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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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의 미끼 상품인 싸구려 패키지 여행에 모인 스무 명. 암 선고를 받고 살 날이 얼마 되지 않은 중년 여성, 어려운 형편에 간신히 신혼여행을 가는 젊은 부부... 등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그중에 아버지와 아들이 있습니다. 싸구려 패키지 여행이지만 전혀 설렘 없는 표정으로 서늘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버스에 오른 아버지. 어떤 사연인지 궁금하게 합니다.


한국 대표 스릴러 작가로 자리매김한 정해연 작가의 신작 <패키지>. 전작 <악의-죽은 자의 일기>,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드라마화 예정)>, <지금 죽으러 갑니다>를 통해 제게도 낯설지 않은 작가의 새 작품이어서 이번에도 기대 가득 안고 읽게 되었어요.


휴게소에서 점심 식사 후 다시 모이기로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아버지와 아들. 행방이 묘연합니다. 여행사 담당자는 버스만 먼저 보내고 남아서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사건은 다음 목적지에서 정차한 버스에서 발생합니다.


짐칸에 있는 짐을 찾다 발견한 토막 시체. 피해자는 사라진 아들입니다. 언제 어디서 살해당해 이렇게 버려진 걸까요. 시신을 유기한 것은 행방을 알 수 없는 아버지일까요. 게다가 그토록 끔찍하고 잔인하게 훼손했음에도 은밀하게 처리하지 않고 발견되기 쉬운 짐칸에 뒀을까요. 무엇보다 애초에 사람들의 뇌리에 인상 남게끔 얼굴을 드러내었던 걸까요. 밝혀진 건 피해자가 아들이라는 것뿐 그 외의 모든 것이 의문입니다.


살해된 아이는 지속적인 학대를 받아왔음이 밝혀집니다. 어떤 가족사이길래 잔인하게 살해할 만큼 이 상황에 이른 걸까요. 아이에겐 형도 있었는데 다행히 형은 멀쩡한 상태로 할머니 댁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무차별 학대를 받아온 건 살해된 둘째 아이만이었습니다.


아동 학대와 관련한 사건이다 보니 형사는 살해된 아이의 엄마에게 신경이 자꾸 쓰입니다. 아이의 엄마는 남편의 폭력에 집을 뛰어나가 외국에서 살고 있는 상태였다가 변고를 듣고 급히 돌아왔습니다. 남편이 폭력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들을 버리듯 남겨두고 도망간 죄책감에 처절한 울부짖음이 눈에 선합니다.


담당 형사는 이 사건에서 자신의 가족사를 떠올립니다. 아들이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된 영향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일 같지가 않은 거예요. 형사의 가족사에서 아이를 학대한 가해자는 아내였습니다. 극심한 우울증에 빠진 아내는 그 분노를 아이에게로 쏟아냈고, 아이는 결국 망가졌습니다.


형사는 모정이란 뭘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결국 아이를 두고 떠났던 살해된 아이의 엄마와 육아에 적합하지 않았던 자신의 아내는 모정이 없었던 걸까요. 그럼에도 죄책감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죄책감은 스스로도 깨닫지 못했던 모정에서 기인하는 걸까요.


끊임없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아동학대. 가해자 중 약 80퍼센트가 가정의 부모입니다. 쇠사슬 학대 사건, 여행용 트렁크 감금 사건, 영아 학대 사건 등 인간으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신체적, 정서적 폭력 같은 학대는 원만하지 못한 부부 관계, 원치 않았던 자녀 출산 등 가정 폭력과도 연관이 깊습니다. 그리고 주기적이고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되기에 학대는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칩니다. 화목한 가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코로나19로 가정 학습이 길어진 만큼 학대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정해연 작가의 <패키지>는 아동 학대에 이르기까지의 비밀을 엿보게 해줍니다. 표면적인 가해자는 직접적인 행동을 한 당사자가 되겠지만, 그 상황은 한 사람의 잘못만으로만 이뤄지지는 않았습니다. 사고가 발생하자 패키지 여행에 참가한 여행자들은 번거로운 일에 걸렸다는 듯 귀찮아하는 표정을 지었고, 학대 아동의 담임 선생님은 아이의 상태를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부부의 문제 역시 한 쪽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되기까지 차곡차곡 불안이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패키지>는 쉬쉬하며 덮어두느라 심각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되는 아동학대에 대한 소재를 두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줍니다. 가슴 묵직해지는 소재이지만 속도감은 있는 편이라 무겁게 끌고 가는 분위기는 덜어지는 느낌입니다. 살인을 저지른 비정한 아버지에게는 숨겨진 반전도 있으니 경악스러운 감정은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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