말 같다."는 생각해 보셨나요. 이것도 뒷말이 포인트입니다. 그 생각 한 자신을 셀프 칭찬하더라고요.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귀여운걸'이라니. 오골오골 거리는 말도 스스럼없이 뱉을 줄 아는 작가입니다.
그가 그려둔 건 그려두지 않으면 잊어버릴 것들입니다. 소소한 발견의 즐거움을 그는 스케치로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겐 일일이 기억할 가치가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별것 아닌 것에서 실은 '그 사람다움', '인간다움'이 배어 나오는 게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그 편린을 모아두면 뭔가 보이는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사는 요시타케 신스케입니다.
<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에는 일상에서 관찰할 수 있는 소소한 것들, 아이를 키우면서 깨달은 것들, 일상에서 겪는 감정에 관한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매사에 걱정이 많아 사소한 일에 의기소침해진다는 그는 대신 사소한 일에 그만큼 또 위로도 잘 받는다고 합니다. 스케치하면서 자신을 격려하다 보면 가라앉은 기분이 돌아온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스케치는 정신 건강상 필요한 재활 훈련과도 같다고 합니다.
사실 그의 그림책을 보다 보면 이 작가는 매일이 즐겁고 신나는 생각만 하는 사람 같단 생각이 들 정도인데, 실은 더 치열하게 즐겁고 재미난 생각을 계속하려고 노력하는 작가였어요.
일에 대한 요시타케 신스케의 이야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없는 채로 하는 것이 일"이라고 정의 내린 그는 할 수 없는 일이 점점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야말로 뭔가를 할 수 있게 됐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그만큼 다른 어떤 것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와도 같다고 말이죠. 채색 작업은 질색이라는 그는 그래서 채색만큼은 남에게 맡긴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가지고 있는 것을 연마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을 어떤 형태로든 기록하며 남긴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한 <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 요시타케 신스케처럼 스케치파가 있는가 하면, 사진으로 남기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어쨌든 재밌는 게 세상에 많다는 게 보이기 시작한다면 그걸로 된 겁니다. 잡념이 상상력의 원천이 되는 걸 시시콜콜하게 보여준 요시타케 신스케의 생각노트처럼 여러분의 잡념도 기록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