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의 궤적
리베카 로언호스 지음, 황소연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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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판타지 소설의 추세는 아프로퓨처리즘 전성시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N. K. 제미신의 부서진 대지 시리즈, 은네디 오코라포르의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등의 소설처럼 흑인 중심 세계관은 아프리카 문화에 대한 새로운 감상을 낳게 합니다.


거기에 더해 이번엔 우리가 인디언이라 부르는, 아메리카 원주민 창조 신화를 바탕으로 한 리베카 로언호스의 <천둥의 궤적>이 눈길을 끕니다. 한때 북유럽 신화를 소재로 한 문화 콘텐츠가 붐이었던 시기도 있었던 만큼 이제는 다양한 토착민 문화가 주목받는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어머니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백인 가정에 입양되어 성장해 현직 변호사로 활동 중인 리베카 로언호스 작가. 남다른 가정사를 가진 만큼 데뷔작부터 독특한 세계관을 선보입니다. 자신의 뿌리이자 제2의 고향 '나바호 자치국' (인디언 중 가장 인구가 많은 북아메리카 인디언 종족)의 신화를 바탕으로 삼은 소설 <천둥의 궤적>.


나바호족 창조 신화는 영적 세계인 첫 번째 세상부터 현세 다섯 번째 세상에 이르기까지 신들이 겪는 유랑과 정착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네 번째 세상에서 '보통의 인간'을 만들어 냈고 이들이 나바호족의 기원입니다. 소설 <천둥의 궤적>은 기후 변화로 인한 대홍수와 에너지 전쟁으로 다섯 번째 세상이 멸망하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 시대, 즉 여섯 번째 세상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 시대는 다시 전설 속의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신과 영웅, 괴물 그리고 멸망에서 살아남은 보통의 인간이 혼재된 세상입니다.


괴물에게 잡혀간 아이를 구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매기 호스키. 신성한 재능이라 불리는 클랜 파워를 가졌습니다. 인간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살아있는 화살입니다. 한마디로 재능 충만한 킬러인 셈입니다. 어린 시절 가족의 죽음을 목격하고 자신도 죽을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처음 발동된 클랜 파워입니다.


가족의 죽음으로 트라우마를 가진 매기는 전설적인 괴물 사냥꾼이자 불사신인 네이즈가니에게 거둬져 이후 함께 괴물을 처리하고 다녔지만, 매기의 클랜 파워는 때때로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갑니다.


"나는 괴물 사냥꾼이 될 수도 있고 괴물이 될 수도 있었다." - 천둥의 궤적 


사냥하는 괴물에 대해 극도로 무감한 매기는 기막히게 잘 죽이는 능력이 되려 스스로가 괴물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 이르게 합니다. 네이즈가니도 결국 떠났습니다. 버려졌다는 좌절감에 허우적대며 한편으론 네이즈가니를 그리워합니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 사냥한 괴물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면모를 보입니다. 태어난 게 아니라 만들어진 괴물인 겁니다. 괴물을 창조할 만큼 강력한 능력을 가진 이는 누구일지, 미지의 인물을 찾으며 괴물의 비밀을 파헤치는 여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천둥의 궤적>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할 만큼 캐릭터의 성격이 다채롭습니다. 이 모호함은 사실 이 소설이 앞으로도 계속 시리즈로 나올만한 책이라는 데서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더 깊은 사연이 나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장면들이 몇몇 있었어요. <천둥의 궤적>은 괴물 사냥꾼 매기 호스키의 활약을 그린 '여섯 번째 세상'의 첫 번째 작품에 해당한다는 걸 알게 되고서야 조금 애매하게 끝낸 장면들이 납득되더라고요.


치유술사이자 비밀스러운 클랜 파워를 가진 카이, 적과 친구를 오가며 변신술에 능한 코요테 마이, 갑자기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네이즈가니의 이야기 등 매기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궁금증은 책장을 덮고서도 계속 이어집니다.


문체가 묵직한 스타일은 아니어서 무거운 느낌 싫어한다면 이 소설 잘 맞을 수 있어요. 영어덜트 소설 느낌도 나는 편이고, 히어로물과 궁합이 잘 맞는 클랜 파워 개념도 흥미진진합니다. 클랜 파워를 저주로 여겨온 매기가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기대됩니다.


나바호족에 관한 이야기는 전쟁 영화 《윈드토커》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바호족의 언어를 이용해 코드토커라는 이름의 암호통신병으로 육성된 나바호족은 6·25 전쟁에도 참전해 우리나라와의 인연도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인기 많은 나바호족의 수공예품인 양탄자는 소설 속에서도 괴물 사냥의 대가를 치르기 위한 귀한 물건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천둥의 궤적>을 읽으며 나바호족의 언어, 문화가 어우러져 낯설고 생경한 인디언 역사와 문화를 알게 된 점도 뜻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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