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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무루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
무루(박서영)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5월
평점 :
좋은 그림책은 권장 연령 따위 없는 법! 힐링이 우리 삶의 키워드로 자리 잡았을 때 즈음 그림책 읽는 어른들이 유독 많이 늘어났던 것 같습니다. 그림책이 어떤 힐링을 안겨주길래?
무루 작가의 책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는 어른들이 읽어도 좋은 그림책들을 들려줍니다. 그림책을 해석하고 활용하는 법 같은 그림책 자체에 포커스를 맞춘 책은 아닙니다. 그림책을 보며 추억팔이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일반적인 그림책 소개 책과는 조금 달라 보입니다.
처음엔 그림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보여 당황스러웠어요. 대형 출판사 그림책도 있지만, 독립출판물 그림책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그림책도 꽤 많았습니다.
예전엔 이런 책을 읽을 때면 사야 할 리스트 늘리기에만 급급했던, 제가 그림책을 대하는 깊이는 딱 그 정도였어요. 끌리는 이야기와 멋진 그림을 새롭게 알게 되었네 정도의 만족감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는 그림책 리스트 작성보다 무루 작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됩니다.
알고 있던 그림책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경험한 것들이 그림책 이야기와 어우러져 성장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무루 작가의 목소리가 가슴을 두드립니다. 그림책을 읽으며 내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존재의 의미를 발견한다는 것, 15년 넘게 아이들과 인문서를 읽던 저자가 어른들과 그림책을 읽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이상한 일상'이라는 모임을 통해 이상을 꿈꾸며 살아가는 삶을 실천하는 무루 작가의 일상은 다름에 관한 그림책 <쫌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닮은 꼴입니다. 이상을 꿈꾼다고 해서 현실 세계와 멀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꽤 늘었다고 합니다. 남들이 보기에 이상해 보이는, 다른 포인트에서 행복을 느끼는 <쫌 이상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쁨을 찾아낸 이들이었어요. 이상한 것들이 자주 오해받고 소외되는 세상에서 저마다 골몰하는 재미가 달라 사는 즐거움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칩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어요. 인생은 삽질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마음 저 깊은 곳에 있는 자신만의 구덩이의 존재를 인지하고, 그 구덩이를 파헤쳐봤는지요. 순수한 몰입과 이후 찾아오는 충만감을 우리는 살아오면서 얼마나 맛보았을까요. 이유 같은 건 필요 없이 그저 구덩이를 파고 또 파고 녹초가 될 때까지 파 내려간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 <구덩이>는 외부 시선에 맞닥뜨려 구덩이의 존재를 잊은 채 살아온 어른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는 무루 작가가 좋아하는 세계를 다룬 그림책 이야기일 테지만, 보편적인 고민을 담고 있기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잃어버리고 있었던 줄도 모른 채 달려온 우리에게 새로운 넓은 세계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저는 미혼 시절부터 그림책을 좋아하긴 했는데 당시엔 일러스트에 초점 맞췄던 터라 반쪽짜리 그림책 읽기였던 셈이었어요. 육아를 하면서는 아이가 좋아하는 주제에 초점 맞추느라 제 취향은 점차 뒷전이 되었고요. 가슴을 울리는 그림책은 숱하게 많고, 여전히 책장의 일부를 그림책으로 채우고 있을 정도로 그림책은 좋아하지만, 나를 위한 그림책 읽기를 마음껏 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나는 몇 권을 뽑아 다시 읽어봤는데 그 당시엔 울컥할 정도로 감동받았지만 지금은 심드렁한 책도 있었고, 지금 읽으니 깊은 감동을 주는 그림책도 있네요.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책의 힘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지만요. 어쨌든 이런저런 경험을 한 나이가 되어 읽는 그림책의 맛은 좀 달랐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서수연 작가의 일러스트가 감상의 폭을 한층 넓혀줍니다. 무루 작가의 자유로운 이상향이 듬뿍 느껴지는 그림이 압권이에요. 언급된 그림책 표지나 속 그림은 전혀 나오지 않는데도 그림책과 무루 작가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다가오는 건 이야기를 서수연 작가만의 감성으로 풀어낸 일러스트 덕분이지 싶어요. 사은품 에코 손수건이 너무 맘에 들어 호감도 더욱 상승!
비주류, 사회적 약자라는 말 대신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하는 무루 작가의 바람은 옹골차게 다져져 꼭 이뤄질 겁니다. 아는 그림책이 손꼽힐 정도로 적게 등장했던 책이어서 저는 솔직히 충격 먹었지만요. 그림책 좋아했던 내 모습을 이번 기회에 다시 찾아보자 의기 충전한 시간이 되었습니다.