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오페라
캐서린 M. 발렌티 지음, 이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휴고 상 최종 후보작, 라라랜드 제작진의 영화화 소식으로 눈길을 끈 소설 <스페이스 오페라>. 은하계에서 펼쳐지는 서바이벌 음악 경연이라니, 영화 비주얼이 너무나도 기대됩니다.


이 소설 굉장히 신선해요. 저세상급 상상력이 대박! 따발총처럼 다다다 다다닥 쏟아내는 글에 이해할 정신없이 묘하게 훅 빠져듭니다. 그리고 어느새 외계인 존재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총 36장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각 장 제목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출전한 곡명입니다. 1956년 유럽 대륙을 결속시킨다는 발상으로 시작된 이 콘테스트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고, <스페이스 오페라> 탄생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생명체가 존재하려면 수없이 많은 온갖 사건들이 일어난 끝에 탄생하며, 다른 행성에서도 다시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희귀한 지구 가설'이 이 소설에서는 장렬히 틀렸다는 걸 보여줍니다. 자아도취에 빠진 인간의 자만심을 무참히 깨뜨립니다. 우주에는 온전히 발달한 생명체들이 가득합니다. "그렇다면 다들 어디에 있는 걸까?"


어디에 있네 없네, 인간보다 하찮네 마네 왈가왈부하는 대신 훅 치고 들어옵니다. 은하 간에 벌어진 지각력 전쟁. 10만 개의 행성 사이에 벌어진 내전이 100년 전에 끝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지구는 이런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죠? 외계인들 눈에는 작고 물이 많으며 쉽게 흥분하는 '지구'에서 우월한 존재로 살아가는 인간이 지각력 전쟁에 발을 들이밀 자격조차 없는 하찮은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런 전쟁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무모하지만 실질적이면서도 기발한 일'을 생각해냈습니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모든 행성을 하나의 문명으로 합쳐 줄 일을요. 바로 우주 그랑프리 가요제입니다. 100회를 맞이하여 드디어 인간 대표를 초청합니다.


인간의 문화 정찰 후 인간 음악가들 목록도 뽑아놨고 지구를 대표할 뮤지션을 아예 지명했습니다. 바로 왕년의 록스타(였지만 이후 무참히 망한) 데시벨 존스와 앱솔루트 제로스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앱솔루트 제로스는 오르트와 미라 두 사람이 포함된 그룹인데 안타깝게도 미라는 사망했기에 데시벨과 오르트 두 사람만 우주 그랑프리 가요제에 인간 대표로 나서게 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를 읽다 보면 록 좋아하는 분들은 특히 감성 자극받을 것 같아요. 읽는 내내 영국 글램록 아티스트 데이비드 보위와 미국의 이기팝 두 사람의 이미지가 떠오르더라고요.


특히 데이비드 보위가 1972년 발매한 앨범 <지기 스타더스트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마션에 수록되기도 했던 대표곡 starman도 있지요.>가 외계인을 소재로 삼은 데다 실제로 소설 속에 언급도 될 정도로 작가는 보위에 대한 애정을 드러냅니다.


갑작스럽고 별난 노래 대회에 얼떨결에 참여하게 된 인간 대표. 우주 그랑프리 가요제 규칙을 보니 후덜덜합니다. 지각력이 있다고 인정받은 종은 대회에 참가해야 하고, 꼴찌를 하면 해당 종족의 태양계는 최소 5만 년 동안 은밀히 격리당합니다. 한마디로 문명 말살입니다. 처음부터 다시 생물학적 과정을 밟게 됩니다.


노래로 단 한 놈만 제치면 살아남게 되는 규칙. 쉬운 듯 어렵습니다. 게다가 노래의 의미도 인간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외계 생명체의 모습이 인간과 같은 꼴이라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바이러스 같은 종족도 있고, 웜홀 종족도 있습니다. 음성 기관이 우리처럼 입이 아니기도 합니다. 페로몬으로 노래하는 종족도 있습니다. 오히려 외계인은 우리가 입으로 노래한다는 것에 충격받습니다. "그 입으로 먹고 토하고 키스도 하잖아. 웩."


그러고 보면 꽤 드러내놓고 인간을 디스 합니다. "상당수의 코끼리가 당신네 보통의 대통령보다 훨씬 똑똑하잖아.", "정말 희한하게도 인간에게는 특별한 신체적 특징 같은 게 전혀 없잖아.", "내 생각에는 너희는 지각력이 기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인 것 같아." 등 범우주적 사고방식을 만나면 자연스레 쪼그라드는 느낌입니다.


속사포로 내놓는 문장들은 이해가 제대로 안 될 때가 수두룩하지만 그럼에도 왜 끌려서 크큭대고 웃으며 읽는지, 읽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ㅋㅋ. 뭔 소리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몇 번 하게 만드는 소설인 만큼 영화로 나오면 영화 보고 다시 한번 읽고 싶습니다. 특히 데시벨 존스와 앱솔루트 제로스의 노래 부분은 제 상상력의 한계가 오더라고요. 영상으로 꼭 만나고 싶은 장면이에요.


최초의 코믹 SF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영드 '닥터 후'가 생각나는 소설 <스페이스 오페라>. 웃고 즐기는 가운데 인간의 자만심, 삶의 후회 등 진지함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평범함 따위는 던져버리는, 골 때리지만 신선한 매력을 안겨주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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