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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의 아르바이트
미켈레 디냐치오 지음, 세르조 오리보티 그림, 이현경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20년 12월
평점 :
얼마 전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이런 말을 했었죠. "산타는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있기 때문이죠."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의 상징인 산타클로스가 코로나 사태로 선물 배달에 차질이 생길까 봐 전전긍긍하는 아이들이 많았을 겁니다. 하지만 산타클로스는 언제나 크리스마스날 찾아옵니다.(부모들은 이번에도 자가격리 따위 없는 산타클로스 덕분에 선물을 준비해야만 했고...)
그런데 이런 장면 상상해본 적 있나요? 드론 택배 기술의 상용화 이야기가 들리는 시점에 산타클로스도 혹시 드론으로 집집마다 선물을 배달하지는 않을까? 그러면 산타클로스는 좀 편해지겠네 싶었는데... 이탈리아 동화책 <산타클로스의 아르바이트>에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면을 보여줍니다.
국제적인 경제 위기는 산타클로스에게도 닥칩니다. '국제 산타 우체국'에서 더 이상 새로운 산타를 뽑지 않더니 결국 산타에게 정리해고 통지서를 보냈어요. 대신 선물은 드론으로 처리해 버리는 거죠. 아이고, 이를 어쩌나.
게다가 산타는 1월부터 11월까지는 할 일 없이 쉬는 편한 존재인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었어요. 어린이들이 보낸 손 편지를 다 읽는 데만도 시간을 꽤 써야 하거든요. 사슴은 두 마리만 가지고 있는데도 당근값에, 사슴 목욕비, 사슴 발굽 관리비, 썰매 보험비, 썰매 세금 등등 돈 나갈 곳도 어찌나 많은지요.
그런데 산타의 실직이라니. 아르바이트라도 구해야 할 신세가 되었습니다. 산타의 상징인 수염을 자르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아 나섭니다. 하지만 구직에 줄줄이 실패합니다. 결국 수염을 잘라야 하나 마지막 기로에 선 시점, 환경미화원 일자리를 얻게 되는데.
선물 보따리 대신 쓰레기봉투를 짊어지지만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일이고 산타가 잘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보람차게 일합니다.
한편 '국제 산타 우체국'은 손편지 대신 모든 것을 디지털화합니다. 허무맹랑하거나 실현 불가능한 편지들은 모두 파쇄기 속으로 들어가 버리지만 미처 처리하지 못한 것들은 이참에 주인에게 되돌려보내기로 했습니다. 네 살 때부터 산타에게 편지를 보냈던 노부인 비체에게도 편지가 모두 되돌아왔습니다. 이런 무책임하고 배려 없는 우체국이라니!
그런데 비체는 어떤 내용을 썼길래 선물 대신 파쇄기로 들어가야 할 편지로 분류되어 있었던 걸까요. 실망한 비체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릿해집니다. 비체의 편지야말로 이 스토리의 숨은 보물인데 어떻게 풀어나갈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어요.
<산타클로스의 아르바이트>에서는 산타 외에도 1월 6일 주현절 전날 밤 빗자루를 타고 와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할머니인 '베파나'도 등장합니다. 베파나는 이탈리아 특유의 풍속절에 등장하는 주인공이어서 이탈리아 동화책에 이렇게 산타와 함께 등장하네요.
디지털 미디어 시대가 산타에게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스토리가 진짜 있을법한 이야기처럼 느껴졌어요. 코로나19로 산타가 올지 안 올지 걱정했는데, 산타라고 해서 실직이 안 될 이유도 없고 손편지 대신 태블릿으로 선물 리스트를 보내는 세상.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현대에는 이렇게 변화할 수 있구나 싶어 재미있었습니다.
따스한 온기를 기대하는 크리스마스 본연의 이미지가 현대 기술에 치여 사라진다면 얼마나 삭막해질까요. <산타클로스의 아르바이트>는 그런 걱정을 해결해 주고 있어요. 글밥은 조금 있는 초등학생 저학년이 읽기 딱 좋은 동화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