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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활동
이시우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9월
평점 :
이 수위 괜찮은가 싶을 정도로 미친듯한 스릴감을 안기는 소설을 만났습니다.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액션 묘사도 일품이네요. 전작 <이계리 판타지아>에서는 코지 미스터리와 판타지 공포가 적절히 배합된 한국형 공포를 맛보며 신선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번 작품은 속도감까지도 좋아서 시간이 후딱 가버린 기분이었어요.
"네가 죽인 거야?" 전교 1등 김세연이 뒤에서 1등인 '나'에게 한 첫 마디입니다.
천재라고 알려진 김세연과 사고만 치고 다니는 이영의 공통점이라고는 학교의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등굣길에서 맞닥뜨린 담벼락 밑 시체의 목격자가 된 김세연과 이영.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어서 대화할 일 없던 그들은 이렇게 얽힙니다.
이영은 최초 목격자임에도 이 사건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신고도 김세연에게 하라고 넘겼지요. 하지만 겨우 몇 시간 만에 시체와 함께 있던 장면이 찍힌 CCTV 사진이 떡하니 공개되고, 과거 행적이 낱낱이 오픈되어버립니다. 부모 죽인 패륜아라는 오명을 쓴 채 힘든 시간을 보내온 이영. 이번에도 탈탈 털립니다.
도대체 CCTV 사진이 어떻게 공개된 걸까요. 무슨 의도로 자신을 마녀사냥하듯 잡으려는 건지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이영은 CCTV 관리자라는 사람과 통화를 하면서 뭔가 수상하다는 걸 느낍니다. 결국 직접 만나게 되지만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뻔하는 위기에 처하고...
이미 중학생 때 세계 해커 대회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김세연은 CCTV와 그들의 서버까지 해킹하면서 위기에 처한 이영을 도와주지만, 잡힐 놈은 결국 잡힌다는 진리는 이영에게도 해당되나 봅니다. 의문의 집단으로부터 쫓기며 몇 번의 위기가 계속 이어지는데 영화 골든슬럼버의 긴박감 넘치는 추격신을 연상케 하는 듯한 비주얼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그들은 '선생'이라 부르는 사람이 자신들의 행동을 모르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명 '동호회' 회원들이고, 살인을 일삼는 동호회입니다. 정규 교과목 학습 이외의 동아리, 자치회, 연구회 등을 일컫는 과외활동. 소설 <과외활동>에서는 어른들의 부도덕한 과외활동이라고 보면 될까요. 김세연과 이영이 어른들의 위악과 마주하며 상대하는 행동들도 과외활동에 해당될 수 있겠어요.
서로를 회원님이라 부르며 처음에는 약점을 잡혀 마지못해 시키는 일만 하다가 결국 쾌락 살인에 점점 빠져들게 되는 의문의 동호회. 별의별 인간들이 다 모여있습니다. 사장, 회사원, 의사, 경찰... 그런데 거리낌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극악무도한 그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선생'의 정체는 더 궁금해집니다.
디지털 포렌식이 전면에서 활용되어 수많은 CCTV를 통해 상황을 조망하는 해커 김세연의 역할은 무척 매력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김세연은 머리를 쓰는 역이라면, 몸을 쓰는 사람은 이영입니다. 정말 제대로 굴려진 캐릭터입니다. 삼촌의 오토바이를 타고 그 복잡한 서울 도심을 시속 140 킬로로 달린다고 상상하면 말 다 했네요. 수만 가지 위반을 다 하면서 달리는 여정을 함께 하다 보면 절로 손에 땀이 납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은 고등학생인데 살인을 저지르는 동호회 회원들의 태도는 미성년자라고 해서 절대 봐주는 법이 없습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아찔한 공포 스릴러의 맛을 보여줍니다.
분명 글을 읽는데도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다이내믹한 묘사가 탁월한 소설 <과외활동>. 이시우 작가의 글은 <단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에 실린 단편 소설 '이화령'으로 처음 만났었는데 아찔한 스릴감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납니다. 공포물 작가구나 싶었더니 장편 소설 <이계리 판타지아>를 통해 한국형 판타지의 새로운 신세계를 보여줬고, 이번엔 청춘 액션 현대물까지. 다양하게 잘 소화시키는 작가입니다.
재밌는 건 전작과 이번 신작에서 활이라는 아이템이 등장하는데 이시우 작가만의 메타포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다음 작품에 활과 관련한 아이템이 등장 안 하면 은근 서운해질지도 모르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