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괜찮아요, 천국이 말했다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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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삶의 소중함을 일깨운 사제 간의 실제 대화를 바탕으로 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미치 앨봄은 이번에도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사후세계를 다룬 소설로 말이죠. 그런데 사후세계를 이토록 종교적이지 않으면서 충만한 감동으로 선사하다니, 사후세계에 무심한 저도 전혀 거부감 없이 읽었어요.


"죽음까지 열네 시간을 남겨두고 애니는 혼인 서약을 했다." 불치병으로 죽음을 앞둔 이가 혼인 서약을 하는 건가 싶었지만, 소설의 주인공 애니는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다음날 슬픈 사고를 당해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입니다.


애니는 어린 시절 놀이공원에서 큰 사고를 당하고 접합 수술을 받은 후 힘든 시절을 보냈습니다. 사고와 관련한 기억을 잃을 정도로 트라우마가 큽니다. 이후 엄마의 지나친 간섭과 학교에서의 왕따, 첫사랑의 실패 등 모든 상황이 애니를 삐뚤어지게 만듭니다. 간호사 생활을 하며 어린 시절 간절히 원했던 것들을 이뤄나가며 소소한 행복의 일상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 애니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 죽음이 찾아오는데.​


결혼식장에서 이미 오래전 죽은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처럼 죽는 순간이 가까워지면서 천국과 지상이 겹쳐지고 이미 떠난 영혼들을 힐끗 볼 수 있게 됩니다. 고장 난 차를 도와주느라 그 인연으로 열기구를 타게 되기까지 모든 게 우연의 연속 같지만, 한 가지 변화가 다른 변화를 일으키며 사건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열기구 사고를 당하면서 위급한 남편을 살리고자 자신의 폐 한 쪽을 떼내는 수술을 하다 결국 천국에 이른 애니. 남편은 무사히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애니는 자책감만 커져갑니다. 고장 난 차를 보고 도와주자며 차를 세우지 않았더라면, 열기구를 타러 가자고 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되돌리고 싶은 과거투성이입니다. 인생 전체가 실수투성이였고, 자신은 실수를 하는 사람일 뿐이라며 탓합니다.


그때 애니의 앞에 나타난 인물이 있습니다. 천국에 이르러 만나는 다섯 사람. 애니가 알던 이도 있고, 몰랐던 이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애니가 살면서 몰랐던 것을 가르쳐줄 거라고 합니다. 애니가 겪은 일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며 서로의 기억들이 겹칩니다. 기억도 못 하는 사람들이 애니의 인생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었을까요.



어린 시절 다친 이후 애니는 외로움과 괴로움의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당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을 막아버린 애니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애니는 소중한 교훈을 얻어 갑니다. 상실을 겪은 애니를 위로한 다섯 사람의 이야기는 실수투성이 인생도 무의미한 게 아니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다 괜찮아요, 천국이 말했다>에 등장하는 소재의 일부도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1962년 재접합 수술 분야의 발견을 가져온 사고의 주인공을 모티브로 했습니다. 손을 잃을 뻔했던 애니의 이야기와 절묘하게 맞물리는 장면에서는 인생의 궤적이 어떤 일로 바뀔지 모른다는 걸 여실히 보여줍니다. 나 자신을 자책하느라 낭비한 세월, 잃어버린 것들에 집착하는 우리들에게 미치 앨봄은 소소한 일상의 가치를 되새기게 합니다.


"죽은 후에도 계속 성장하는 건가." - 다 괜찮아요, 천국이 말했다 


죽음까지 열두 시간... 열 시간... 남았다는 카운트다운 방식의 구성은 조마조마하게 만듭니다. 간결하게 물 흐르듯 진행되면서도 긴장감을 유지하는 미치 앨봄의 스토리텔링이 마음에 쏙 들었어요. 사후 세계를 표현하는 부분, 감정을 묘사하는 부분도 정말 그럴듯한 생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느낌으로 표현해 신기했어요. 날 기다려줄 다섯 사람은 누구일지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릿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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