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않아 이별입니다
나가쓰키 아마네 지음, 이선희 옮김 / 해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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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디렉터라는 직업이 나오는 소설은 처음 읽은 것 같아요. 관광객이 몰려드는 도쿄 도심에 자리 잡은 장례식장 반도회관을 배경으로 그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머지않아 이별입니다>. 무거운 배경이지만 읽는 내내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드라마를 펼쳐 보이고 있어요.


남편의 병이 악화되고 나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나가쓰키 아마네 작가. 남편이 잠든 시간을 이용해 조금씩 글을 썼는데, 그것이 앞이 보이지 않는 생활에 유일한 버팀목이 되었다고 합니다. 작가의 이름마저도 남편의 기일과 마음을 담은 특별한 필명입니다.


이 소설은 제19회 소학관문고 소설상을 받으며 작가의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되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 남편을 떠나보내며 경험한 내밀한 감정이 <머지않아 이별입니다>에 담겨있어요. 사랑하는 이를 남겨두고 떠난 사람, 남은 사람의 상실감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격하지 않게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세상의 소란스러움에서 격리된, 엄숙한 의식을 치르는 장소. 즉, 비일상적인 세계다." - 머지않아 이별입니다 


한창 취업 준비하느라 고군분투하는 시미즈 미소라. 원하는 일에 계속 낙방하다 보니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아르바이트했던 장례식장을 다시 나가며 잠시 머리를 식히기로 합니다. 그곳에서 장례 디렉터 우루시바라와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해 주는 스님 사토미를 만납니다. 이들은 미소라에게 어떤 능력이 있다는 걸 눈치채는데...


미소라는 평소 영감이 있는 사람입니다. 기에 민감해 영을 볼 수 있고 느낍니다. 이런 이야기를 남들에게 하면 무서워해서 숨기고 있습니다. 미소라에게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날 사고로 죽은 언니가 있는데 언니의 영이 자신의 곁에 있다는 걸 느낍니다. 언니의 영을 제대로 본 적은 없고, 가끔 꿈에 나타나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런 민감도는 다른 영을 볼 때는 잘 발휘되는 편입니다.


영을 볼 수 있고 느끼는 사람이 장례식장에서 일을 한다니. 적성에 맞는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남겨진 자들의 슬픔이 민감하게 몰려와 기운이 짓눌려 컨디션이 무너지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그것 외에는 둔감한 편이라 상차림하는 홀 아르바이트를 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는 상태입니다.


"죽음은 결국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의 문제니까요. 죽음을 어떻게 인정하느냐, 어떻게 포기하느냐. 유족이 마음속으로 매듭을 지으면 대부분 죽은 사람도 받아들이는 법입니다." - 머지않아 이별입니다. 




미소라의 재능을 알아챈 장례 디렉터와 스님은 미소라와 함께 곤혹스러운 일들을 함께 헤쳐나갑니다. 비명횡사한 사람, 스스로 삶을 마감한 사람,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눈을 감은 사람 등 죽은 이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강한 미련을 가졌거나, 자신이 죽은 줄 모르는 영도 있습니다.


장례 디렉터 우루시바라는 죽은 이를 잘 보내드리고, 남은 이들은 슬픔이 치유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마음을 써주는 것에 확실한 재능을 보이는 사람입니다. 미소라처럼 영을 볼 수 있는 능력은 없는 대신 날카로운 관찰안이 있습니다. 뭔가 사정이 있어 보이는 장례식이라면 우루시바라가 맡을 만큼 능력 있는 장례 디렉터입니다.


영을 볼 수 있는 미소라와 사토미 스님, 능력자 우루시바라 셋이서 호흡을 맞추며 장례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에피소드가 펼쳐집니다. 죽고 나서야 병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진 어린아이의 영을 보여주는 장면은 특히 애틋했어요. 부모는 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삶의 목적을 잃은 상태고,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이 죽었다는 걸 모르고 있습니다. 부모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으려 하는 아이의 영과 아이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부모 모두의 마음을 어루만져 줘야 하는 난관. 어떻게 해야 이별을 준비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청춘의 이야기 속에는 장례식장에서 일하려는 딸이 걱정스러운 부모님의 마음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이 경험해도 슬픔에 익숙해지는 일은 없다는 걸 미소라도 잘 알고 있습니다. 타인의 슬픔을 아무런 감정 없이 바라보면 안 되는 것이기에 오히려 자신의 재능이 괴롭지 않습니다. 보람을 느끼며 할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는 미소라입니다.


미소라, 우루시바라, 사토미 세 사람과 함께 하는 장례식은 떠나는 이와 남겨진 이 모두가 마음의 보살핌을 받는 따뜻한 장례식이 됩니다. 슬픔의 매듭을 잘 지을 수 있는 이별을 준비할 수 있도록, 남은 이들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생 드라마 <머지않아 이별입니다>. 눈물 나게 하는 소설이지만 비통한 슬픔이 아닌 따스한 배려를 받는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멋진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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