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고 아리고 여려서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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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또 다시 같은 꿈을 꾸었어> 등을 쓴 스미노 요루 작가가 인생 소설 제대로 터뜨렸네요. 제목부터 몽글몽글 여운 가득합니다. 순수하고도 찬란한 이상을 꿈꾸는 청춘이 현실을 살아내면서 겪는 이야기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


이번 소설도 영화로 만들어진대요. 현재 일본에서 핫한 20대 배우 요시자와 료, <행복목욕탕>으로 주목받은 스기사키 하나가 캐스팅되어 2020년 여름 개봉 예정이라고 합니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삶을 살려고 애쓰는 다바타 가에데. 그러려면 인간관계에 깊게 개입하면 안 됩니다. 이런저런 말과 행동을 하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드는 기회조차 줄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 철칙을 흔드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보는 사람의 손발이 오글거릴 만큼 이상론을 펼치는 아키요시입니다. 수업 시간에 뜬금없는 질문을 빙자로 자기주장을 펼치는 아키요시. 관종이라 불리며 다들 꺼려 하는 요주의 인물로 등극합니다. 그런데 하필 아키요시의 관심을 받게 된 가에데 다바타. 뚜둔!


먼저 다가오는 사람을 차마 내치지도 못하는 다바타는 결국 함께 점심을 같이 먹는 사이가 되면서 아키요시의 생각을 하나씩 알게 됩니다.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어도 받아주는 곳 없어 방황하는 아키요시는 다바타와 직접 동아리를 만들기로 합니다. 이름하여 '모아이'. 별다른 뜻도 없습니다. 그날 입은 티셔츠에 그려진 모아이를 보고 즉흥적으로 붙인 이름입니다.


결코 관여해서는 안 될 존재라며 피하려고 했던 다바타와 함께 자신의 이상을 펼치고픈 아키요시. 대학 4년 동안에 내가 원하는 나 자신을 만든다라는 신념으로 소박하게나마 자기만의 규칙을 만드는 것부터 정해나갑니다.


다바타는 지금껏처럼 가능하면 남에게 지나치게 다가가지 않고, 누군가의 의견을 정면으로 부정하지 않는 자세를 고수합니다. 타인으로부터의 영향을 줄이고 타인에게 주는 영향 또한 줄이려고 하는 다바타는 모아이 활동도 적당히 거리를 둔 채 활동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졸업반이 된 다바타. 취업 내정된 상태입니다. 파김치가 될 정도로 에너지를 소진해서일까요. 이력서에 쓴 거짓말들을 보며 자괴감에 빠진 채 대학 생활을 되돌아봅니다. 그리고 순수한 이상만을 품고 있었던 친구 아키요시를 떠올립니다. 이미 이 세계에 없는 아키요시를요.


"괜찮다. 나 자신이 아닌 것을 밀어붙이면서 사는 것도. 잘못된 짓이 아니다. 잘못됐을 리가 없다. 잘못된 짓이, 아니다. 아마도, 아닐 것이다." -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 中 


아키요시와 함께 만들었던 모아이. 다바타는 일찌감치 그곳을 나왔습니다. 처음엔 순수했지만 이제는 민폐나 끼치고 다니는 모아이입니다. 처음에 지향했던 것들은 사라진 모임입니다. 이제는 학교 안에서 득세하는 거대 단체로 존속합니다. 도대체 어쩌다가 변질되었을까요.


이상이 아니라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변모한 모아이를 보면서도 다바타는 그동안 관계없는 곳이라며 피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생활 마지막에 이르러서 현재의 모아이를 무너뜨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취업 활동을 하면서 모아이의 정체를 또다시 엿본 겁니다. 취업용 인맥 쌓기로 변질되어 이해득실로 사람을 사귀는 무리들일 뿐이었습니다.


'히어로'라고 불리는 현재의 리더를 추종하는 모아이를 해체시키려고 평소 모아이를 싫어하던 친구와 이런저런 작전을 세워봅니다. 개인이 대규모 조직과 어떻게 싸울 수 있을까요.


변해버린 모아이는 우리들 개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취업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순수하고 찬란한 이상을 꿈꾸던 나의 모습은 현실을 하루하루 살아내면서 어디론가 흩어져 버립니다.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사회의 세상으로 내던져지는 건 순식간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뭔가를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은 차츰 깨지고 깨져 그 언젠가 꿈꿨던 것들은 기억 속에서조차 가물거립니다.


어리고, 아리고, 여렸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보여준 스미노 요루 작가. 여물지 않은 상태의 그 순수함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합니다. 20대 청춘이 읽으면 또래 이야기여서 더 공감하며 읽을 테지만, 이미 세상물 진하게 먹은 사회인들이 읽어도 좋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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