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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나카오 사스케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5월
평점 :
문화의 출발점이 재배?! 무슨 뜻일까요. 영어의 culture, 독일어의 kultur를 옮긴 말인 '문화'는 본래 '재배'를 뜻하는 단어라고 합니다. 땅을 일구고 작물을 재배하는 것, 이것이 문화의 본뜻인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문화의 본뜻을 잊어버리고 문화, 교양, 예술, 학문 등 좁은 의미로만 생각합니다.
인류의 문화는 농경 단계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발전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농업혁명을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말할 정도로 그 영향력이 대단했음을 알려줍니다. 과거든 현재든 여전히 농업은 인간이 땀 흘려 노력하는 대상입니다. 유전 육종학과 재배 식물학을 연구한 나카오 사스케 저자는 <농경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에서 인류 문화의 근원인 농업의 기원과 발달을 이야기합니다.
인류 역사의 중심, 농업. 농업의 역사는 재배 식물이 말해준다고 합니다. 재배 식물의 기원과 발달을 통해 문화로서의 농업을 살펴봅니다. 농경문화 전체를 아우르지는 않습니다. 그중 가장 기본 요소인 재배 식물을 다룬다고 보면 됩니다.
비너스가 미술사의 위대한 문화재인 것처럼 농업에도 문화재가 있습니다. 보리 한 줄기, 벼 한 포기가 그렇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식물이잖아요. 농경문화의 문화재는 농기구, 농업 기술보다 살아 있는 재배 식물, 가축의 품종이 더욱 가치 있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벼, 보리는 야생 식물과 전혀 다릅니다. 야생종은 손만 닿아도 우수수 낱알이 떨어져 야생종과 재배종은 수확 방식도 가공 방식도 달라진다고 합니다. 이삭 따기에서 밑동 베기로 진보하게 되는 거죠. <농경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는 주요 곡류의 야생종과 재배종을 비교해 재배 식물의 기원을 살펴봅니다.
모든 과일 중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과일은 무엇일까요? 처음 재배한 시점이 대략 기원전 5천 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건 바로 바나나입니다. 재배 바나나의 조상은 크게 무사 아쿠미나타와 무사 발비시아나가 있는데 중남미의 기억적 재배 바나나의 표준 품종인 그로 미셸이 바로 무사 아쿠미나타에서 발달된 거라고 합니다.
밀, 벼, 옥수수, 사탕수수 같은 우리가 익히 아는 식물은 모두 인류가 개발한 작물이라고 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발달할 생장 작물들입니다.
이 책에서는 크게 근재 농경문화, 사바나 농경문화, 지중해 농경문화로 구분해 소개합니다. 가장 역사 깊은 근재 농경문화는 감자류를 재배하는 것처럼 토기 하나 없이 식량 체계를 완성했던 시기입니다. 구석기 시대 채집 경제를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사바나 농경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잡곡을 인류의 식량으로 재배화했다는 데 있습니다. 감자류보다 저장과 운송이 편리한 잡곡은 솥이 없으면 식용하기 힘들었기에 토기 발달의 원인이 됩니다. 완전한 신석기 시대 농경문화인 겁니다. 이 시기에는 식물의 종자에서 기름을 짜내기도 해 작물 재배와 식물유를 적극적으로 요리에 사용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우리에게 친숙한 벼 농경문화라는 건 없다는 겁니다. 벼는 습지의 잡곡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선택을 받아 수전 재배 환경에서 재배된 잡곡이 벼입니다.
지중해 농경문화는 지금도 야생 맥류가 발견되는 지역이라는데, 이 문화의 큰 특징은 이차 작물의 출현입니다. 호밀, 귀리 같은 이차 작물은 대맥과 소맥의 잡초에서 작물로 승격한 겁니다. 농업 형태에다가 가축도 등장한 이집트 농경 방식을 통해 지중해 농경문화를 이야기합니다.
이렇듯 농업은 거듭된 혁명을 통해 더 큰 발전을 이뤄왔습니다. 신석기 시대의 제1차 농업혁명에서부터 소를 사용하는 제4차 농업혁명 이후 기계를 사용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식물생태학을 바탕으로 농업의 역사를 들려줍니다. 농업의 중요성은 어렴풋이 알지만 무엇을 가지고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건지, 인류에게 미친 영향을 이해할 수 있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