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 대하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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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도리스 레싱 (1919~2013)의 산문집 <고양이에 대하여>는 1967년, 1989년, 2000년에 발표한 에세이들을 엮은 책입니다. 


1967년 작 <특히 고양이는>은 여섯 살에 아프리카 식민지 로디지아(현 짐바브웨)로 이주해 그곳에서 함께한 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1989년 작 <살아남은 자 루퍼스>는 집 잃은 고양이를 돌보며 생긴 일을, 2000년 작 <엘 마니피코의 노년>은 세 다리 늙은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어린 시절부터 노년기까지의 도리스 레싱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첫 구절부터 사냥꾼 매를 등장시키며 긴장감에 빠져들게 한 <특히 고양이는>은 온갖 야생 동물들이 나타나던 그곳에서 '우리 고양이'라고 부르던, 집에서 태어난 고양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고양이가 태어나고 죽던 그때는 개체 수가 너무 늘어나면 살처분까지 직접 했을 정도로 살벌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집 주변에서 일정한 반경을 벗어나지 않고 머무는 고양이들을 돌봐주는 정도의 관계였지만, 그런 고양이들에게 애착이 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고양이들은 '우리 고양이'가 됩니다.


항생제도 없던 시절 온갖 병에 걸리는 것도 다반사,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독사에게 당하는 고양이도 있었고, 매의 발톱에 붙잡혀 사라지기 일쑤입니다. 언뜻언뜻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들을 꺼낸 도리스 레싱은 특히 애정을 듬뿍 줬던 고양이를 떠올립니다.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고양이라며 친구처럼 마음을 줬던 레싱. 세월이 흘러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생활에 더 이상 고양이가 끼어들 틈은 없었습니다.


도리스 레싱의 인생에 비로소 고양이를 들여놓을 여유가 생긴 것은 이십오 년이 흐른 뒤, 런던에서입니다. 탁 트인 아프리카 시골 농가가 아닌 도시에서 암고양이 두 마리를 키웁니다. 회색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로 부르는 이 두 고양이는 성격이 무척 다릅니다. 고양이들 간에 신경전이 벌어지면 경쟁하는 아이들 같은 모습을 보여 되려 집사가 버럭 하는 걸로 끝이 납니다.


집사의 묘생 관찰기는 도리스 레싱만의 언어를 통해 빛을 발휘합니다. 정말 감탄하며 읽었어요. 고양이를 키우며 경험하는 일상은 거기서 거기다 싶었는데, 그걸 표현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위트 넘칩니다. 물론 레싱 작가의 관찰력도 상당한 수준이기도 하고요.


"나는 녀석이 사람들이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거슬렸다. 자기가 개인 줄 아나." - 고양이에 대하여 


1962년쯤 친구 부부에게서 데려온 새끼 고양이는 '지나치게 쉽게 모욕을 느끼고, 지나치게 쉽게 부루퉁해진다.'며 겁 많지만 도도한 고양이 묘사를 이런 식으로 하니, 고양이의 머릿속을 드나드는 느낌입니다. 좀 삐졌다고 알은척하지도 않고 무시한 채 가버린 고양이를 두고 "넌 왜 이렇게 타락했어!" 버럭 할 땐 고양이의 지적 수준을 높이 쳐주는 건지, 집사가 고양이화되는 건지 ㅋㅋ 고양이와 인간과의 대화는 기본입니다.


고양이 찬양도 곳곳에서 등장합니다. "저어엉말 예에에에쁜 고양이야.", "물고기가 물의 움직임을 형체로 구현한 존재라면, 고양이는 섬세한 공기의 움직임을 다이어그램과 패턴으로 표현하는 존재이다."라며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우리 고양이'외에도 길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중 떠돌이 고양이를 결국 들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렌지색 고양이 루퍼스는 아픈 아이였습니다. 자신을 받아준 집사에게 그 고마움을 우렁찬 골골송으로 표시하던 고양이였습니다. 그런데 꽤 나름 반전이 있어요. 루퍼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다음 수를 생각하고 계획하는 아이더라는 겁니다. 생존자의 지능을 가진 루퍼스에 대한 경외심을 보여줍니다.


도리스 레싱의 인생 내내 고양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였습니다. 노년 시기에 레싱의 곁은 지킨 고양이 이야기도 감동이에요. 혈통이 뭐냐 물을 정도로 멋진 고양이에게 암이 생기는 바람에 다리 셋이 된 고양이. 자존심 다치고 굴욕 당한 고양이의 심정을 어쩜 그렇게 콕 짚어 표현하는지 가슴 저릿저릿하더라고요.


수많은 고양이들의 죽음과 탄생을 함께 한 도리스 레싱. 힘든 타국에서의 시절에서 인상 깊은 기억을 안겨준 고양이들, 장애를 이겨내며 생활하는 고양이에게서 받는 위로 등 언제 어디서건 기승전묘였던 것 같아요. 인생의 친구가 되어준 고양이들에게 감사해하는 레싱의 마음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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