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뜨기에 관하여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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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판타지 소설의 거장 이영도 작가의 SF 소설을 만나는 시간. 2000년~2012년 발표된 10편의 단편 모음집입니다. 저는 SF 판타지 장르에서도 하드 SF 취향이라 이번 단편집 <별뜨기에 관하여>는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단편 모음집을 볼 때면 맨 처음 등장하는 이야기와 표제작,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에 특히 기대를 많이 걸고 읽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 책에선 한 편 한 편 모두 소중했어요. 결말이 이해 안 되는 불친절한 이야기도 두어 편 있지만, 전반적으로 다양한 소재와 색다른 상상력이 어우러진 스토리가 흥미진진합니다.


<카이와판돔의 번역에 관하여>, <구세주가 된 로봇에 대하여>, <별뜨기에 관하여>, <복수의 어머니에 관하여> 네 편은 외계인 종족 위탄인 시리즈로 묶을 수 있어요. SF와 스페이스 오페라의 결합이어서 우주 SF 소재를 좋아한다면 놓칠 수 없습니다.


9년 전 나타나 지구와 문화 교류를 하는 외계 종족. 위탄이라는 문화권과 동화를 교환합니다. 위탄의 동화를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해야 하는데. <카이와판돔의 번역에 관하여>는 도대체 짐작하기 힘든 카이와판돔의 의미를 찾아내는 번역자의 고군분투기입니다. 외계인의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필요한 건 은하표준어 사전. 하지만 그 사전에도 나와있지 않는 단어다 보니 새삼 골치가 아픕니다.


뜻을 파악할 수 없는 제목에 담긴 비밀 속에는 이영도 작가 특유의 유머와 해학이 담겨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실없어 보이기도 할 테지만 저는 꽤나 유머 코드가 잘 맞아떨어져 은근 그런 장면을 기대하며 읽게 되기도 합니다.





지구인 점성학자와 위탄인이 몇천 광년이 떨어진 장소에서 별자리를 찾아 나서는 <별뜨기에 관하여>는 시간 지연 효과와 점성학이라는 소재가 맞물려 흥미롭습니다. 별의 계시를 바라는 종족이 원하는 별자리를 찾아내는 과제를 수행하면서 천구에 별들이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는 우주 좌표를 찾아내는 여정이 놀라웠어요.


아름답고 심오한 이야기들과 더불어 스릴러 만점인 스토리도 있습니다. "오늘 선장은 우주선으로 나를 때려죽였다."라는 기이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복수의 어머니에 관하여>는 인간 복제를 소재로 삼아 풀어냅니다.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상상력은 놀라워요. 인류에겐 행성으로 사람을 타격하는 격투술을 가졌다는데, 뭔 소리인가 싶었어요. 예를 들어 유도는 유도가의 힘이 아닌 지구 중력을 이용하기에 사실 유도는 무기가 지구라고. 그러면 첫 문장에서부터 무슨 소리인가 싶었던 선장의 우주선 살법이 자연히 이해됩니다. 우주선엔 중력이 없지만 가속도가 중력을 대신하니까요. 반전까지 있는 스토리라 꽤 인상적인 작품으로 남았습니다.


순간이동에 대한 개념을 틀어버린 <순간이동의 의미에 관하여>, 눈 속을 헤엄치는 육식 괴물 설어와 인류 멸종에 관한 <나를 보는 눈>, 강력한 소름을 제대로 선사한 <아름다운 전통>, 블랙 유머가 빛을 발한 <전사의 후예>, 고상한 표기처럼 보였지만 엉뚱한 데서 웃음 포인트를 선사한 SINBIROUN 나라의 수도 Sinkihan에서 벌어지는 유명한 상인의 죽음을 예고한 마법사 이야기 <SINBIROUN 이야기>, 그리고 "이런 감성 처음이야!"를 외치게 만든 <봄이 왔다>까지 임팩트 있는 단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새롭게 선보이는 새로운 이야기라기보다는 흩어져있던 단편을 한데 모은 셈이지만, 책 물성 자체로 소장하고픈 팬들을 위해 예쁘게 만들어진 책입니다. 


스토리 속에 담긴 은은한 메시지를 발견하는 기쁨이 있는 <별뜨기에 관하여>. 위탄인이 등장하는 세계관은 장편으로 확장해도 좋을 만큼 두근거리네요. (각 행성을 교류를 연결하는 범은하 문화교류촉진위원회의 정체가 무척 궁금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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